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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내 어머니의 언어

약신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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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신 먹어라!

 

 

체구가 무척 작았다. 어렸을 적부터 쭉! 여전히 그렇다. 작고 적은 체구에 걸맞게 먹는 것도 늘 부실했다. 차려진 음식이 아무리 진수성찬이라 하더라도 분별하지 않았다. 혀가 움직이지 않았다. 혀에 자리잡은 '맛'에 대한 감각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사실 입이, 혀에 자리답은 미각세포가 문제였다. 눈 앞에 현란한 색상의 음식이 차려져 있어도 그다지 먹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다. 내 의식이, 내가 사람이라는 것을 파악한 이후 줄곧 그랬다. 어머니의 배 속에 잉태된 순간 하늘로부터 정해진 운명이었으리라. 분명하다. 차려진 음식을 보고도 꿀꺽꿀꺽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누군가 내게 퍼부은 문장 그대로 '맛을 떠올리지 못하는 것은, 한 마디로 '병'이다.'

였다.

 

내가 그랬다. 지금도 그렇다. 어떤 음식을 꼭 먹고 싶다거나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입이, 혀가 제 책임과 의무를 버린 것일까.

 

엄마가 늘 내게 말씀하셨다.

"아아. 약신 좀 먹어라야. 좀 먹어, 어찌 그리 안 먹냐. 약신 좀 먹어. 약신!"

 

오늘 최근에 만나게 된 한 사람 덕분에 이 낱말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녀는 내 고향에 시댁이 있다고 했다. 어느 딸도 들어주지 않은 잔소리, 시어머니의 잔소리를 모두 받아준 덕분에 시댁이 있는 지방의 사투리를 생활화할 수 있다고 했다. 오늘이 그녀와 세 번째 만남의 날. 그녀가 나를 향해 던진 문장 중에 만난 반가움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상당히 어려운 상황 속 만남이었는데도 그녀는 소탈함이 가득 담긴 사투리로 내게 물었다.

한 공간으로 인해 말문을 확 텄다.

 

"이렇게 약신 써야지 일이 됩니다."

무언가를 나눠 담고 있었던 듯싶다. 그녀의 말에 나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내 어머니가 늘 내게 하시던 말씀 중에 있던 낱말. 반가운 낱말이 '약신'이었다.

 

우리 엄마 늙은 나이에 낳은 막내딸을 보면 늘 안타까웠으리라. 어쩌면 죄의식을 느끼고 계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안쓰러운 눈빛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약신'은 부사이다. 양껏’의 남도 방언이다. 그렇다면 '양껏'은? '양-껏 量껏 [ 양껃 ], 할 수 있는 양의 한도까지, 얼마든지의 뜻을 지닌 낱말이다. '양끗 量끗'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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