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삼월, 다시 삼월 첫 출근!
삼월이다. 출근. 사람 사는 것이 뭔지, 어제, 종일 집에 있는 날이면 일터가 생각나기도 하는데 출근을 앞둔 밤이면 못다 한 일들이 떠올라 다음 날의 출근이 또 못내 아쉽다. 헛 짓거리를 좀 덜 하지 그랬느냐고 스스로 질타를 퍼부은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가는 세월, 부여잡을 방법이 없는 것을 어찌할 것인가. 새날을 맞고 사람이 아직 덜 다닌 길을 걷겠다고, 가야 하는 곳, 일터에 기왕지사 어서 가서 하루를 시작하겠노라고, 하염없이 사는 길 위에 올라 또 하루를 다시 출근했다.
오늘 일터에는 책더미를 풀어헤칠 일이 예약되어 있었다. 연약한(?)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어렵다는 생각에, 몸에 힘을 가해지는 순수 노동은 이제 무서워져서, 천근만근 들어올릴 힘을 지닌 이들을 기다렸으니 오늘이다. 생각은, 힘센 사람들과 함께하려니 했는데 모집하다 보니 나보다 더 연약한 이들도 함께 뭉쳤다. 어떤 아씨는 너무 열심히 일해서 손톱 밑에 붉은색 핏물이 고이기까지 했다. 고마운 사람들. 일의 진척에는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이 온전히 적용되었고 얼마 되지 않은 시간에 모두 끝냈다.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날이기도 했다. 프로젝트라!
늘, 매번 하는 일이지만 늘 새로운 일이 내가 하는 일의 특성이다. 하기야 어느 일인들 그렇지 아니한 일이 있겠는가만. 내 할머니가 사시던 일을 내 어머니가 마냥 새로운 듯 해내었다. 내 어머니의 생을 사는 듯 내가 또 얼기설기 엮어내면서 살아내고 있다. 인간사 늘 그렇게 새로운 일인 듯싶지만, 하던 일을 또 하고 다시 또 한다. 방법만 조금 다를 뿐 결국엔 일의 결에 흐르는 운율이 똑같다. 정해진 곳을 향해 가는 인간사이고 보니 내가 하는 일이며 네가 하는 일은 결국 한 곳으로 가는 과정일 뿐이다. 죽음은 정해져 있는데 삶의 방법은 괜스레 무궁무진이라는 문장을 접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아서일까. 시작도 하기 전 맞이하는 공허를 물리치느라 잊었던 시럽 커피를 아침나절에 마셨다.
다행히 시작한 오늘 하루의 끝이 참 좋았다. 뜻하지 않은 기쁨을 맛보았다. 프로젝트에 동참한 이들과 하루 일을 끝내면서 나눈 대화에서 나는 뜻밖의 말을 들었다. 깜짝 놀라고 말았다. 오늘 하루를 보낸 소감을 이야기해 보자고 내가 말을 꺼냈다. 아무나, 오늘 함께 한 이는 누구나, 괜찮으니, 흔히 어떤 일을 경험하고 나면 말하고는 하는 하루 정리 의견이라 생각하고 말해보자고 했더니 참가한 이들 중의 상당수가 발언하겠단다.
"너무 기뻐요. 사실 출발할 때는 과연 괜찮을까 싶었는데 오늘 하루 진행하는 동안 마냥 즐거웠어요."
"함께 하는 이들이 어떤 사람들일까 걱정이었는데 오늘 지내고 보니 모두 다 참 좋은 사람들이어서 기분이 좋습니다."
"오늘 프로젝트를 앞장서서 이끌어가시는 선생님의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과연 어떤 성격의 사람일까 마음이 조마조마했는데요. 함께 해보니 참 괜찮았습니다."
뜻밖이었다. 아니,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소감들이었다. 나는 차마 마음 떨려서, 부끄러워서, 그만 홍당무가 되고 만 나의 낯빛이 어색해서 얼른 끝내고 말았다. 더없이 기쁜 날이었다. 프로젝트가 끝나는 날까지 모두 다 오늘만 같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회식을 했다.
오늘은 일터 및 내 주거지와는 꽤 거리가 되는 곳에서 회식했다. 오후에 맛본 기쁨이 내 동력에 설레발을 쳐서 저녁을 먹는 데에도 열심히 움직였다. 입에 딱 맞는 샐러드와 바로 옆에 와서 구워낸 후 식탁 위에 올려주는 고기까지 엄청난 양을 먹었다. 주섬주섬, 이곳저곳에 걸려있는 기쁨의 맛을, 골고루 주워 먹었다. 정신없이, 마구마구 먹었다.
저녁을 걸었다. 오늘 일의 마감 시간에 얻은 행복에 지나치게 취한 것이 혹시 병이 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웠다. 어서 마음 가라앉혀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교만으로 미리 승천하면 어쩌나 싶어 걱정되었다. 긴 시간을 요구하는 일에 오늘 하루의 기쁨으로 모든 일이 성사된 듯 흥하여 나자빠지지 않을까 무서웠다. 가는 겨울의 밤을 걸었다.
어스름 속 수많은 인공 불빛의 세례를 받으면서 열심히 걸었다. 나의 물음이 엎드려 절 받기를 하려던 것이 전혀 아니었기에 더더욱 깜짝 놀랐다. 오늘 하루 있었던 행사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고마운지. 오늘 사람들로부터 받은 찬사와 칭찬의 프로젝트가 알뜰하게 지속되는 것이 가능기를, 겸손을 바탕으로 열심히 해나갈 것을 다짐하면서 길을 걸었다.
인터넷 플랫폼에서 1시간 30분으로 예측하는 거리의 길이었다. 1시간 만에 걸어 집에 돌아왔다. 사람들이 거의 오가지 않은 길을 두려움을 뭉개면서 걷는 걸음이 뿌듯했다. 멋진 하루였다. 힘이 솟는다. 어서 지친 영혼까지 세수하는 반신욕을 하고 잠도 푹 잘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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