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

‘쓰고 달콤한 직업’, 소설가 천운영의 산문

반응형

쓰고 달콤한 직업’, 소설가 천운영의 산문을 읽었다.

 

기어코 울고 싶었다. 나 혼자였다면 펑펑펑펑 눈물 콧물을 쏟아냈을 것이다. 마침내 '김훈과의 인터뷰'에 와서 나는 솟구치는 눈물을 참을 수 없어 숨 죽이며 퍼냈다. 한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천운을 타고나질 못해 나는 결코 글을 쓸 수 없다고 생각했던 날을 떠올렸다. 천하제일의 글쟁이 모임에 속한다 여겨지는 김훈 선생님'이 한편 내가 타고난 소설가라 여기는 천운영에게 '글쓰기'에 대한 조언을 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일종의 '내 참담한 운명'까지 떠올렸다. 결코 글을 제대로 써내지 못하는 나의 생. 도무지 제대로 된 글을 써낼 줄 모르는 내 숙명. 마침내 내 스스로에게 '글쓰기에 대한 종언'을 퍼붓던 날의 비감.

 

천운영의 글 ‘바늘’, ‘그녀의 눈물 사용법을 가슴 진하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불행히도 그 소설들의 아우트 라인도 이젠 기억나질 않는다. 단지. 내가 지금껏 읽은 대한민국의 근현대소설 중 제법 강한 실루엣을 내 뇌에 남긴 작품 리스트에 올라와 있다는 것. 이 이유에서인지 얼마 전 우연히 접하게 된 이 책의 제목과 작가는 '이 책은 꼭 읽자.'는 다짐을 내게 하게끔 했다.

 

공공도서관 대여의 방법을 택했다.

 

그녀가 식당을 열었단다. 지금은 문을 닫았단다. ‘돈키호테의 식탁’. 스페인 음식이 주메뉴였나 보다. 진즉 알았다면 가보고 싶어했을 듯도 싶다. 몇 사진으로 보는 음식들의 맛이 쏠쏠했을 것도 같다. 물론 정작 나는 또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선 일단 서울은 멀고 경제적인 여유도 뭐 그렇고(우하하하, 경제적이라니, , 이래 봬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서 주는 재난지원금에도 해당이 되지 않는 ‘12퍼 안의 상류층이야. 사실 이를 확인한 순간 나는 염ㅂ~’을 내뱉었지. 하늘을 향해. ‘이런 개~’). , 그리고 나는 내 집 덕후라서 외출을 잘 하지 않거든. 막 변명을 하자. 

 

이름도 처음 듣는 제법 고딕스러운(?) 어감의 스페인 음식 메뉴들이 등장한다. 내 예전 독서 습관이라면 응당 찾아봤을 새 낱말들과 새 고유명사들이었다. 굳이 독서를 멈추고 그것들 찾기를 하지 않았다. 책 덮으면 떠오르지도 않을 낱말들인데 뭐 찾아볼 필요가 있나 싶었다. 물론 이런 내가, 이런 내 독서 방법이 참 슬펐다. ‘수박 겉핥기식의 삶을 이젠 살아도 된다 싶은 마음이 이미 굳혀져 있다. ? 이건 다른 글에서 광대하게 펼쳐 보기로 하고.

 

명자씨가 참 궁금하다. 천운영의 어머니. 남편과 자식들의 삶에 기어코 구체적인 얽힘을 즐겨 사신 듯싶은 명자씨의 음식이 궁금하다. 가끔 한민족 삶의 온갖 것들을 함축해 놓은 미각 종합판이다 싶은 전라도 음식을 그녀 명자씨가 참 잘 요리하시나 보다. 그녀의 음식을 꼭 한번 맛보고 싶다. 소화불량 류의 한 질병을 살고 있는 나는 그 질병을 온전하게 내 온몸으로 확인한 후 사실 미각을 상실한 상태다. , 대단한 상실은 아니고, 예전처럼 돼지같이본능적으로 취하던 음식 섭취의 방법과 거리가 멀어졌다는 것. 하여 이 글 속에 은근한 깊이로 녹아있는 소설가 천운영의 어머니 명자씨의 음식을 치료(이름하여 미각 되살리기) 차로라도 한번 맛보고 싶다.

 

식당 개업의 동기(작가의 위치에서 하게 된 스페인 체류)에서부터 막무가내식으로 진행된 식당 개업 때의 분위기며 작가 주변인들의 예술가스러운 도움, 그리고 어머니 명자씨의 도움과 몇 단골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래, 그야말로 소설가답다. ‘~스러운’, ‘~다운을 살면서 철저하게 익혀온 내게는 조금 뻔한 이야기들이었다. 소설가가 소설스럽게 풀어내니 즐겁게 읽힌 것은 당연지사.

