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 이스 어프레이드
- 감히, 올해 내가 본 영화 중 최고의 영화라고 생각된다. 단순히 모험영화이니 공포영화라고 단정하고 싶지 않다. 인간 심리를 까탈스럽게 파헤친 종합 격투기적인 영화이다.
아리 에스터 감독
호아킨 피닉스, 네이선 레인, 패티 루폰, 에이미 라이언, 카일리 로저스, 파커 포지, 스티븐 매킨리 헨더슨, 헤일리 스콰이어스, 마이클 간돌피니, 조이 리스터존스 등 출연
모험·공포
미국
179분
개봉 2023.07.05.
7점 중반대였다. 평론가의 평점도 관객의 평점과 비슷했다. 처음 읽은 영화 제목. 호아킨 피닉스가 주연인 영화라니. 여태 내가 모르고 있었을까. 평점을 보고 시청 여부를 가리곤 하는 내게 위 점수는 ‘글쎄, 봐, 말아?’라고 머뭇거려야 정상이다. 이 영화는 갈팡질팡하지 않았다. 바로 열었다.
출산 현장을 음산한 색채와 신경질적인 산모의 거친 언어로 내놓은 가운데 영화가 시작된다. 몇 줄 영화 줄거리를 읽은 것이 화근이었다. 시청자의 뇌에 시청에 앞서 각인된 내용이 있으면 그 영화는 보는 재미를 온전히 제공할 수 없다. 모자지간의 갈등이 주 테마일까, 그렇고 그런~, 공포를 입힌 듯싶으니 극한 상황까지 제공되는 스토리가 전개되겠지. 아, 단순하지는 않으리라. 호아킨 피닉스인데, 그가 주연으로 출연하는데 대충 찍는 영화는 아니리라.
호아킨 피닉스가 분한 주인공, ‘BEAU’는 편집증을 앓고 있다. 정신병원을 드나들고 있다. 그는 제대로 된 살림살이도 갖추지 못한 상태로 남의집살이를 하고 있다. 병원에 들른 그에게 의사가 말한다.
“어머니를 보러 가야 하느냐. 괜찮겠느냐?”
보는 어머니를 만나러 가야 하는 날이면 틀림없이 가야 한다.
‘보’와 그를 집착적으로 사랑하는 엄마 ‘모나’. 엄마를 무조건 만나러 가야 하는 보는 귀향을 앞두고 기억과 환상, 망상과 현실이 뒤섞인 공포를 경험하면서 결국 타야 할 비행기를 타지 못한다. 강박관념에 허우적거리게 되면서 그의 어머니 앞에 서게 되기까지 기이한 여정이 진행된다. 현실인 듯, 우연인 듯. 세대를 넘나들면서 떠오르는 기억을 징검다리 삼다 그가 가는 길에 드리운 공포는 단순하지 않다.
감독은 상당히 인상 깊게 본 “미드소마‘를 작품으로 내놓은 사람이다. 신예 감독에 속하겠다. 미드소마를 보면서도 그랬다. 다양한 상황이 중첩되면서 진행되는 사건과 사건의 곳곳에서 활약하는 인간들의 심리가 사람을 묘하게 집적되던 기억. 이 영화는 미드소마에 비길 바가 아니었다. 단순한 공포 주무르기가 아니었다. 인간사, 현실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영화였다. 미드소마라가 그렇다고 가상의 드라마였다는 것은 아니다.
미드소마는 남의 이야기였다. 시청자 입장에 서서 타인이 접하는 상황을 엿보는 식이었는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았다. 내가 영화의 사건 속에서 주인공 보와 보의 어머니 모나와 함께 걸음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현재 ’엄마‘의 입장으로 사는 나를 한사코 건들었다.
“너 또한 ‘모나’이지 않았어?”
나는 순간 당황하면서 마음속으로 말했다.
“그래, 맞아. 지나친 적이 많지. 아이의 삶을 내 기준 위에서 진행되도록 조정하려 든 적이 많아. 다만 나는 진즉 이를 깨달았어. 이젠 멈췄어.”
영화는 모자지간의 관계를 넘어서서 남성과 여성의 문제를 다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를 온전한 삶으로 못 살게 한 것은 아버지의 부재였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부재. 어머니에 의해 내팽개쳐진 존재로서의 아버지. 어머니 모나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을 보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보를 좌지우지하는 것이었다.
그녀 모나는 아들 보가 자기만의 생을 꾸리러 나서는 것은 ‘배신’으로 못 박았다. 끊임없이 자기희생을 아들 보가 알아주고 그에 따라 어머니에게 보상할 것을 요구했다. 보는 자기의 생을 진행할 수 없었다. 남자로 살 수도 없었고 자기 판단으로 생활을 이끌어가지도 못했다.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점차 부풀어가는 뇌는 판단력을 잃게 되고 정신병적인 삶을 살게 된다. 어머니는 아들의 질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고집을 고수한다. 아들이 했던 행동을 낱낱이 세상에 까발리면서 자식의 앞날을 짓이긴다.
자식은 젖 떼면 남이다. 제 생을 살게 해야 한다. 보와 모나의 갈등이 진행되는 가운데 짬짬이 소스가 되어 사건을 버무려주는 주변 인물이며 상황들은 두 사람 사이에 놓인 벽을 더욱 튼튼하게 혹은 한 담 한 담 꺼지게 하는 등의 다양한 변주로 작용한다. 풍성한 영화가 되게 한다.
단순한 모험 영화이니 공포 영화에서 머무르게 할 영화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다. 23년에 개봉한 세 시간이 넘는 대작인데 왜, 영화를 매일 거의 한 편 이상씩 보면서 사는 내게 제목도 들려지지 않았을까 의아하다. 몇 영화제에서 들먹여지지 않았다는 것도 이상하고. 평점이 7점 중반대에 머물러 있는 것도 짜증이다. 올해 들어, 1월 1일 이후 150여 편이 넘는 영화를 봐 왔는데 옛 유명 영화를 다시 봤던 것을 제외하면 오늘까지 단연코 1위의 영화에 이 영화를 꼽고 싶다.
호아킨 피닉스였다. 이 영화에서 그가 보여주는 모습은 세대를 뛰어넘는 인간 심리를 연기한다. 역시 대배우다. 다시 보면서 감독의 제작 의도를 더 상세하게 파헤쳐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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