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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창작

'편린'이라는 낱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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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 어느 지점이었을까. 내 안에 심어진 낱말 하나.

편린. 

 

오늘 영화 속 대사에서 '편린'을 만났다. 

 

편린!

어느 한쪽이 외부의 흔적에 의해 짓밟혀진 채 상해버린 의미의 낱말. 그곳에 내 영혼이 숨 쉬어야만 될 것 같은, 그렇지 않음 남은 부분 온전한 곳마저 일그러져버릴 것 같은, 안쓰럽고 왠지 안타깝고 가녀린 숨결을 천명으로 타고난 듯한 낱말. 편린. 

 

오늘 슾프디 슬픈 영화 '미스테리어스 스킨'에서, 

불결한 어른 남자가 남긴 지저분한 상처때문에, 피부에 맺힌 지저분한 촉감이 남긴 끈적거림때문에 불행을 운명으로 싸안고 가는 한  남자, 그 흔적으로 죽음의 꽃을 피워내고 있는 사내 아이의 슬픈 생을 '편린'과 함께 만났다. 

 

사내는 자신의 건강한 물성을 아무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상태에서 슬픈 운명을 정해버렸고 또 다른 친구에게 자신의 생을 배분하여 쑤셔박았고

그 친구는 꿈인 듯 생시인 듯

낮을 밤으로 밤을 낮으로 혼돈의 고리를 돌려가면서 생계를 꾸역거린다.

 

악귀 어른 하나로 건강했을 두 생의 세계가 파괴되었다. 

편린의 무서운 힘.

 

사내 둘이 화면에서 나와 비늘 한 잎을 내 심장에 딱 붙였다. 

한 조각의 비늘은 내 안으로 파고들어 

내 영혼을 뒤집어 엎었고

내 심장이 딱 집어낸 낱말은

'편린'이었고.

 

내 작은 어떤 것을 들춰내어 

파헤쳐내서

내 흐린 호흡을 보상받고 싶은 나날.

나도 늘 '편린'의 무서운 힘과 함께 살고 있다는 생각에 소스라치다. 

'편린'에 함몰되지 말자.

 

올 한 해 내 생은 참 슬프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이 한 해. 어서 가거라, 세월아. 어서 2월이여 와라. 내 생에 올 한 해 왔던 그들을 어서 도려내고 싶은. 어느 조그마한 한 조각의 비늘이 이토록 한 해 내내 온 생을 뒤덮고서 사람을 미치게 하는가. 올 한 해를 하나의 전체라 치자면 어느 비늘 한 조각 내 신경세포 하나를 건들더니 점점 커져 나를 그리고 우리를 짓밟은 채 괴물의 웃음을 흘리고 있는 이 슬픈 올 한 해.

 

나는 꼭 2월의 그날만 지나면 곧 바로 벗어나리니. 2월 11일만 와라. 끝이다. 딱 그날까지만. 나는 결코 '편린'에 함몰되지 않을 거야. 날 센 칼날 스며들게 해서 딱 올 한 해와 딱 그 인간들만 들어내리라. 내 생에서, 우리의 생에서. 더러운 것들을 휙 날려 보내리라. 

 

사실 나는 늘 '편린'을 꼭 싸 안고 다독거리면서 살아왔다. 내 안쓰러운 낱말, '편린'이여. 올 한 해를 어서 벗어나자. 그대 '편린'을 아름다이 고운 역할로 내 생에 다시 초대하리니. 

 

아, 영화 '미스테리어스 스킨'의 두 젊은 생도 부디 맑은 생으로 부활할 수 있기를. 

 

  • 한 조각의 비늘이란 뜻으로, 사물(事物)의 아주 작은 일부분(一部分).

     
    조각 편
     
    비늘 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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