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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영화

하루 반의 시간 A Day and a Ha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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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반의 시간 A Day and a Half

 

 

대표 포스터. 영화 홈에서 가져옴

2023.09.01.

15세 관람가

장르 드라마, 스릴러

스웨덴

95분

 

파레스 파레스 감독

알렉세이 만벨로프, 알마 포이스티 그리고 파레스 파레스 등 출연

 

"소중한 사람을 지키려고 노력해도 실패할 때가 있다. 우리는 이미 서로 달라진 후였다. 다만 노력은 한다. 그게 중요하다."

영화 내내 파탄이 나려는 부부(아직 도장은 찍지 않았다니까~, 사실 이미 끝난 사람들이었지만)를 차에 싣고 달리는 경찰 루카스 말키(이하 루카스로 칭한다)의 말이다.

 

노력한다는 것. 부부간의 노력. 이게 말이니 쉽다. 루카스의 집안 사정은 한 단계를 순조롭게 넘어선 상태이기에 위 문장의 상황이 가능했던 것. 

"이제는 친구로 남기로 했어요. 자식 양육에도 둘이서 최선을 다하기로 했어요."

가끔 뉴스 상으로 유명인들의 이혼 관련 소식을 접할 때면 듣곤 하는 문구이다. 이 상황은 위 루카스의 문장처럼 서로에 대한 분노를 한 가닥 다리미로 녹여 문대고 난 후이다.

 

실화라는 이 영화는 그러지 못하다. 낯익은 배우 파레스 파레스가 이런 비슷한 상황의 뉴스를 보고 시놉시스를 마련하여 감독 데뷔작으로 내놓았단다. 첫 작품치고는 꽤 괜찮다. 남자 주인공은 배우로서는 초년병(?)인 듯 싶으나 열심히, 절박한 자기 감정의 수위를 조절하여 드러내는 데에 최선을 다했다. 영화 '토베 얀손'으로 기억에 있는 여배우 알마 포이스티는 상당한 수준의 연기를 펼치는 배우이다. 상당히 지적이다. 다양한 선을 지닌 배우이다. 크게 활약하는 역은 아니지만 자를 곳에서 자를 줄 알고 화를 북돋워 표현해야 할 때를 잘 알고 있다. 그래, 제법 실화라는 것이 실감났다. 이는 우리의 현실과 긴밀하게 연결된 고리를 지니고 있는 내용이라는 거다.

 

알바니아 태생의 난민인 남자 아르탄. 우연히 스웨덴의 여자를 사랑했나 보다. 나이 마흔 즈음의 여자 루이스를. 둘 사이에는 카산드라라는 젖먹이 딸이 있다. 난민 아르탄과 노처녀 루이스는 친정 부모의 미움 속에서도 아이를 낳고 결혼을 하였으나 친정과의 사이가 나아지지 아니하였다. 유색인종에 대해 철저한 차별을 생활화하고 있는 장인 영감으로 인해 난민 신랑은 극으로 치닫는 분노 위에 살고 있다.

 

난민 아르탄은 장인 영감으로 인해 교도소 생활을 했단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자기 품에서 사라진 딸 카산드라를 만나기 위해 권총을 들고 부인을 찾는다. 의료 센터이다. 그는 몇 차례 아내와의 만남을 시도하였으나 아내가 응해주지 않았던 것. 부인을 인질 삼아 딸 카산드라가 있는 루비나의 친정으로 차를 몰아가고 운전하는 남자는 경찰 루카스.

 

영화는 줄곧 평행선이다. 그 둘을 이끄는 경찰 루카스의 세심한 살핌이 대단하다. 루카스가 자기 가족 상황을 말했을 때 아트만의 심경 변화에 걸었던 기대는 불필요한 것이었다. 친정에 도착하여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장인의 사랑도 딸이 아니었고 장모의 사랑은 딸에게는 물론 사위에게도 정이 없었다. 희망의 출구가 마련되지 않고 있음을 아트만 자신이 이미 잘 알고 있다.

 

풀 수 없는 문제 역시 죽이 되든지 밥이 되든지 시간이 해결해준다. 별로 길지 않았다. 혹은 아주 긴 시간. 하루 반의 시간. 의료기 센터로 아내를 찾아 돌진했던 성격 그대로 아트만은 빈 구석이 없다. 철저하게 아내에게서 딸 카트리샤를 뺏을 날 을 기다릴 뿐이다. 더는 빨간 줄을 긋게 될 흔적을 막으려는 루카스의 차분한 안내가 그래도 아트만의 마음을 살짝 움직였다. 사실이다. 인간사 매사가 그렇더라. 차분할 것! 시종일관 인내할 줄 아는 루카스가 존경스러울 정도.