 

위 언급한 것들은 내가 이미 읽은 그녀의 소설들에서 느꼈던 그녀의 글 쓰는 솜씨들을 이 책에서도 속속들이 체험할 수 있었다는 것. 느낌으로나마 철저하게(이 얼마나 어설픈 썰이냐마는). 아마 천운영을 내 시각이 감지한 순간 놓치지 않고 이 책을 꼭 읽어야겠다고 다짐한 이유이리라. 인간 생활사 솔솔솔솔 풀어내는 그녀의 글솜씨. 재미있었다. 단숨에 읽었다.

 

책 속에는 딱 한 번의 챕터에서 시가 등장한다. ‘알멘드라의 추억. 김선우 시인의 시 도화 아래 눕다’, 그리고 이 책에서 처음 접한 스페인 시인의 로르카의 시. ‘로르카라는 시인은 민용태의 번역이래서 스페인일 듯싶고, 그녀 천운영이 스페인 체류를 시작으로 이 책이 가능했으므로 그리 짐작한 것이지 사실 아직 국적도 확인하지 않았다.

 

급 난해한(?) 시류에 집착했던 나는 어느 날부터 만사형통이라는 단어 편에 빌붙기 시작하면서 진행된 무난한시류를 여기 언급된 로르카의 싯구에서 맛보았다. 아하, 이때 무난한이라는 낱말에 집착하지들 말라, 혹 이 글을 읽는다면. 사람들이여. 이때 무난한이라는 낱말은 세상만사와 여러 방향으로 줄 그을 수 있는이라는 지극히 따뜻한 감이니까.

 

어쨌든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 폰을 움직여서 단 한번 한 일이 내 도서 구입 채널 예스24’로르카의 시선집을 검색하여 카트에 넣어뒀으니까. 소설가 천운영으로 인해 나는 곧 로르카를 읽게 될 테니까. ‘무난한이라는 낱말이 주는 어감의 무게에 집착하지들 말라는 뜻.

 

그러므로 천운영이 이 책에 데려와 문자화한 로르카의 시 나의 손이 꽃잎을 떼어낼 수 있다면을 옮겨본다. 천운영이 로르카의 시들을 읽어보고 싶게 했으므로.

 

그때처럼 언제 한번

너를 사랑할 수 있을까? 내 마음에

무슨 죄가 있는가?

이 안개가 걷히면

어떤 다른 사랑이 나를 기다릴까?

그 사랑은 순수하고 조용할까?”

 

나는 사실 위 시를 읽으면서 그녀 천운영의 사랑을 짐작해 봤다. 참 고아한 아름다움을 지녔다고 생각되는 그녀의 얼굴에서 읽을 수 있는 선들. 그녀의 글 바늘을 처음 읽던 날, 책 속 그녀의 얼굴 사진을 보고 이후 그녀의 생을 알고서는 이토록 아름다운 그녀는 왜 혼자의 삶을 살까라는 생각을 했지. 부럽기도 했고. 어쩐지 그녀는 혼자 살아도 묵직할 것 같고. 나는 그냥 그러저러한 인간이니 이리 사는 게 아닐까 싶었던. 이 책으로 확인되는 여전히 아름다운 그녀. 나는 그녀, 천운영이 자신의 책 속에 옮긴 위 로르카의 시를 읽으면서 한참 그녀의 얼굴을 내 눈 속에 담고 있었다. 몇 번을 읽으면서 내내. 어쨌든 아름다운 시다. ‘무슨 죄가 있는가?’,‘또 다른 사랑’.

 

등장하는 여러 스페인 음식 중 내게 딱 맞는 음식은 파에야’인 듯. ‘역류성 식도염을 포함한 미미한 위염(순전히 기분 여하에 따라 증상을 드러내는)을 앓고 있는 나는 언젠가부터 이것 저것 섞어 만든 잡식성음식을 찾는다. 여유롭게 음식을 즐기는 식탁과 멀어진 상태이다. 음식 만드는 것도 귀찮다. 어쩐지 조리법도 쉬울(쉽다는 말에서 느낄 수 있는 가벼움과는 또 다른 의미이므로 혹시 이 글을 읽는 그대들이여. ‘쉽다가벼움을 굳이 연결 짓지 말라.) 듯싶은 파에야가 안성맞춤이다(‘파에야의 진면목을 아는 사람들이여. 나를 나무라지 말라. 단지 글 속에서 내가 찾은 단순한 느낌에 불과하니까). 내 이 요리에 도전해 볼 참이다. 아스파라거스와 파슬리의 진짜 요리도 해 맛보고 싶다. ‘멸치식초조림도 해서 먹어보고 싶고. , 갑오징어 손질도 여러 방법으로 꼭 경험해 보고 싶다. 되도록 온 몸이 녹초가 되도록.

