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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어쨌든 공부

소금

ebs 라디오

* 이 블로그에 소개하는 유튜브 강의는 꼭 들어야 한다. 요약은 요약일 뿐이다.       여기 소개하는 내용들은 진짜로 내게 유익했다.

 

[오천만의 생활경제] 김장철 필수인 소금의 영향력이 이 정도? 천일염의 탄생과 소금 생산의 역사ㅣ최준영 박사의 세계 경제 기행

https://www.youtube.com/watch?v=i4hhsGrDIag 

우리집 소금 - 내가 찍은 사진

배추 : 20세기 중반 우장춘박사 속이 꽉 찬 배추 생산 시작. 포기김치는 60년 역사

 


소금 이야기

- 만드는 방법에 따른 구분 : 천일염, 암염, 자염

^ 천일염 염전에서 바닷물 증발 건조

^ 암염 - 광산

^ 자염 - 바닷물 정제 이온 정제 불순물 제거 바닷물을 끓여서

 

- 천일염 역사

^ 대만에서 일제가 도입.

^ 20세기 초 한국전쟁 이전 평안도 북서쪽에서 천일염 만듦기 시작.

- 자염(끓이고 삶은) - 맛이 여러 맛. 다양한 미네랄 

^ 연료비가 문제. 산림 황폐문제. 더 먼 곳에서 장작 조달. 소금값 올라감. 연료비 75퍼 정도. 조선 후기 소금이 없어 문제

- 연료비 문제없는 천일염의 시작

^ 대만에서 시작

^ 1891년 대만 점령한 일본이 1895부터 조선에도 천일염전 마련 국가 전매.

^ 우리 천일염 시작은 대한매일신보 1907년 이완용 등 주암리에 가서 천일염전 시찰로 확인 가능.

^ 서울로 철도 연결 있어 운반 편한 인천 주안에서 시작. ‘인천 짠물시작

^ 북쪽 황해 서안 등에서도 천일염 시작. 북쪽 짧은 해 낮은 기온이 문제? 아니다. 실제로는 바람이 건조 적당한 미풍이 더 좋다. 서해안 북쪽이 좋음. 양질의 소금.

^ 분단 직후 소금 품귀. 간장도 품귀. 중국 국공 내전으로 수입도 불가. 수산업이 큰 문제. 어류 절여야 했는데 힘듦. 1947 조기 생산 대풍에도 서해안 소금 없어 미군정이 해외 소금 수입.

^ 민간이 소금 염전 운영하도록 권고 - 월남인들이 서해안에 염전 운영

^ 당시 쌀 한 말과 소금 한 말이 전쟁 직후 같은 가격으로 교환.

^ 전라도 신안 무안에 염전 시작. 다른 목적으로도 소금 생산 독려한 국가. 일자리 제공 차원에서도 삽 한 자루로 일자리 제공 월남인들이 많이 참여하게도 유도. 안산 시화에도 폐염전이 많았는데 아파트 단지로 바뀜.

^ 전쟁 직후 소금 증산 5개년 계획. 65년 완성 목표, 5530만 톤 생산. 소금 증산 계획 성공 자급자족 가능. 10만 톤 과잉생산. 우리 소금은 비싸서 수출이 안 됨. 65년 이후 민간염전 폐전 고민.

소금에도 흥망성쇠가 있다는 ~

진짜 재미있고 자세한 이야기는 최준영 쌤이 저 위 사이트에서 들려주심.

공부하기요.

공부는 즐거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