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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영화

아무도 모른다 Nobody Kno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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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른다 Nobody Knows 2005

- 누구나, 사람이라면 느낄 만한 것을 버렸더니 새 삶이 시작되더라. 그러나~

 

대표 포스터1 - 영화 홈에서 가져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야기라 유야, 키타우라 야유, 키무라 히에이, 시미즈 모모코, 칸 하나에, 유 등 출연

 

이곳 모든 사진은 다음 영화 홈에서 가져옴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40283

 

대표 포스터2 - 영화 홈에서 가져옴

수상

2005

28회 일본 아카데미상(우수 여우조연상)

2004

31회 겐트 영화제(그랑프리)

57회 칸영화제(남우주연상)

남우주연상의 ‘야기라 유야’는 칸영화제 최초 남우주연상을 탔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맞을 거다.

 

 

대표 포스터3 - 영화 홈에서 가져옴

 

 

늦은 아침을 유튜브 강의 듣기로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경제 쪽 프로그램이다. ‘홍사~’. 아마 며칠 된 내용인 듯싶다. 경제 양극화가 불러올 참상을 전문가에게서 듣는~. 본격적인 진행 전에 진행자가 말했다. 우리나라 상위 1%의 월평균 수입이 4억 8천이란다. 나는 몇 % 일까 생각하다가 듣기를 멈췄다.

 

오늘 내가 리뷰를 하려고 하는 이 영화 ‘아무도 모른다’를 위해서는 위 내용을 들먹이는 것, 즉 상위 몇 퍼센트의 재산을 들먹이는 것은 예의에 맞지 않는다. 아마 이런 상황, 영화 같은 이런 삶, 영화보다 더 못한 삶을 사는 이들이 이 지구상에는 수없이 존재한다. 전 지구의 상위 몇 퍼센트의 삶, 즉 몇 가족의 삶이 아프리카 전체 인구의 수익을 더한 것을 능가한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두 번은 봤을 것이다. 아마 이번이 세 번째인가? 두 번째는 그렇다 치고 왜 나는 세 번이나 이 영화를 시청한 것일까. 알고리즘 때문일 수도 있으나 연휴 부근 이곳저곳의 사건 사고가 내 의도와 상관없이 읽혀 나는 다시 이 영화를 열었을 것이다. 내 생활을 반성을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평생 유독 ‘대체 인간은 왜 사는가’에 얽매인 채 살아가는 나 자신의 마음 다스리기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어쨌든 넷플릭스를 검색하다가 영화 <아무도 모른다>에 눈길이 멈췄다.

 

하루 한 편 이상의 영화와 다큐를 보는 삶은 사는 나는 이제 영화들을 열어보면 본 듯, 안 본 듯 미로이다. 검색 없이 영화를 켰다. 첫 장면에서 깨달았다.

‘봤구나. 생생하구나.’

영화를 좋아하는 이라면 대부분 이 영화를 알고 있을 것이다. 명화이다.

 

이 영화 리뷰는 이 블로그에 없다. 아마 다른 블로그에 올려져 있나 보다. 연 김에 이곳 블로그에도 리뷰를 쓴다. 그저 떠오른 내용과 현재 내 생각이다.

 

기억에 뚜렷하다. 감독의 재주가 느껴졌다. 첫 장면과 몇 컷에서 얼굴을 내민 것이 전부인 영화 속 엄마의 역. ‘유’의 연기, 그녀의 얼굴에서 나는 느꼈다.

‘저 여자는 분명 못된 역할이거나 바보스러운 역일 거다.’

확실했다. 그녀의 연기가 제대로 펼쳐진 셈이다. 요사스러운 그녀의 모습이 이 영화의 상업적인 성공에 일조했다고 여긴다. 물론 감독의 의도를 조용히 이끌어 가게 하는 명품 연기였다.

 

소년 가장으로 사는 큰아들. 그는 내가 본 일본 매우 중 최고의 얼굴이다. 성인이 된 후의 얼굴도 그렇지만 이 영화에 등장한 때의 그. 배우 ‘야기라 유야’는 굉장히 지적이면서 강인함까지 듬뿍 담은 모습이었다.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검은 눈썹과 진지함을 가득 담은 순수 블랙의 눈빛이 얼마나 든든한지. 영화 내내 그의 연기는 처음 작품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한 여자가 아들 하나를 데리고 이웃집에 가족 신고를 하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제 아이와 둘입니다. 아빠는~. 내 아이는 참 괜찮다는 방식으로 아들을 소개한다. 잠시 후 배달된 이삿짐에는 부피와 무게를 충만하게 겸비한 캐리어 몇이 대표적이다. 캐리어에는 각각 사람이 들어 있었다. 둘째, 셋째, 그리고 넷째 아이였다.

 

의문스러운 몇 날들이 지나가고 엄마는 자식들을 떠난다. 열두 살의 장남 아키라, 둘째 교코, 셋째 시게루, 그리고 막내인 유키까지. 네 명의 아이들이 자기들의 시공을 완성해 간다. 대표 아키라, 총무 교코, 대원 시게루, 순수 보호 대상자인 막내 유키. 엄마가 남긴 메모는 다음과 같다.

‘크리스마스 전에는 돌아올게.’

 

아, 중요한 사실을 들먹이지 않을 수 없다. 형제자매 넷은 모두 아빠가 달랐다.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내고 살아간다.

