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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내 어머니의 언어

개안하다 2 개안하다 2.  커다란 일이 한 가지 터졌다. 일의 책임은 그 일을 저지른 한 사람에게 있었다. 당사자만 마음 돌리고 사죄하면 되는 일이었다. 이미 마음을 먹었다는, 자기가 저지른 일 자기가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고 했다. '텅' 소리에 놀라 저쪽을 보니 또 다른 방향에서 저지른 일이 있었다. 같은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또 하나의 일. 사건이 복잡해졌다. 조직도를 그리기에도 민망할 만큼 여기저기에서 서너 가지, 불쑥불쑥 터져 나왔다. 일터 내 일 아래 관련된 일이었다. 내가 나서야 했다. 쏜살같이 나아가 부지런히 뛰었다. 복잡함 뒤에 숨어있던 단순함이라는 녀석이 온몸을 쑥 내밀고 나와 변명을 한다. 우선 자기 몸을 사리느라 바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저 변명에 불과한 듯싶었지만 한편.. 더보기
티미하다 티미하다. “공부해라, 공부해. 공부를 해사(해야) 밥 먹고 산다.”일평생 자식 여덟을 교육하고자 사신 나의 부모님. 특히 내 어머니가 사신 생은 자기 생을 단 한 푼도 사시지 않았다. 그녀가 늘 그랬다.“아무리 티미해도 해 싸먼(대면) 못 할 일이 없어야. 안 될 일이 없어. 으짜든지 책을 읽어라. 으짜든지 니(너의) 생각을 쓰고 말하고 살 수 있게 해라.” 눈 떠서 자식을 만나면 하는 말이 이랬다. 그녀는 뒷마을 절의 스님이 동냥을 오시게 하여 두 손 가슴 앞으로 모아 빌고, 빌고 또 빈 내용이 자식들이 공부 잘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을 거다. 나 어릴 적 우리 집에는 늘 이웃집 스님(‘중’이라고도 했다.) ‘동냥’을 오셨다. ‘동냥’은 승려가 시주(施主)를 얻으려고 돌아다니는 일이다. 또는 그.. 더보기
약신 먹어라 약신 먹어라!  체구가 무척 작았다. 어렸을 적부터 쭉! 여전히 그렇다. 작고 적은 체구에 걸맞게 먹는 것도 늘 부실했다. 차려진 음식이 아무리 진수성찬이라 하더라도 분별하지 않았다. 혀가 움직이지 않았다. 혀에 자리잡은 '맛'에 대한 감각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사실 입이, 혀에 자리답은 미각세포가 문제였다. 눈 앞에 현란한 색상의 음식이 차려져 있어도 그다지 먹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다. 내 의식이, 내가 사람이라는 것을 파악한 이후 줄곧 그랬다. 어머니의 배 속에 잉태된 순간 하늘로부터 정해진 운명이었으리라. 분명하다. 차려진 음식을 보고도 꿀꺽꿀꺽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누군가 내게 퍼부은 문장 그대로 '맛을 떠올리지 못하는 것은, 한 마디로 '병'이다.'였다. 내가 그랬다. 지금도 그렇다.. 더보기
보타지다 보타지다. 내 어머니는 늘 보타졌다. 아들 넷, 딸 넷의 여덟 자식에 두 살에 만난 막동이 시동생에 열살 안팎 남여 시동생 둘까지 셋을 길러서 혼인까지 시키셨던 삶의 내 어머니. 평생 사람 길러 사람 만드는 일로 사신 내 어머니는 늘 보타지셔야만 했다. "아이구머니나. 왜 이 일이 이리 됐다냐."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는 어쩐다냐." "저렇게도 험하게 될 줄 어찌 알았겄냐. 이것을 어찌할 거나. 꿈에 생각 못했다야." "아이, 이것 이렇게 하면 제대로 되겄냐?" "그것, 그렇게 해서는 안 돼야. 이리저리 손 좀 봐야지. 저렇게 놔두면 어찌 되겄냐?" "어찌해서 좀 만사형통하면 얼마나 좋을까이." 좌불안석 속에 매일, 매 순간 릴레이로 이어지는 무수한 일들. 옆에서 보는 어린 나도 정신을 차릴 수가 .. 더보기
간푸다 간푸다. 좀처럼 힘든 내색을 하지 않고 사시던 우리 엄마. 내가 직업을 갖게 되었어도 엄마는 끝없이 일해야만 했다. 자식이 여덟이었다. 엄마 마음에는 ‘아흔 부모에 일흔 자식’이 딱 맞는 말이었다. 아무리 직업을 갖고 돈을 벌어도 엄마는 더, 더, 더 많은 것을 자식에게 채워주고자 하셨다. 아버지가 몸져눕자 엄마가 하시는 일의 종류가 달라졌다. 아니 한 가지로 정해졌다. 아버지를 돌보는 것이었다. 키가 일백팔십을 조금 넘으셨던가. 몸집도 든든하게 크고 무거웠던 아버지를 엄마는 혼자 돌보셔야 했다. 온 세상을 누비다시피 하시면서 사시다가 바깥 걸음이 어려워진 아버지는 말부터 거칠어지셨다. 엄마는 마치 천상으로부터 부여받은 자기 임무라는 생각을 하신 것처럼 보였다. 자기 몸 또한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아야 할..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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