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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그것이 그것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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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그것인디.

 

이렇게 이쁜 시니어 아파트라면 참 좋겠다. 내가 살아야 할 때가 되면 부디~.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쉬고 있다. 느지막하게 일어났다. 새벽녘 눈이 떠져서 몇 분 인스타그램 여행하기로 시간을 보내고는 다시 잠들었나 보다. 아마 아홉 시 혹은 열 시는 되었으려니 생각했는데 아직 여덟 시대였다. 여덟 시 삼십오 분! 야호? 이런 것을, 빨리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한다는 기쁨이 이렇게 큰 것을 어쩌자고 쉬는 날이면 꼼지락대고 있었는지. 그런데도 상체만 이불 속에서 꺼내고서 인스타그램에서 놀기를 삼십여 분 더 했다. 몸 전체를 수직으로 세우지 못한 이유에 합당한 내용을 달기 위해 수첩을 꺼내어 모닝 빵에 어울리는 수프 레시피를 적어뒀다.

 

그래, 오늘부터는 수첩을 마련하여 음식 레시피라도 적어두자. 겨울, 유튜브를 보고서 몇 음식을 내처 했더니 굳이 복잡하고 어렵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말로 집에 갖추고 있는 이런저런 양념거리들을 모두 합체하면 소스가 된다. 주재료를 씻어서 버터나 오일에 볶거나 찜기에 쪄서 소스에 버불버불하면 된다. 총합적인 요리 방법의 결론이다.

 

좋아, 이제 열심히 집 요리를 해서 먹자. 아이가 집을 떠나 공부하기에 들어선 이후 지금껏 남자가 해 주는 음식만 먹었더니 한계가 있다. 그는 파스타와는 영 거리가 멀다. 국수는 비빔국수나 열무김치 버무림 국수라야 한다. 정통 전통 요리를 추구한다. 말하자면 어릴 적 먹었던, 자기 입맛에 익숙해진 요리만 한다. 폭넓은 요리 맛보기를 위하여 나도 서양요리를 하기로 했다.

 

아침 인스타그램 살펴보기는 느닷없이 집안 물건 정리로 이어졌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컴퓨터를 켜놓고서 오늘은 꼭 책 읽기로 대부분 시간을 보내자고 다짐했는데 컴퓨터와 책장 사이 널브러진 물건들을 도저히 그대로 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정리를 시작했다. 언젠가는 일터에서 혹은 글씨쓰기나 그림 그리기에 도움이 되려니 해서 쌓아뒀던 물건들을 몽땅 버렸다.

 

어제 일터 선후배 간에 세 명이 만나는 모임이 있었다. 선배 언니에게는 머플러를 여럿 드리고 어린아이를 육아 중인 후배에게는 두꺼운 곤충도감을 나눴더니 기분이 개운하더라. 그래, 버리고 나누자.

 

곧 당근마켓 활동도 시작하려고 한다. 잘 키운 화분들을 팔고 나눔할 생각이다. 의류는 이제 얼마 되지 않지만 그래도 몇 정리하여 아름다운 가게로 보낼 예정이다.

 

책은? 아, 책은 어찌한다? 고민을 좀 하자. 책값이 문제가 아니라 내 삶이고 피였고 내 영혼이었다. 책 처리는 좀 더 고민해 볼 참이다. 이것저것 생각하다 보니 과연 정든 이 집과는 이별이 쉽게 될까 싶어진다. 그러나 어쩌랴, 내 힘에 부치면 이래저래 짐이다. 내 몸도 짐인 것을. 어서 좋은 방법을 생각하여 책도 정리하자.

 

오늘 내 생각의 범위가 요리이자 정리 정돈이며 책(도서)이며 의상임을 감지한, 영리한 유튜브가 점심을 좀 얻어먹고 와서 열었더니 당장 여러 종류의 주택들 창을 열어준다. 신혼부터 팔십 넘은 노인들이 사는 곳까지 몇 유튜브를 시청했는데 한 어른의 말씀이 재미있다.

 

읍(군?) 단위 어느 지역의 노령자들이 모여 사는 아파트를 둘러보는 프로그램이었다. 아마 ebs일 것이다. 노인들은 대부분 팔십이 넘으셨다. 단이 없는 출입구, 동네방네 사람들 모여서 강강술래 춤을 춰도 될 만큼 너른 현관부터 골목길 놀이를 해도 괜찮을 만큼 길고 너비가 큰 복도를 보여줬다. 의료실이며 운동실, 싼값에 먹을 수 있는 식당이며 갖가지 학습장까지 실속 있게 갖춘 건물이었다.

 

노인들은 행복해했다. 어떤 노인은 매일 도시락을 싸서 아파트와 그리 멀지 않은 자기 집에 다녀오기도 했다. 집 옆 텃밭도 가꾸고 집안도 살피고. 자기 집을 두고 일종의 사람 관리가 필요해서 모여 살아야 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한 데 모이니 즐거움이 생긴다면 뭐, 좋지 아니한가 싶긴 했다.

 

어느 호를 방문했더니 여자 노인 두 분이 함께 계셨다. 두 분 중 한 분은 자기 집은 건물 안 다른 호인데 줄곧 이 호의 주인어른과 함께 생활하신다 했다. 자기 집에 돌아간 노인이 그곳 생활에서 하고 계시는 것들을 내보이는데 그중 한 가지가 한글 공부였다. 한글을 공부하고 싶다는 제목의 한글 공부 예찬의 시도 쓰셨나 보다. '한글 공부하고 싶다'를 제목이면서 각 연의 첫 행으로 몇 연을 반복하여 쓰신 자신의 글을 읽으시던 끝에 하시던 말씀이 재미있다.

"한글 공부 하고 싶다, 맨날 그것이 그것인디~"

 

이 집에 오시면 주인 못지않게 주인인 듯 사신다고. 전문가, 즉 진행자로 참여 중인 건축가가 어떤 질문을 했더니 노인이 답하신다.

"그것이 그것인디."

나는 빵 터졌다. 그래, 어저면 나도 곧 저 문장을 살 나이가 되어가는구나.

 

"그것이 그것인디, 뭐 이것저것 가릴 것이 있나? 다 그만그만하고 모다 그럭저럭 살아가다가 때가 되면 가는 것이여. 사는 동안 즐겁게 살면 되야야."

 

본적 시골에서 하던 말투 그대로의 문장을 떠올리면서 노인이 말씀하시고 행하는 바를 감상하는데 노인이 참 정스럽다. 보아하니 건강하게 오래오래 잘 사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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