 

쓰레기 전쟁은 자본의 민낯을 읽을 수 있었다. 가끔 쌓여있는 쓰레기들을 보면 쓰레기더미에 묻혀있는 내가 떠오른다. 제발 쓰레기들을 줄여야 한다. ‘자기가 만든 쓰레기를 책임져야 한다. 책 속 할머니처럼 자기가 만든 쓰레기를 처리할 수 없다면 만들지 말 것. ‘먹고 살지 말 것까지 언급하면 나쁜 년이 될 것이므로 이 쯤에서 멈추기로 하고. 그 할머니 해대는 민원들.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허상이자 허깨비이자 마녀놈들이다. ‘자본을 사는 모든 인간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아니면 인류는 정말 그 끝을 보게 될 것이다.’ 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책의 끝에 쓴 마지막 영업일의 2인 식사권진짜로를 읊을 만큼 소설적이다. 천운영이 쓴 글인데 진짜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에 꽉 막혀 있는 나 자신을 탓한다. ‘아이들 키우느라’, 오래전에 획득한 스페인 요리 체득 기회를 잊고 있었다니. 대부분의 삶이다. 나도 물론. 문 닫기 전 올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식사권의 주인공들이여, 부디 잘 살기를.

 

2부이지 싶다. 2부에서는 몇 유명 인사들을 식사에 초대하여 인터뷰한 글이다. 이이언과 정지영, 노라노, 김훈에서 가끔 글 읽기를 멈췄다. 이이언의 음악을 여럿 듣고 그를 느껴봐야지. 정지영의 영화도 다음 주에 몇 봐야 되겠다. 노라노. 그녀는 사실 처음 읽는다. 그녀도 상세하게 들춰 볼 예정이다.

 

김훈 인터뷰에 와서 한참을 머뭇거렸다. 내 뇌세포들의 치고받고가 진행되었다. 그의 글을 읽을 때면 했던 내 뇌세포들의 싸움이 또 시작되었다. 세월 더 가기 전에 그의 글 한 편은 꼭 필사해 보고 싶다. 필사해야지. ‘에 대한 그의 언급은 나를 소스라치게 했다. 분명 그렇다. 칼 소리만으로도 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가끔 칼질로 내 분노를 전하던 때가 떠올랐다. 온갖 음식들의 융합이라서 맛을 내기가 어렵다는 찌개’, 그리고 늙어야 제 맛을 알 수 있다는 나물요리. 아하, 나는 그러고 보면, 이미 중증의 늙음에 살고 있다. 어쩌면 빨리 늙어버리는 병을 오래 전부터 앓고 있는 거다. 나는 내 생 언제부터라고 말할 수 없는 아주 어린 날부터 나물을 참 좋아한다. 나물을 온통 모두 좋아한다. 나물만으로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포만감까지 체득할 수 있다. 결론 나는 너무 빨리 늙었고 나는 이미 늙었다. 그러므로 앞으로 늙을 것은 걱정하지 말자.

 

나는 가끔 천운영의 글김애란의 글에서 공통분모를 읽는다. 뭘까.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생각이 제대로 굳어진다. 연구해 볼 일이다.

 

아름다운 그녀, ‘천운영을 읽었던 어제, 토요일은 참 뜻깊은 날이다. 올해 들어 처음 책을 완독했다. 영화와 독서의 시간을 재분해하기로!

 

알함브라의 궁전도 가보고 싶고,

산 오징어도 새삼 맛보고 싶고,

, ‘돈키호테도 다시 읽고 싶다.

어서 라르코의 시를 읽고 내 좋아하는 김선우의 시도 읽어야지.

 

참 천운영의 글 생강부터 읽어야지. 남극에도 가고 싶다. 사실 나는 가끔 얼음 속에 묻혀 죽고 싶다.

 

남은 날들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하고 싶은 일들은 무한 덧셈으로 늘어난다.

 

늘어났다, 또.

 

눈물겹다.

 

눈물 솟구친다. 

 

 

반응형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죽음의 춤 - 보들레르  (0) 2021.12.18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 1 - 진이정  (0) 2021.12.18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 2 - 진이정  (0) 2021.12.18
태양미사 - 김승희  (1) 2021.12.18
기형도의 엄마 걱정  (0) 2021.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