사람살이의 슬픈 정의를 확인했다. 실화란다. 통계적으로 이런 상황은 적지 않단다. 일본도 우리도. 슬픈 일이다. 아픈 일이며 철없는 혹은 악마적인 어른들의 못된 짓거리이다.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법적으로 다음과 같은 각서를 쓰는 일.

’ 우리 누구와 누구는, 아이를 낳게 된 후에는 절대로 별거나 이혼 등의 헛짓거리를 하지 않을 것을 서약하고 혼인합니다.‘

 

엄마는 노동하지 않는다. 이 사실이 이 여자의 막장 생을 충분히 난도질할 수 있다고 여긴다. 자식들을 키우기 위한 실질적인 노고는 행하지 않는다. 그녀의 언행은 전혀 엄마가 아니다. 미친 여자라고 낙인을 찍으면 사람 일에 함부로 말을 하지 말라고 하는 소리가 들려올까. 이 여자가 처한 상황을 함부로 말할 일이 아니라고 손가락질을 하지 말라고?

 

여자는 크리스마스 약속 이전에 이미 한번 가출한 적이 있다. 그녀는 남자를 찾는 중에 장남아키라에게 들킨다. 이 사실이 다행이라고 여긴다. 장남에게 준비를 시킬 목적이었을까.

’네 어미는 결국 너희들을 떠나게 될 것이다. 각오하렴. 준비하렴.‘

아키라는 이후 엄마를 향한 포기를 철저하게 해낸다. 얼마나 슬픈 다행스러움인가. 엄마의 통 큰 베풂인가. 얼마나 마음 넓은 엄마의 진중함인가. 이런~.

 

크리스마스 이전 귀가라는 약속이 아키라에게는 이미 약속 밖이다. 아키라는 매 순간 어떤 방법으로든지 동생들을 살리기 위한 모험을 진행한다. 또 다행인 것은 동생들이 아키라의 명령에 절대복종 정도의 신뢰를 지니고 있다는 거다. 철저하게 습관화된 언행일 수 있고, 살겠다는 절절함이 사람의 뇌 속에 일체 저항적인 혹은 비판적인 혹은 부정적인 반응을 못 하게 한 것은 아닐까.

 

넷이서, 어린 넷의 집단이 무리 생활을 진행하는 여러 영역의 방법이 눈물겹다. 물 한 방울이 없을 때 넷은 물을 길어온다. 음식이 없자 마을 편의점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구걸한다. 가게 주인은 기꺼이 도움이 되어준다. 또 다행이며 다시 다행이다. 사람으로 인해 짓밟힌 살림을 다른 어른이 도와준다. 아키라야말로 사람다운 사람이다. 아키라는 구걸도 구박도 처절한 짓밟힘도 감내한다.

 

소녀 ’사키‘와 만남은 그중 최고의, 외부인과의 만남이다. 아키라는 학교라는 곳이 그리웠다. 학교에 눈을 두고 사춘기를 살던 아키라가 만난 소녀가 '사키‘이다. 사키는 틀림없이 소외된 부류에 속한다. 사키는 아키라와 친해지고 아키라의 집에 오게 된다. 소외된 채 삶을 살아낸 사람은 자기처럼 소외된 채 살아가는 자들을 잘 안다. 사키는 아키라에게 돈을 내놓는다. 아키라는 거부한다. 사키의 돈은 받을만한 돈이 되지 않았다. 사키는 성매매를 통해 마련한 돈을 내놓은 것이다.

 

아키라와 사키는 진심을 나눈다. 서로를 철저하게 알게 된 둘은 둘만의 만남을 몇 차례 갖게 된다. 집에 돌아온 아키라는 끔찍한 상황을 목격한다. 막내 유키가 의자에서 떨어져서 다쳐 있다. 간직하고 있던 엄마의 주소로 전화하나 그녀와의 통화가 시작되려던 시각에 공중전화에 넣어놓은 돈이 멈춘다. 아키라는 사키의 돈을 사용하기로 한다. 언젠가 모노레일을 타고 비행기를 타고 싶어 했던 유키를 위해 비행장이 가까운 곳에 유키를 매장한다. 사키와 함께. 비행기의 이, 착륙이 가까운 곳으로 가 캐리어에 담긴 유키를 사키와 함께 매장한다. 매장 끝에 사키와 함께 돌아오는 길을 아키라는 눈물로 걷는다.

 

이후 아키라 네는 어찌 되었을까. 가끔 내가 만드는 ’아무도 모른다 2‘를 상상하여 만들곤 한다. 부디 건강하게 이겨냈기를. 승자가 되었기를. 어미, 못된 어미를 벌할 수 있는, 힘 있는 어른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잘 살아냈기를. 절대로 어미를 용서하지 않기를.

 

동생 유키를 묻고 울던 날의 아키라의 모습이 떠오른다. 옆에는 원조교제로 번 돈을 유키의 매장을 위해 내놓은 아키가 있었다. 영화는 철저하게 네 형제자매의 생활 안에서 필름을 옮긴다. 숨어 살아야 했던 운명을 사는 아키라의 세 동생은 베란다에 화원을 꾸민다. 깡통이며 비닐 화분 안에 흙을 쌓아 화초를 심던 아이들이 생각난다. 아이들은 어떻게든 세상은 살아간다. 살자, 살자, 살자고 몸부림을 친다. 아니다. 아이들은 어떠한 계산도 없이 지금 자기 앞의 생을 순수의 세계로 이끌어간다. 네 아이에게 행운의 여신이 함께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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