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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영화

나의 피부로 On My Skin, Sulla mia pe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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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피부로 On My Skin, Sulla mia pelle

- 스테파노 쿠키의 마지막 7일

 

 

대표 포스터. 영화 홈에서 가져옴

 

2018. 1시간 40분. 15세 이상 가

알레시오 크레모니니 감독

알레산드로 보르기, 자스민 트린카, 밀비아 마릴리아노 출연

2018

장르 드라마

국가 이탈리아

수상 내역 제64회 다비드 디 도나텔로 어워드, 프로듀서상, 남우주연상(알레산드로 보르기), 다비드 지오반니상(알레시오 크레모니니), 신인감독상(알레시오 크레모니니), 2019

 

왜 제목은 ‘나의 피부로’일까.

 

영화 시작에서 제목에 대해서 한 생각은 이미 본 여러 ‘피부’에 관한 복잡하고 한편 잔인한 내용의 영화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마 ‘피부’를 팔고 꺼내고 분해하는 등의 복잡한 진행과 결과를 담은 영화들이 내게 이미 아프게 남아 있는 것. 이 영화도 그런 류의 영화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열었다. 평점 덕분에 보기로 했지만 망설임도 적지 않았다.

 

마약류 소지 또는 공급책으로 의심되어 군 경찰에 붙들린 이탈리아 청년 스테파노 쿠키. 보아하니 그는 어머니의 얼굴에 우울을 안치시킨 불효자. 이제는 좀 반성의 아이콘을 안고서 어머니의 안부를 걱정할 정도로 괜찮아진 듯싶다. 현실은 답답하겠지만 점차 나아지는 생활을 이끌어 나가리라. 머지않아 괜찮은 삶을 꽤 진지하게 만들어내지 않을까. 옛 혼돈의 찌끄러기가 아직 덕지덕지 남아 붙어서 그를 괴롭힐지라도 거침없이 파쇄시켜가면서 이겨내는, 마침내 아름다운 삶을 살아내는 영화이리라.

 

뜻밖의 진행이었다. 나의 기대가 어그러져 가기 시작했는데도 한갓 희망을 놓지 않았다. 군더더기려니 생각하였다. 위 문단에서 말한 찌꺼기에 불과한, 영화 진행의 보조 요소들이려니 했다. 점차 뜻밖의 영화 진행이 그대로 굳어진다고 생각되었을 때 내가 예측했던 애당초 생각들이 차라리 맞기를 희망했다. 차라리. 내가 이미 여러 편으로 소화했던 피부 관련 영화들의 리메이크작이기를 바랐다.

 

청년 스테파노 쿠키에게 마약류가 있기는 했다. 영화가 끝마쳐질 때 드러난 것이지만 청년의 집에서도 상당한 마약류가 발견되었다. 마약류 소지에 관한 선에서 경찰이 움직인다면 당연한 처사이다. 이를 벗어난 것이 문제이다. 벗어난 정도가 아니었다. 청년의 이동에 관한 그 어떤 정보도 보호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상태에서 면회도 허락되지 않는다. 군 경찰에 잡혔던 날 청년은 온몸에 폭력 세례를 당했다. 얼굴은 온통 멍으로 뒤덮였고 자기 얼굴에 대한 주변인들의 물음에 이렇게 답한다.

“계단에서 넘어졌어요.”

그는 이미 척추가 부러진 상태였다.

 

청년의 반응은 왜 이래야만 했을까. 그는 왜 어처구니없는 폭력에 맞대응하지 않았을까. 절대로 계단에서 넘어진 것이 아니라는 데도 그는 왜 그저 자기 잘못이라고 우겼을까. 뭔가 무차별 폭력이 시행되었다는 것이 빤한 데도 청년은 왜 자기가 당한 바를 함구한 것일까. 억울함을 공표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불신이다. 어떤 사람도 믿을 수가 없는 사회를 이미 경험한 자의 판단에서 그리하였을 것이다. 어느 사회에서나 믿을 만한 사람이 없구나. 스테파노 쿠키는 아무도 신뢰할 수가 없어 아무렇게나 자기 상태의 원인을 내놓은 것이다. 죽기 전 일주일. 군 경찰의 가혹 행위로 사람이 죽고 난 후에야 문제가 되는 사회. 우리나라도 그랬었지.

 

스네파노 쿠키. 영화 홈에서 가져옴

 

실화 스테파노 쿠키의 죽음은 그가 죽은 후에야 그의 가족이 경찰의 가혹 행위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에 마침내 문제시되었단다. 알량한 공적 시스템의 희생양이 된 한 개인의 삶. 공적 시스템은 한 개인과 또 한 개인과 거기에 또 더해진 수많은 개인의 피와 땀이 어린 세금으로 운행되는 것인데 말이다.

 

2009년 이탈리아에서는 감옥과 구치소에서 176명이 죽었단다. 스테파노 쿠키의 억울한 죽음은 175건에 달하는 죽음 중 하나일 뿐이다. 떠들어 보니 스테파노 쿠키의 사망 사건에는 여러 교도관, 지저분한 의무관, 악마의 탈을 쓴 군 경찰이 부지기수로 연루되어 있었단다.

 

알렉시오 크레모니니 감독은 말했단다.

“정의를 재판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니다. 살아 있는 이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통해 더는 말할 수 없는 사람의 목소리가 되어주길 원했다.”

그가 밝힌 연출 의도였다.

 

지금도 재판이 이어지고 있단다.(2023년 현재의 시점인지는 모르겠다.) 쿠키의 누나인 일라리아 쿠키는 <내 피부 위로>의 상영관을 찾아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고문에 대한 저항을 다룬 법은 없다. 법은 정의를 수호하는 경찰의 편”

다양한 조사와 수사에도 이리저리 관련된 여러 고위직 인사들은 마냥, 여전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쿠키 누나의 말은 관객의 눈시울을 자아냈고 나도 울게 했다. 저 억울한 죽음의 영혼을 누가 위로해 줄 수 있을까. 저 안쓰러운 가족의 마음을 누가 쓰다듬어 줄 수 있을까. 영화 평론가들은 다음과 같이 평했단다.

“강한 타격을 정확히 어디에 꽂을지 아는 영화”

 

스테파노 쿠키를 연기한 알렉산드로 보르기는 이 영화로 제64회 다비드 디 도나텔로 어워드 오리종티 경쟁 부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가 온몸으로 연기한 세상을 향한 불신과 분노는 너무 가슴 아팠다. 열연이었다. 눈물의 영화였다. 알렉시오 크레모니니 감독은 늘 정의를 테마로 한 이야기를 사람들에 내놓는다. 각자 자기 영혼을 돌아보게 한다. 스스로 불쌍해지지 않는 방법을 탐구하게 한다. 고맙다.

 

 

그를 내친 사람들에게 저주를! 영호 홈에서 가져옴

 

단 한 번이라도 스테파노 쿠키가 자기가 겪은 억울함을 말할 기회가 주어졌더라면. 사실 그 기회마저 이 사회와 공권력이 뭉갠 셈이다. 그의 단 한 틈도 놓아주지 않았으므로. 가족들도 좀 더 강력한 시위를 했어야지. 의료기관도 혹은 종교기관도 쿠키가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하는 데에 힘이 되어주질 못했다. 사람만 불쌍하다. 불쌍한 것이 사람이다.

 

왜 제목이 '나의 피부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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