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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영화

행복한 엠마, 행복한 돼지 그리고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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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엠마, 행복한 돼지 그리고 남자 Emma's Bliss

- '돼지'에게 집중하라.

 

 

 

2008.01.31.

코미디, 드라마, 멜로/로맨스

독일

99분

세종커뮤니케이션스

 

감독 스벤 타딕켄 Sven Taddicken

조디스 트라이벨, 위르겐 포겔, 히네르크 쇠네만, 마틴 파이펠 등 출연

 

대표 포스터. 영화 홈에서 가져옴

 

1. 혼자사는 삶은 자기 멋대로 살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그러나~

 

    "그걸 고쳤어요? 그맛에 타는건데"

    낡아빠진 자기 자전거가 타인의 손에 멀쩡하게 고쳐진 것에 불만인 여자. 그녀는 제멋대로 나대는 자전거를 탈 때 온몸으로 체감하는 제멋대로의 리듬을 즐긴다. 자기 삶의 원초적인 모습을 즐기는 식이다.

 

    한긋진 곳에 드넓은 농장이 있다. 이곳은 상식적인 농장과 다르다. 가축의 범위에 드는 동물들로 구성된 농장이다. 꿀꿀꿀꿀 돼지들과, 타닥타닥 한정된 움직임으로도 한껏 씩씩한 닭이 살고, 뗏똥뗏똥 묘한 리듬의 걸음걸이라는 독창성을 지닌 오리들이 어우러져 산다. 

 

   진정 보통의 농장과 다른 것은 농장의 주인에 있다. 홀로 사는 여자. 여자 혼자 산다. 이름하여 '엠마'. 그녀는 농장을 누비는 가축류의 동물들을 다스리느라 마냥 바쁘다. 심심하지 않다. 세습 농장이다. 홀로 사는 여자인지라 '옛날 옛적에'로 시작되는 가족사는 굳이 나열할 필요가 없다. 그녀가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겉보기에 그녀 엠마는 농장의 여러 녀석들을 다스리느라 심심하지 않다. 내가 일백 여 종이 넘은 화초들과 주말을 사는 것처럼. 내가 내 화초들과 말하고 안쓰러워 하고 때로 내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커가는 이유로 내게 짜증을 불러 일으켜서 바쁘게 움직이는 것처럼, 엠마도 매일의 자기 농장의 동물들로 인해 바쁘다. 그녀, 엠마의 삶은 온전한 생의 순리를 산다. 잉태에서 죽음까지를 온몸으로 산다. 

 

  다만 사람인지라 엠마는 사람이 그립다. 식탁에서 자기 앞의 의자에 앉아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립다. 비라도 내려 마음 흐느적거리게 되는 날이면 기우뚱해지는 마음에 의지처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아쉽다.

 

  현실적으로는 돈이 필요하다. 세상은 묶인 땅이 아니라 수시 내돌릴 수 있는 현금이 필요하다. 그녀는 사람살이의 아쉬움이며 그리움을 다독거릴 수 있는 방법으로 돼지도 잡고 닭을 몰고 오리의 뒤뚱 걸음을 흉내내면서 살아낸다. 동물들의 뒤통수를 치곤 하는 경제를 일으키기의 방법도 시행하곤 한다. 성공하든지 말든지 일단 하면서 산다, 그녀는.

 

2. 혼자 산다고 함부로 문을 두드리지 말라.

 

    "포기해라 넌 쟤 감당 못해."

    한 남자의 곁에 머물기 위해 철창문을 부수고 포크레인을 닮은 짚차를 몰고 가는 여자. 그녀를 보며 절망하는 아들에게 어미가 건네는 말이었다. 남자는 단지 치근덕거리는 일만 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용기를 한 푼도 지니지 못한 어리숙한 남자였다. 그런 남자가 어찌 엠마의 맘에 들겠는가.

 

   읍내(?)에 나가면 산발적으로 엠마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있다. 엠마는 건강한 미녀이다. 그 중 경찰관으로 일하는 총각이 있다. 홀어머니의 손 안에 사는 자. 무너지지 않은 엠마를 유혹하는 데에 진이 빠져 마침내 떠오른 방법이 엠마의 경제 문제를 들춘다. 가장 멍청한 인간 유형. '경제'를 미끼로 상대를 낚겠다고 나서는 인간. 가장 비겁한 사람. 경찰인 그가 그런다. 홀어머니를 꼭꼭 모시고 다니는 남자.

