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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창작

늦어진 퇴근길에 쌓은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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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진 퇴근길에 쌓은 단상

 

오늘 나의 퇴근길 어둠의 정도이다.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아쉬운 대로 누구에겐가 전화 통화를 할 수 있다면

길을 덮어씌운 어둠살이 용서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해는 이미 몸을 숨겼고 가을 이파리들 아직

쓸쓸함도 챙기지 못한 재채기가 풀어놓을 

가을 야사도 들을 수 있을까.

종일 남으로 존재했던 핸드폰을 열면서

내려앉은 검은 길의 음산함을 견디기로 했다

북쪽 어느 하늘 아래 전설처럼 존재했다고 익혔던 운동이 떠오르는 밤이었다

하루에 일천 리를 달린다는 말처럼 우리도 살아야 한다고 세뇌되었던 유년 시절

생은 결국 그 자리를 맴맴 매미 소리로 채우다가

돌아앉는 것이라던

정의가 찌든 갈고리를 머리에 들쳐 맸다

최근 통화 목록에

두 개의 붉은색을 뒤집어쓴 기호

붉은 미니 전화기 위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기울였다가 고개를 쳐든 화살표가 읽혔고 녀석의 얼굴은

붉은 안료 얹혀 있었다

번호 하나는 우리 집의 전화번호였다

어제 노동 끝에 임시 거처로 앉혀둔 전화를 찾지 못해 일반 전화로 핸드폰의 위치를 확인했던 것

다른 하나는 한양 땅 손위 언니의 번호였다

어젯밤 한밤중으로 가는 길목 중간쯤의 시각에서 걸어온 것이었다

낱자 하나 똑같은 속도와 크기로 부딪히는 소리가

오늘 점심에 취한 말라빠진 돼지머리 수육을 생각나게 했다

마른 목소리를 담음 기계음이 이어졌다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당신이 상대의 목소리 듣기를 탐한 순간 당신의 상대는 진즉 열쇠꽂이에 핀을 꽂은 후였소

다음을 예약하시려거든 당신의 목소리를 남기시오

피곤하시다 고요

목소리를 풀 수 없다고요

물러나시오

이 세상은 당신이 한 만큼 받을 수 있는 범우주적인 규칙이 지배하오

분명 혼자여야 하는 여자가

틀림없이 독수공방이어야 할 여인이

아마 삐졌나 보다

자기가 지닌 외로움이 단단한 우주 질서의 힘에 밀렸다는 자존감의 상처로

잠시 외부로 내놓을 기꺼운 호흡을

다스리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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