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728x90

문학/내 어머니의 언어

낟- 내 어머니가 참 소중하다고 하셨던 단 한 글자의 낱말이다.   "해 좀 쬐끔만 더 있었으면 낟 한 되는 너끈히 주섰을(주웠을) 텐디~"가을, 추수철. 해질무렵을 제법 넘어선 때, 논에서 집으로 돌아온 우리 어머니가 거의 매일 하시던 말씀이다. 이때 '낟'은 곡식의 알을 말한다. 논농사를 해 살았던 우리 집은 가을이 끝나도록 우리 어머니의 아쉬움이 가득한 문장이 매일 반복되었다. "나락 낟이 진짜로 중요해야. 나락 낟 하나라도 소중히 혀야 먹고 살어야. 명심해라이~" "낟~"가만 소리 내어 내놓는다. 마당 저  끝 대문을 열고 우리 엄마가 귀가한다. 내 혼잣말 안에 우리 엄마의 호흡이 함께 숨 쉰다. 참 어감도 좋다. 낟! -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낟 [ 낟ː ]낟이 [나ː지] 낟을 [나ː들] 낟만 [난.. 더보기
무담시 무담시!    내 고향은 같은 성씨가 모여 사는, '자자 일촌'의 전통적인 시골 마을이었다. '평화롭게'라는 낱말이 음침하게 거주하는 가운데 띄엄띄엄 다른 성씨 몇 가구가 들어와 살게 되었단다. 문명(?)의 개화로 농촌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갈 즈음 그 노선에서마저 탈락한 몇 가구 역시 성씨에 상관없이 우리 마을에 안착하여 살게 되었다고 했다. 그들은 가난했단다. 우리 어머니로부터 들은 우리 마을 주민들의 산 역사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는 농사가 잘된다는 소문을 듣고 우리 마을로 찾아든 이들의 '목구멍이 포도청'을 외면하지 않았다. 제법 도시 문명이 스며들었던 내 어린 시절에도 그러셨으니 옛 시절에는 더하셨을 것이다. 특히 집 밖, 마을이며 군내 일로 더 바쁘셨던 아버지는 느닷없이 자기 몸뚱이 뒤로 짐 지.. 더보기
썽부터 내지 말아라 썽부터 내지 말아라.   내 어머니의 언어로는 '썽부터 내지 말어라'이다. 나, 가끔 '아'와 '아'가 아닌, '아'와 '어'의 어미로 문장 구성이 진행되는 것은 언어 습관때문이다. 거, '언어습관'이라는 것이 대단한 힘을 발휘하곤 한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가 왜 있겠는다. 쓸 데 없는 가지는 여기에서 멈추고. 초등시절 대도시 유학으로 나는 부모님과 그리 많은 시간을 살지 않았다. 딱 열 살까지 살았을까. 이후 내멋대로의 삶이었다. 함께 살던 혈육도 동거 기간이 2, 3년이었다. 손주 손녀 밥 해 주시던 내 할머니도 내 중학 시절을 함께 하지 못하셨다.  요즈음 주변 지인들이 사춘기를 사는 자녀들과의 불화를 내게 한 풀이 삼듯 이야기해 오면 나는 부럽기조차 한다. 내가 그들에게 건네는 문장이다.".. 더보기
땔싹 2 땔싹 2  땔싹 컸다커버렸다사람을 오랜만에 만났더니눈 앞에 펼쳐진 변화 무섭더라어제 만났던 사람인 듯싶은데오늘 보니 땔싹 컸더라하기사 만만 년은 넘었을 우리 서로를 기억에서 지운 채 살았던 세월 오래땔싹 자란 사람의 키사람의 무게 무섭더라저항의 품을 담아 덤비더라대응하더라 잠자코 있지 않더라땔싹땔싹 큰 채내 어미의 언어로내 앞에 그렁그렁 눈물을 쏟던내 안에 여전히 자라고 있는 이제는 푸대자루 가득 터질 것 같은비리고 퍼진 마음 안으로 꽉 찬땔싹 큰 어른 아이나와 너그리고 우리 무엇때문에 이 낱말이 떠올랐을까. 일터에서 추진하고 있는 행사로 여러 날 바쁘다. 오늘 행사일에 앞서 마지막 점검을 다녀왔다. 돌아오는 길에 소주에 좀 내장을 적실까 하다가 참았다. 혓바늘이 돋아 '쭈삼매운탕(쭈꾸미와 삼겹살을 함께.. 더보기
나직나직하게 나직나직하게!   ‘공부는 열심히 하되 결코 높직높직한 곳을 탐내어 쳐다보지 말아라. 높직한 곳, 그닥 재미는 없어야. 쫌 징그랍기도 허고!’‘최선을 다하되 조용히 살아라.’막내딸에게 말하고 싶은, 틀림없는, 내 어머니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늘 말씀하셨다. “높직한 곳 쳐다보고 있자면 고개가 많이 아퍼야!”“그깟 고개 아픈 것 못 참겠소? 죽어라 쳐다보고 있으면 무엇인가 나오겠지요.”“살아보니께 그래야. 저 높은 곳 무쟈게 좋은 것 같아도 쳐다봐봤자 별 나오는 것 없드라야. 으짜든지 행동도 나직나직, 말도 나직나직하게 하고 살아야 쓴다이. 더군다나 니 팔자는~” 내 팔자?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팔자’라는 낱말이 궁금했다.‘대체 팔자는 뭘까? 내 어머니가 저리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내 어머니가 주신 .. 더보기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