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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창작

빌붙어 살기

 

빌붙어 살기

 

고목에 기생하는 식물은 귀한 약재가 된다고 했는데. 픽사베이에서 '기생'으로 검색하여 가져옴

 

 

얼기설기

모여 산다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딴 살림을 차리기로 했다

 

수저 한 벌

국그릇 밥그릇 한 벌

빈번히 채워야 할 알맹이는 어디서 채울까

 

손가락 한 번

발가락 한 번

온몸 뒤틀기를 한 번 하면 되려니 했다

 

영육을 싸잡아 한 다스

영혼을 담으면 한 가마니

넋 채우면 한세상 가능하리니

 

노쇠한 덩이는 값을 채워 줄 수 없으며

부피를 잴 수 없는 의미는 무의미하며

차원을 초월할 수 없으면 가능한 것이 없다고 했다

 

돌아가기로 뒤돌아 달려가 숨어들기로 했다

결코 자아를 드러내지 않기로 작정했다

최선의 방법이라고 했다

 


노구(?)를 이끌고 곧 있을 행사를 위한 사전 답사를 다녀왔다. 이런 일을 언제 또 할 수 있겠느냐 싶어 즐거이, 가볍게 해치우기로 했다. 해냈다. 거뜬히 해냈다. 마무리하고 돌아와 마구 흡입한 '쭈삼(쭈구미 삼겹살)'이 내 지친 영육을 달래주었다.

소주는 참았다. 기왕 해낸 일 있으니 맨 정신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자 했다.

 

맨발 걷기를 두 시간여 치르고 귀가했다. 미친 여자 길게 늘어뜨린 치마 걷어올리고 걷는 차림으로 열심히 걸었다. 모래흙과 부피 적은 돌들 위에서 내 발바닥이 신나 했다. 오늘 담았던 삶의 지루성 까탈스러움을 모두 땅에 뱉아내고 나니 한결 몸이 가벼웠다. 냉물 샤워에 머리 감기까지 하고 나니 온 세상이 내 세상이었다.

 

늙었다고 뻑뻑 기는 삶을 늦추리라고 다짐하는데 슬쩍 눈물샘이 운행하려 했다. 제까닥 멈춰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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