 

 

   혼자 산다고 무작정 덤비지 말라. 혼자라는 것이 말이 쉽지 그냥 혼자가 아니다. 혼자 살 때는 보통 그 이상을 사는 거다. 아무라도 좋다는 식은 결코 아니다. 싫은 사람, 마음에 오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안 된다. 엠마는 그러므로 영화적인 여자이다. 드라마틱한 여자. 매력있는 여자. 그녀는 오두방정을 떨며 자기 사랑을 내보이는 경찰 총각을 무시한다. 당연한 것. 과감하게 자른다. 세상을 잘 사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세상의 면면을 제대로 잘라내기를 잘 한다는 것. 엠마가 이를 해낸다. 안 되는 것은 절대로 안 된다.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3. 신은 사람을 보낼 곳에 보낸다.

 

    어느날, 돈이 오고 사람이 온다. 엠마는 자칫 잘못하면 집을 넘겨야 할 상황. 바닥을 기는 경제. 집안 대대로 쌓여온 빚. 최고의 값을 자랑하는 차량 속에 한 남자가 구겨넣어진 채 엠마의 집에 뚝 떨어진다. 돈보따리를 차에 싣고.  뭐, 뚝 떨어졌겠는가. 신은 절대로 느닷없이 돈을 뿌리지는 않는다. 신도 줏대가 꼿꼿한 생을 추구한다.

 

    남자 하나 최고급 승용차에 잠긴 채 엠마의 뜰에 뒤집혀 떨어져 박힌다. 엠마는 재빨리 머리를 회전시킨다. 돼지 목에 쓰윽 잘드는 칼을 대어 잘라내는 엠마는 과감하다. 물론 사람은 함부로 다루지 않는다. 뚝 떨어진 남자. 미남은 아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남자가 필요하다. 노예로 잡아놓을지라도. 엠마는 남자가 절실하다. '운명'을 예감했는지 그녀는 뒤집혀 땅에 박힌 최고급차 안에 축 늘어진 남자가 필요를 넘어 맘에 쏙 들기도 한다.

 

4. 남자도 결국 여자 있어 산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 당신만 느껴질 뿐이야."

    이 말을 내놓았다면 사람과 당신은 이미 한몸일 거다.

 

   어느 비 오는 밤, 엠마에게 안긴 한 남자. 그는 어쩌자고 막무가내 최고급 차를 훔쳐 타고 죽어라고 거리를 달리는가. 그는 여러 날 만에 깨어나는데 우선 돈을 찾는다. 엠마는 사내의 돈은 폭발된 차와 함게 사라졌노라며 담화의 주제를 돌린다. 현실적으로 가장 필요한 것은 돈이다. 살다보면 돈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우리는 잘 안다.

 

   늘 기우뚱거리는 삶이 전부였던 막스. 막스가 엠마의 마당을 침범한 남자이다. 어느날 이상 신호를 내보이는 몸을 의사에게 보였더니 시한부를 선고한다. 막스는 자기 세상은 끝나감을 확신하고 나름의 방법으로 시한부의 기간을 보내기로 한다. 친구 소유의 고가 차량을 끌고 질주한다. 한 더미 돈을 상자에 담아 옆자리에 놓고 세상을 들이받는다. 그리하여 빗속을 질주한 끝에 막스가 도착한 곳이 엠마, 홀로 사는 여자의 농장.

 

  자, 막스는 평소 우중충하게 삶을 살아오던 자다. 엠마 역시 늘 사람을 그리워하면서 살다가 죽을 팔자인가 싶다. 같은 부류의 남여가 운명처럼 상봉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웃사촌이다. 갈 곳 없는 막스는 엠마의 농장에 체류하게 되고 엠마와는 서먹서먹한 상황을 매만져가면서 정이 싹튼다.

 

5. 엠마 드디어 여자가 된다.

 

    "사신과 거래를 했어. 내 남은 시간을 너와 한번 더 자는거랑 바꾸자고.."

    스포가 되는 걸까. 남자가 여자에게 한 말이다.

