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볼 수 있을까, 꽃! 행운목 1
나흘 전 일요일은 나와 동거하는 모든 화초에 물과 영양분을 공급하는 날이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하루가 되어야 한다는 긴장감은 전날 밤부터 내 생각을 온통 지배하고 있었다. 눈 뜨면서 핸드폰을 열어 읽고 보는 습관을 제발 이제는 버리자고 다짐한 것도 큰 이유일 수 있겠지만 모든 화초에 관심을 줘야 한다는 생각이 더 컸을 것이다. 핸드폰을 만지지 않고 이불속을 벗어났다.
일요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일어섰다. 언제부터인가 내 남은 생은 1분 1초를 허투루 써서는 안 되는 지점에 와 있다는 인식의 날카로움으로 예리하다. 하루하루 시간 운영을 긴박하게 진행하자고 했는데 일단 이번 일요일 아침의 시작은 괜찮은 셈.
'어서 물뿌리개를 들자.'
이번 물 주기는 조금 색다른 방식이었다. 유튜브 등에서 얻은 상식을 적용해서 화초들에게 매우 유용한 양분을 우려낸 물을 만들었다. 바나나 등 과일류의 껍질을 이용해서 만들어낸 물. 희석하려고 하니 널따란 양푼에 물 가득 들이부어 담아 자그마한 그릇으로 물을 퍼서 화초 각각 물을 주는 것.
베란다의 화초들에 물 주기를 끝낸 후 거실로 옮겨왔다. 거실 2라고 치자. 이곳은 본래 작은 방 1에 해당되는데 거실로 포함된 곳. 여러 관엽식물들이 널따랗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중 가장 키가 큰 화초, 행운목 1이다. 나와 함께 한 세월이 아마 20년을 넘어섰을 것이다. 키가 2m에 가까워지고 있다. 당근마켓에 내놓았으나 초대되는 행운을 얻지 못한 채 여전히 책장 앞에 기라죽하게 서 있다. 중간쯤에서 확 잘라 뿌리내리기를 할까 생각하던 중이었다. 가정에서 화초를 키울 때 사람의 키보다 큰 화초가 있으면 좋지 않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귀찮은 아이가 되어 주인의 관심사에서 멀어진 셈.
버림받았다고 느꼈을까. 나의 행운목 1. 녀석이 큰 일을 저질렀다. 아니 내 알량한 생각이 빚은 어리둥절이리라. 거실 2에 양푼을 들고 앉아 물 주기를 하려는데 바닥이 어지러웠다. 행운목 1의 화분 아래였다. 혼란스러웠다. 생명의 흔적을 빼앗긴 꽃송이들이 무덤을 만들어 화분 주위로 쌓여 있었다.
'이게 뭘까, 대체 이 상황이 뭐람?'
귀신이 곡할 노릇. 그곳에 있는 화초들 중 꽃무덤을 만들 정도의 꽃을 피우는 화초는 내 상식으로는 없었다. 아, 아니다. 언젠가 화초 화보에서 본 적이 있구나. 거대한 꽃줄기로 휘황하게 피워낸 행운목 꽃 잔치. 그때 그랬었지.
'아, 행운목도 꽃을 피우는구나. 내가 키우는 행운목과는 거리가 멀겠지.'
아파트에서 불충분한 조건 아래 사는 화초들은 꽃 피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이미 경험한 나다.
'아, 식물이 아니라 책들이 쏟아낸 구토물일 수도 있겠다.'
별별 생각을 다하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내 눈밖에 난 상태랄 수 있는 행운목 1의 정수리에 색다른 것이 있다. 꺾인 막대 같은~,흰색 피부의 제법 긴 길이를 지닌 것이 가지처럼 만들어진 모양새로 스러진 상태였다.
'앗, 꽃이 피었었구나. 아~'
녀석과 내가 함께 했던 세월 동안 꽃을 피워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 드디어 피워낸 꽃이었구나.'
'마침내 자기 혼을 불살라 만들어냈겠구나.'
'꽤 긴 시간을 꽃피워 제 몸을 뽐내었을 텐데 얼마나 서운했을까.'
꽃줄기는 거의 30 센 미터에 가까웠다. 마디 곳곳에 피워낸 꽃송이들이 자기 흔적을 내려놓은 양 질척한 액체감을 남겨둔 상태였다. 방울방울 물방울 같은 작은 투명한 구들이 알알이 맺혀 있었다. 녀석이 흘린 눈물이겠구나 생각하니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
2박 3일의 외유에서 돌아와 오늘 녀석의 꽃 무덤을 치웠다. 매일 적어도 최소 한 시간 이상씩 화초들과 눈을 맞추면서 살아내고 있는 요즈음 내가 행운목 1의 꽃잔치를 함께하지 못한 것은 그 이유가 무엇일지 곰곰 생각해 봤다. 고집 때문일 것이다. 내가 지니고 사는 헛된 욕심의 크기가 너무 컸기 때문일 것이다. 고개 한 번 좀 더 인자하게 쳐들어 화초에게 마음을 주는 여유가 모자란 내 좁은 심보가 그 이유일 것이다.
반성한다. 정말이지 이제 내 안에 검은 똬리 틀어 구질구질하게 돌아서 앉아 내 양에 차지 못하는 현실에 분노하는 헛짓거리는 이제 그만 두자. 멈추자. 더는 안 된다, 더는. 제발이지 나를 확 바꾸자. 쪼잔함을 좀 털어내자. 옹색스럽게 안고 사는 탐욕덩이들을 내던지자.
행운목 1의 중간을 잘라 새 뿌리를 내게 하는 것이 맞나? 나의 행운목 1은 다시 꽃을 피울 수 있을까. 어설픈 채 사는 주인에게 제 든든한 힘을 꽃으로 피워 다시 뽐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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