 

슬픈 인간의 역사이다. 결혼해서 죽어라고 평생 사는 사람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 사실이다. 나도 그렇다. 나이 서른 혹은 마흔 되도록 한 라인만을 타고 살아온 인생. 그 생에게 무엇을 바랄 것인가. 흔히 말한다. 남편의 버릇은 옹고집이고 마누라의 생각은 똥고집이다. 결혼해 살면서도 독립은 꼭 필요하다. 공식적인 상황과 비공식적인 상황을 철저하게 구별하여 결혼생활을 할 필요가 있다. 각자 생활을 하면 더군다나 근무 지역이 다른 생활이라도 할라치면 자주 보는 것이 아니어서 미움도 서서히 혹은 옅게 들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원거리 부부도 괜찮다. 기본이 잘 다져졌다면 말이다.

 

한데 아트만과 루이스는 기본은 커녕 불신으로 하늘 가까이까지 가슴에 찬 분노를 안고 살고 있던 중. 한 발짝만 서로 앞으로 나아가서 손가락 끝이라도 붙잡고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이렇게까지 했으랴. 그 둘의 사이는 이이 골골골골 균이 들어앉아서 썩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채 하고 살아냈다는 것. 

 

남여의 삶. 서로 짝을 지어 살아내는 삶. 아이가 있으니 꾹 참아내고 살아가는 삶. 사실 남여지정이니 결혼이니 하는 것들은 허울 좋은 인간들 사이 그럴싸한 인간 사회의 방패를 만드려는 시도 아니었을까. 이 영화에서는 아이를 찾기 위해 애쓰는 와중에 만들어진 상황. 도무지 해결이 만무한 상황 속에서 진행되는 왼칼과 오른 칼의 싸움을 반성할 일! 만들어진 괜한 규칙이 아닐런지. 

 

루카스는 돈독란 가정사로 돌아갈 듯 싶으나 아트만과 루이스는 영원히 남으로 살 듯. 하루 반에 벌인 행동으로 또 감옥행을 해야하는 아트만. 축복 받지 못한 결혼에 난민 아트만과 잘 맞지 않았을 사고와 습관 등으로 정신병까지 앓게 된 루이스. 둘은 만나지 않았어야 할 팔자이지 않았을까. 진리와 순리를 배반한 억지 사랑이 아니었을까. 끝없이 길 위를 달리는 차에 있는 아트만과 루이스는 어디를 향해 차를 달리게 하는 것일까. 밤새 친정으로부터 아이를 빼내개 위해 달렸던 아트만은 과연 어떤 상황으로 추락하게 될까. 

 

상식적인 말이지만 여자 주인공인 '루이스'에게는 아트만에 대한 정이 남아있지 않았다. 딸에게도 아트만은 잊혀진 존재. 난민 주제에 감히 내 딸을 넘봤느냐며 총을 들이미는 장인과 딸을 헐뜯느라 여념이 없는 장모에게는 사위가 인간 이하였다. 아트만은 누굴 믿고 살게 될까.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 뻔한대도 부지런히 달리게 하는 아트만의 생각은 무엇일까. 슬픈 일이다. 그에게는 방법이 없다.

 

영화를 보라. 10점 만점에 후한 점수 8점을 줄까. 괜찮은 영화였다. 많은 생각도 할 수 있으며 나눌 수도 있다. 가정을 이루고 산다는 것. 어지간한 인내와 사회 속에서 제도적인 편승의 강도에 의한 것이 아니고서는 사실 사람살이의 정석으로 안주하면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기적인가. 나를 비롯한 많은 수가 사실은 현실에 눈 감은 기적을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것을 소심하리만치 상세하게 생각하게 하는 방법도 부부 생활을 하려면 준비해야 한다. 참 괴로운 일이다.

 

부부싸움. 이젠 결코 칼로 물베기가 아니다. 평행으로 된 선을 날카롭게 구워서 제대로 난도질하는 것이 목적일 수 있다. 세상 참 무섭다. 결혼. 천번 만번은 생각해 본 후 할 일이다. 젬병스러운 꼭 찌르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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