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정원을 미니멀리즘으로!
5년 아니 십여 년이 된 듯싶다. 미니멀리즘을 운운하면서 살고 있다. 한데 나의 거주 공간에는 여전히, 미니멀리즘과는 너무나도 먼 거리의 일이 진행되고 있다. 그중 하나가 화분이다. 일반 가정에서는 식겁할 정도. 화분의 수를 세는 데에 한참 걸릴 정도로 화초를 화분에 키우고 있다.
우리 집 베란다 정원은 한 마디로 혼란이다. 복잡하다. 뭐, 베란다 정원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요란한 채 유지되고 있다. 한여름 장마철이 아니면 화초가 사그라지는 일이 거의 없고 삽목 후 늘 서너 개씩은 수경이나 화분에 마구 심어서 새 생명체를 키워내는 것을 즐기는 주인 덕분에 화분의 수가 크게 늘어왔다.
부스스한 눈으로 주말이 되어서야 내다보게 되는 베란다 정원이 위험지수에 처해 있음을 느낀 것은 이 공간에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서너 해를 지나고 보니 늘어나는 화초만큼 분갈이 등 추후 보살핌에 필요한 내용이 엄청났다. 꽤 넓은 베란다 공간에서 사람이 걸을 수 있는 곳이 극단적으로 좁아져 가는 상황에 놀란 나는 최근 3년 여째 화초를 구매하지 않고 있다. 아, 딱 한 번 있었다. 느닷없이 아프리카 화초에 마음이 뿅 갔구나. '단애의 여왕' 등 5종의 괴근식물을 구매해서 키우고 있다. 어지간하면 삽목도 거의 하지 않는다.
지난해, 아니 지지난해였던가. 여름을 질기게 살게 했더니 순간 가버린, 내 사랑하는 율마 셋은 내 시각에 커다란 공허함을 콱콱 박아놓고 떠났다.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자존심의 표시를 그들은 자기 목숨을 끊는 일로 하고 말았다. 아마 숨이 막혔을 것이다. 게으름뱅이 주인은 분갈이해야 할 시기를 넘기고, 넘기고 또 넘긴 채 그들의 성장만을 즐기고 있었다. 풍성하게 자랐던 율마.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모른다. 녀석들이 어느 날 갑자기 갈변하더니 영영 검은 세계로 빠져버리자 나는 난감함에 한 달 가깝게 어리벙벙한 채 베란다를 바라보곤 했다. 그리하여 결론이 그랬다.
"베란다 정원을 없애자. 나는 자격이 없다."
3월 초였을까.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 달쯤 뒤에 친구와 함께 집에 갈게요."
아, 청소! 청소해야 했다. 다 자란 자식도 어려운 손님이더라. 열심히 청소했다. 아, 집안 살림이라는 것이 얼마나 힘든 막노동인지를 새삼 깨달았다. 나는 화분 보살피기가 문제가 아니라 집안 곳곳 겹겹이 쌓인 먼지를 외면한 채 살고 있었던 것이다. 닦고 또 닦아도 말끔해지지 않았다. 청소할 곳이 끝이 없이 이어졌다. 거기에다가 화분 정리라니.
베란다, 즉 베란다 정원이라는 곳의 청소는 진짜로 큰 문제였다.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지런히 움직였다. 하자. 이번 기회를 시작으로 말끔한 베란다를 유지할 기회를 만들자. 버리고 또 버리고 또 버려도 버려야 할 화분이 끝없이 나왔다. 다행인 것은 보조 역할을 아무 말 없이 해 준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한 달 가까이 움직인 덕분에 제법 정돈된 집이 되었다. 그리고 반년 정도 지났다. 다시 아수라장이다. 베란다 정원은 여전히 시골 장터에 아무렇게나 들어선 물건들이 길가 아무 곳에나 들어서 있는 느낌이다. 말 말아라. 선진 대한민국이다, 시골장도 이렇게 너저분하고 오만 잡스러운 물건들이 아무렇게나 서 있지는 않을 것이다.
정리하자. 버리자. 누구에게 이 화분들 준다고 한들 고맙다고 받아들일 사람도 없다. 미니멀리즘 시대이지 않은가. 목표는 화분을 일백 개 이상 없애기. 올 12월 31일 이전에. 지난 3월쯤 한번 줄인 다음에 센 화분의 수가 아마 3백 개를 조금 넘었던 기억. 없애자, 제발 좀 없애자. 열대성 바람이 좀 자고 베란다에도 선뜻 나설 수 있게 된 오늘, 자울자울 조는 듯 자리한 화분들을 보고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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