 

   헝크러진 생활을 운명처럼 살던 엠마 곁에 정리정돈이 철저한 남자 막스가 움직인다. 정리의 달인 막스. 그 런 그가 자기 삶을 제대로 정리해줄 것 같았을까. 엠마의 육신이 동하고 정신이 움직이고 세상이 아름다워진다. 섬머슴 차림의 엠마가 옷장에서 드레스를 꺼낸다. 패인 가슴을 내보이고 싶어한다. 아름다운 몸매를 자랑하고 싶어한다. 그와 한 몸으로 침대에서 잠들고 싶어한다.

 

    막스는? 잊자, 잊자, 잊자 하지만 구역질을하고 토를 하고 꼬인 장을 휘어잡는다. 막스는 시한부 인생. 한데 쌓인 정처럼 또 무서운 것이 없다. 막스에게 엠마가 여자의 남자가 된다. 엠마의 농장에서 숨쉬는 신의 호흡을 감지한 막스. 사방으로 뻥 뚫린 엠마의 농장에서 자기 병도 툭툭 내뱉어지리라 여기고 싶었다. 막스는 어쩔 수 없다면 엠마와 농장의 품 속에 자기 몸과 영혼을 바치기로 한다.

 

   막스가 처한 상황을 인지하게 된 엠마. 막스의 질병을 받아들일까. 끝없이 치근덕거리는 경찰 친구의 건강한 몸이 이제 보일만도 하지 않은가. 씩씩한 남자의 품에 안겨 남은 생을 새롭게 숨 쉬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을까. 그런 엠마 앞에 막스가 자기 소망처럼 엠마의 땅과 엠마의 품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그저, 우연히 봤던 영화이다.  정말이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무엇을? 그것을. 장난기를 부리는 것도 한도가 있지. 어찌 죽음이라는 명제를 물으면서 장난기를 들먹이는가. 스토리텔링의 묘미는 반전이다. 좋은 글은 뜻밖에 벌어지는 사건 때문이다. 좋은 영화란 뒤통수를 통해서도 상상할 수 없는 기가 막힌 사건이 딱 하나 버티고 있어 그렇다. 그 사건이 사람의 벽을 치고 등을 치고 뼈를 치고 심장을 뚫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뻘건 피를 듬쑥듬쑥 내뿜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체 무슨 말.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다는 것을 상상해 보라. 막스의 소원에로 엠마의 농장에서 엠마가 내놓은 두 팔에 안겨 자기 목숨을 다하게 되면, 그렇담 엠마는? 엠마는 그런 막스를 어떻게 할까. 그가 동물을 다루는 방법에 있다. 어서 다시 영화를 보면서 찾아보라.

 

  보라. 영화를 보라. 영화는 보라고 만든 거다. 영화를 보는 이 복을 받을지니. 영화를 보는 이가 진정 나의 친구이며 이 영화 '행복한 엠마, 행복한 돼지, 그리고 남자'라는 영화를 본 사람은 참 사람이다.

 

 이 영화가 받은 영화제에서의 소개 글은 다음과 같다.

 '재담과 기발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작가 클라우디아 슈라이버의 소설 <행복한 엠마, 행복한 돼지 그리고 남자>를 토대로 만들었으며, 클라우디아가 직접 영화의 각본에 참여하여 화제가 된 작품이다. 더불어 <글루미 선데이>의 시나리오 작가로 명성을 떨친 루스 토마가 공동으로 참여해 원작보다 더 유쾌하면서 감동적인 각본을 탄생시켰다. 이를 바탕으로 한 감독 스벤 타딕켄은 농장을 가꾸며 살아가는 순박하고 씩씩한 돼지들의 친구이자 엄마인, 엠마의 코믹하고도 유쾌한 사랑 이야기를 완성도 높은 연출력을 살려 원작의 감동을 백배 증가시킨 영화로 재탄생시켰다.'

 

  나는 위 영화제의 이 영화 소개 글 이상의 쾌감을 이 영화를 시청하면서, 시청한 후 느꼈다. 쾌감이라니. 여러 방향으로 읽힌다는 것을 미리 밝힌다. 내가 느낀 쾌감은 오감을 동원한 쾌감으로 설명할 수 없는, 최고의 쾌감 그 이상을 맛봤다는 것이니. 보라, 이 글을 읽는 이들이여. 꼭 이 영화를 보라. 잘 만든 영화이다. 멋진 영화이다. 사람의 뒤통수를 텅 치는 영화이다. 나는 이 영화 속에 지옥과 천국은 공존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것이 인간사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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