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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내 어머니의 언어

썽부터 내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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썽부터 내지 말아라.

 

이런 모습일까 -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내 어머니의 언어로는 '썽부터 내지 말어라'이다. 나, 가끔 '아'와 '아'가 아닌, '아'와 '어'의 어미로 문장 구성이 진행되는 것은 언어 습관때문이다. 거, '언어습관'이라는 것이 대단한 힘을 발휘하곤 한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가 왜 있겠는다. 쓸 데 없는 가지는 여기에서 멈추고.

 

초등시절 대도시 유학으로 나는 부모님과 그리 많은 시간을 살지 않았다. 딱 열 살까지 살았을까. 이후 내멋대로의 삶이었다. 함께 살던 혈육도 동거 기간이 2, 3년이었다. 손주 손녀 밥 해 주시던 내 할머니도 내 중학 시절을 함께 하지 못하셨다.

 

요즈음 주변 지인들이 사춘기를 사는 자녀들과의 불화를 내게 한 풀이 삼듯 이야기해 오면 나는 부럽기조차 한다. 내가 그들에게 건네는 문장이다.

"복인 줄 알아. 나는 어릴 적부터 쭉 부모 곁에 살지 않아서 사춘기도 모르고 살았다네. 자식들, 곧 자기 길로 떠날 거야. 그때는 지금 이 시절이 참 부러울 거야. 재미다 생각하고 즐겁게들 살아."

 

우리 엄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이런저런 자식들 치다꺼리를 해야 미운 정 고운 정도 들었을 텐데. 어미 속내를 자식들에게 퍼내면서 자잘한 삶의 덩어리들을 가벼이 할 수 있었을 텐데. 어릴 적부터 아이들을 대도시로 유학 보내고 죽을 때까지 자식들과 동거하는 생을 살지 못했다. 나는 내 어머니의 행과 불행, 즉 일상 속 삶의 진행을 일체 알지 못했다. 안타깝다. 나는 내 아이와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나 가정을 꾸리고 사는 곳이 중소도시이고 보니 꼭 내 어머니와 같은 생을 나와 내 아이도 살고 있다. 가끔 어쩌다가 만나는 아이가 낯설다. 다시 태어난다면 절대로 유학(?) 같은 것은 보내지 않는다.

 

엄마와 어쩌다가 가끔 만나면 소통이 잘 될 리 없었다. 나는 부드러운 여자로 성장하지 못 했다. 부드러운 여자로 사는 경향을 좋아하지 않았다. 말투도 꼿꼿했다. 잔 정이라고는 단 한 번도 내보이지 않았다. 엄마와 대화 중 '욱'하는 짓을 많이 하곤 했다.

 

말 몇 던지면 화부터 내는 막내딸을 엄마는 지그시 바라보면서 말씀하셨다.

"아이, 썽부터 내지 말아라. 차분히 생각해 본 후 말을 해야지. 니 뜻하고 맞지 않다고 끝까지 듣지도 않고 썽부터 내면 될 일도 안 되아야."

"알았어."

"알았다고만 하지 말고 내 말 잘 들어라이~ 몇 마디 하지도 않았는디 듣도 않고 썽을 내면 어찌 일이 되겄냐. 글고 그렇게 살믄 니 속 내장이 가라 앉어야. 니 심장이 주눅 든단 말이여. 지발 좀 썽내지 말고 살어라."

 


표준국어대사전 속 '성-내다 [ 성ː내다 ]'를 찾아 몇 적어본다.

 

성내다.

동사

1. (…에/에게) 노여움을 나타내다. 예) 나는 보자마자 그에게 성부터 냈다.

2. 바람이 심하게 불어 파도나 불길 따위가 거칠게 일다. 예) 건조 기후로 인해 자연 발화한 산에 성낸 불길이 치받쳐 올라왔다.

 

관련 속담 ‘성내어 바위를 차니 발부리만 아프다.’ - 잔뜩 성이 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화풀이로 바위나 돌을 찬다는 뜻으로, 성이 난다고 앞뒤를 가리지 못하고 분별없이 화풀이하다가 자기에게 해가 될 부질없는 행동을 하는 경우를 비꼬는 말.

 

비슷한말 격하다.2 노하다.1 발끈하다. 분노하다. 불끈하다. 붉으락푸르락하다. 욱하다. 화내다.

 

말하자면 '썽내다'는 '성내다'의 남도 방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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