벽두 劈頭
남자가 말한다.
“왜 이렇게 새해 기분이 안 나지?”
내가 답한다.
“2월이야, 2월! 무슨 새해?”
“아니, 양력 정월에도 그러더라고.”
“양력 정월? 그게 무슨 역법?”
“그렇군. 어쨌든 양력 1월 1일에도 그랬는데 어제 설날에도 새해라는 느낌이 영 안 난다고!”
“왜 그럴까?”
“아마 새해가 되면 사용해 오던 언어들이 사라지는 것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어떤 낱말?”
“벽두 劈頭”
“벽두 劈頭라...... .”
동감한다. 문득 최근 몇 년 새해라면 응당 사용하던 말이 팽당했다는 생각이 든다. 고의이든 우연이든 예전부터 써 오던 낱말이나 문구나 문장들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근하신년
새해 벽두
신년 벽두 문안 인사드립니다.
새해 수복강녕(壽福康寧)하십시오.
새해 만사여의(萬事如意)하십시오. 등
평소 한자를 열심히 공부하는 남자는 은근히 어려운(?), 한편 난해하기도 한 ‘벽두’라는 낱말을 사용하여 새해 인사를 건네고 싶었나 보다.
벽두 劈頭 [벽뚜] 명사
글이나 어떤 일의 첫머리
2. 어떤 상황의 맨 처음, 또는 일이 시작된 머리.
3. 주제가 있는 글이나 말(연설)의 머리 부분
흔히 내 고향 제법 유식한 어르신들은 ‘벡두’라고들 하셨다.
남자의 몹시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제대로 안쓰럽다. 다만 ‘새해 벽두’는 그렇다 하더라도 ‘수복강녕(壽福康寧)’이니 ‘만사여의(萬事如意)’ 등의 낱말 사용에 대해서는 꿈도 꾸지 말라고 핀잔을 준다. 지금이 어떤 세상이냐고 한소리를 한다.
이렇게 모든 사물이며 언어며 물질이며 사람들이 잉태되어 번영을 시작하고 번식하고 만화방창(이 거한 말을 나도 사용하는구나. 한심하기는)하다고 세월이 가고 시대가 흐르며 새 사람들의 주도 아래 살아가는 세상이 되노라면 폐기되기도 하겠지. 그런 것이겠지.
벽두. 劈頭. ‘쪼갤 벽’에 ‘머리 두’의 한자어이다. 사실 얼마나 어려운가. 발음하기나 공부하여 익히기에 또 얼마나 강한 말인가. 요즘 세상에 이 낱말을 사용하여 새해 인사를 나누려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 낱말을 사용하여 새해 인사를 건넨다 한들 누가 쉽게 이해해서 받아들이겠는가. 이를 굳이 들먹이지 않은 사람들을 탓할 일도 또한 아니다. 그렇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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