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예술/창작

무심코 지나는 가을

반응형

 

 

무심코 지나는 가을

 

이런 가을이 예전과 달리 너무 낯설다

 

 

사람들이 그랬다

사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오후라고

해는 시들면서 금요일로 가는 길목이라고

덕분에 시를 당겼다

살 만한 날이라면

당연히 시 한 편쯤 읽고 외우는 것이어야 사는 것이라고

지극히 사람이 할 짓이라고 여겼던

시절이 떠올랐다

남을 위한 시를 우선 챙겼다

가을 관련한 시였다

시 속에 이미 낙엽이 빈사 상태였고

말라비틀어진 줄기는 그나마 가진 것을 모두

금전으로 환산하지 못한 채 흔들거리고 있는 자기 몸통에게 헌납한 후였다

바스락거리되 아우성 칠 수 없음을 하소연하지 못한

빈사 상태의 시월은

빌어온 가을을 펜 끝에 모아주었다

내가 읽을 거리라면 가을은 절대 아니다

계절은 더더욱 아니며

하루 일상을 바치는 것에 그칠 일이었다

붉은 기운과 노란 기운의 화음이 차마 불협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잘 참아냈다.

내가 읊으면 이미 날 선 칼로 재단한 염불이리니

그저 고요히

가는 세월을 붙잡을 명목이었기에 더욱 슬펐다

사람들에게 나누기 위한 시가 가을이었으므로

내가 나를 위해 누리고 거들어야 할 육신은 가물가물 빙초산을 들이마신 후

줄곧 써 내려가는 나의 시는 어느 날, 어느 계절을 위한 노래일까

서툰 가을이 내 정수리에 내려앉았다

반응형

'문화·예술 > 창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 안부 1  (40) 2023.11.10
퍼붓고 나니 비로소  (53) 2023.11.09
늦어진 퇴근길에 쌓은 단상  (52) 2023.10.30
미처 확인하지 못한 채 떠나왔다  (54) 2023.10.26
미약한 기도문  (48) 2023.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