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붙어 살기
얼기설기
모여 산다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딴 살림을 차리기로 했다
수저 한 벌
국그릇 밥그릇 한 벌
빈번히 채워야 할 알맹이는 어디서 채울까
손가락 한 번
발가락 한 번
온몸 뒤틀기를 한 번 하면 되려니 했다
영육을 싸잡아 한 다스
영혼을 담으면 한 가마니
넋 채우면 한세상 가능하리니
노쇠한 덩이는 값을 채워 줄 수 없으며
부피를 잴 수 없는 의미는 무의미하며
차원을 초월할 수 없으면 가능한 것이 없다고 했다
돌아가기로 뒤돌아 달려가 숨어들기로 했다
결코 자아를 드러내지 않기로 작정했다
최선의 방법이라고 했다
노구(?)를 이끌고 곧 있을 행사를 위한 사전 답사를 다녀왔다. 이런 일을 언제 또 할 수 있겠느냐 싶어 즐거이, 가볍게 해치우기로 했다. 해냈다. 거뜬히 해냈다. 마무리하고 돌아와 마구 흡입한 '쭈삼(쭈구미 삼겹살)'이 내 지친 영육을 달래주었다.
소주는 참았다. 기왕 해낸 일 있으니 맨 정신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자 했다.
맨발 걷기를 두 시간여 치르고 귀가했다. 미친 여자 길게 늘어뜨린 치마 걷어올리고 걷는 차림으로 열심히 걸었다. 모래흙과 부피 적은 돌들 위에서 내 발바닥이 신나 했다. 오늘 담았던 삶의 지루성 까탈스러움을 모두 땅에 뱉아내고 나니 한결 몸이 가벼웠다. 냉물 샤워에 머리 감기까지 하고 나니 온 세상이 내 세상이었다.
늙었다고 뻑뻑 기는 삶을 늦추리라고 다짐하는데 슬쩍 눈물샘이 운행하려 했다. 제까닥 멈춰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