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날 - 이병률
새 날
- 이 병 률
가끔은 생각이 나서
가끔 그 말이 듣고도 싶다
어려서 아프거나
어려서 담장 바깥의 일들로 데이기라도 한 날이면
들었던 말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거야
어머니이거나 아버지이거나 누이들이기도 했다
누운 채로 생각이 스며 자꾸 허리가 휜다는 사실을 들킨 밤에도
얼른 자, 얼른 자
그 바람에 더 잠 못 이루는 밤에도
좁은 별들이 내 눈을 덮으며 중얼거렸다
얼른 자, 얼른 자
그 밤, 가끔은 호수가 사라지기도 하였다
터져 펄럭이던 살들을 꿰맨 것인지
금이 갈 것처럼 팽팽한 하늘이기도 하였다
섬광이거나 무릇 근심이거나
떨어지면 받칠 접시를 옆에 두고
지금은 헛되이 눕기도 한다
새 한 마리처럼 새 한 마리처럼 이런 환청이 내려앉기도 한다
자고 일어나면 개벽을 할 거야
개벽한다는 말이 혀처럼 귀를 핥으니
더 잠들 수 없는 밤
조금 울기 위해 잠시만 전깃불을 끄기도 한다
- 이 병 률 시집 ‘찬란(문학과 지성사, 2010)’ 중에서
수많은 불면의 밤들~
나는 '부적'을 그려 베개 밑에 넣어두곤 잠에 들곤 했다.
"내일 아침 눈을~ ."
누군가 내 이 행동을 보고 퍼부었지.
"니, 징그럽게 오래 살 거다. 똥을 벽에 바를 날까지~"
나는 대성통곡을 했다.
점차 나는 불면을 즐기려고 했다.
여전히 그렇게 산다.
'사는 게 뭘까?'
이 시를 읽고 내 이런 옛날 일을 떠올리는 것을 읽으신다면 이병률 선생님이 그러실 게다.
'내 시는 이렇게 소소한 행동을 들먹이라고 쓴 시가 아닌데~'
"죄송해요. 내 사죄의 뜻으로 좋아하는 선생님의 산문집 <끌림>을 꺼내서 다음 주 화요일까지 꼭 다시 읽을 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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