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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영화

올리버 색스 : 그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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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2021.08.26.
등급12세 관람가
장르다큐멘터리
국가미국
러닝타임114분
 
 
일단 그의 생이 참 부럽다. '작가이고 싶은가 의사이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받아야 하는 삶을 살아낸 그가 존경스럽다.
꽤 시간이 흘렀다. 그의 책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얼마나 열심히 읽었던가. 나는 그의 생을 집중하여 조사하였고 몇 권의 책을 열심히 읽어냈던 기억. 이후 내리막길을 걷게 된 나의 생은 사람을 잊으려 했고 풍경도 잊어버렸고 생과 사를 무대뽀로 응글응글 짖이겨내며 생활해 온 결과 당연히 그도, 그의 생도, 그의 책도 모두 잊고 살았다. 오늘 우연히 영화를 검색하다가 그의 생과 부딪혔다. 스멀스멀 그의 글을 읽으면서 한없이 부러워했던 나의 시기가 떠오른다. 

영화 끝에 2015년 1월, 시한부 판정을 받고 그가 뉴욕 타임즈에 기고하였다는 “나의 생애”란 에세이를 우선 읽고 싶다.

의학계의 작가, 시인, 인간의 뇌와 '의식'이라는 이라는 경이로운 뇌우주의 탐험가 등 수많은 수식어들로 살아낸 그의 삶은 분명 행복이리라. 삶 곳곳에 그를 향한 의학계의 비판이 있었고 아득히 먼 시점 가장 가깝게 느꼈던 어머니로부터 '차라리 태어나지 말지 그랬냐'는 혐오 담긴 핀잔을 들었던 비참함의 순간들이 있어 마약과 속력으로 생을 견뎌내기도 했지만 그는 ‘이 아름다운 행성에 태어나 지각 있는 존재로 살아간 것에 대한 기쁨과 감사함’을 기고와 다큐로 남겼다. 과연 이 거대한 삶을 가능하게 한 힘은 진정 무엇일까. 천운일까, 유전자일까, 그 스스로 개척한 여정일까. 그의 생을 되집을 때마다 어떻게 이런 삶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인지 나는 늘 부러웠으나 나의 생과는 너무 멀어 한편 슬프기도 했다. 

 

그를 다시 만난 기쁨에 달뜬 내 가슴을 다독이며 다큐의 내용을 쭈욱 써 본다. 그를 다시 만난 오늘은 참 행복하다. 

 

영화 속 한 장면을 스크린 샷으로 가져옴

 

올리버 색스는 보건의셨던 아버지와 산부인과와 런던 최초 여성 외과의이기도 했던 어머니에게서 셋째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 사람들은 모두 재능 넘치는 천재들이었다. 열광과 정열을 어릴 적부터 드러냈다. 한편 소심하였으며 안면인식장애를 갖고 있기도 했다. 심각한 편두통을 어머니로부터 건네받기도 했다. 

 

아버지는 그냥 아버지였던 듯. 어머니는 불편할 정도의 친절함을 지나치게 보이신다 느낄 만큼 가까웠다. 어머니는 무뇌아의 사체 등을 가져와 10세, 11세의 아이들에게 해부를 하게 하기도 했다. 전쟁 중 가족들은 시골로 피해갔는데 올리버는 큰 형과 폭력 등으로 끔찍했던 기숙하교로  피신한다. 형은 그곳에서 정신병과 조현병을 얻었다. 그런 형이 올리버는 공포스러웠다. 부모에게는 처참함이었겠지. 온 가족이 형의 정신병을 처참해 하며 그 광기에 압박을 받으며 한편 동정을 베풀면서 집안의 비밀로 한 켠에 얹어두었다. 

 

올리버는 형의 혼돈과 광기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한편 매우 가깝기도 했던 형과 감정 이입을 시도하고 마침내 우을증을 앓기도 한다. 그는 '나만의 과학'을 공부하기로 한다. 자신과 형과 가족이 가진 실마리 풀기, 세상을 반대로 돌려놓기, 내면 보기를 시도한다. 그는 성공한다. 제 스스로 환자의 길을 가면서 깊은 경험을 하기도 하고 실패를 극복한 작가이자 신경과 전문의, 뇌와 신경계의 정보 순환을 연구한 과학자의 성공가도를 이뤄낸다. 그 바탕에는 '당신은 누구인가'를 늘 물으면서 환자의 생에 자신의 생을 접목시켜 보는 남다른 성향성 안부 묻기 및 환자에게 몰입하기를 평생 실천한 성실의 표본을 산 흔적이 두껍다. 

 

그는 런던 태생이며 두 차로가 만나는 교차로의 그의 생가가 위치하고 있었다. 정통파 유대교 집안이었으며 중상층이었다. 그의 형제들을 모두 어릴 적부터 의사였다. 정신병을 앓은 큰 형의 환자로 생을 일관하였으나 둘째 형은 그와 함께 의사였다. 

그의 어릴 적 친구는 숫자였다. 10살 때부터 이미 광물과 원소 식물들에 대한 관찰과 실험 등이 그의 놀이였다. 화학과 주기율표에 대한, 원소에 대한 사랑에 몰입했다. 주기율표 침대, 주기율표 쇼핑백, 주기율표 양말, 주기율표 지갑. 주기율표 순서에서 안정감을 찾았고 주기율표로 상상을 했고 주기율표에서 신비감을 얻었다. 원소를 선물로 받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70대에 그는 모든 원소를 경험했다고 했다. 현실에 의심이 생기면 발에 텅스텐을 떨어뜨려 보기 등이 그의 생활이었다. 멸란 생물학 분류, 동물과 광물 수집, 유별난 광물 폭발 실험이 그의 대학생활이었다. 

 

18세의 어느날,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은 그닥 드러내지 않았던 그와 아버지와의 대화가 있었다. 제법 진지했는데 용돈 등의 것이 아니라 '여자 친구가 없다'라는 내용이 진행되었고 아버지의 '남성이 좋으냐'에 올리버는 '예, 그렇다. 그냥 그렇게 느껴진다. 다만 어머니에게는 말하지 말아달라.'였다. 이는 어머니에게 전달되었고 어머니는 그에게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구나'로 비난을 퍼부었다. 그는 비통했다. 일생 동안 어머니의 말을 그를 떠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머니에게 벽을 쌓지는 않았다. 

 

그는 죄책감을 안고 옥스퍼드에 진학했고 과학과 문학 사이에서 고민하던 차 인간 뇌에 대한 연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임상신경학을 공부하게 된다. 이어 런던을 떠나 로스엔젤레스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멜을 만난다. 캘리포니아 아파트에서 동거를 시작한 둘은 함께 운동하고 함께 서로의 몸을 마사지해주기도 하는데 어느 날 반나 상태의 멜을 마사지하다가 그만 올리버가 멜의 등에 사정을 하고 만다. 멜은 그대로 들어가 샤워를 하더니 다음 날 집을 떠난다. 외롭고 버림 받은 느낌의 올리버는 이성애자 남자를 만나야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다시는 사람과 살지 않기로 결심한다. 올리버는 레지던트 생활을 하지만 늘 거슬리는 존재였고 사람과 어울리질 못한다. 그는 환자 식판에 남은 음식물을 먹는 등 똑똑하고 관대하나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하였다. 그는 차츰 혼란과 방황의 나날을 마약과 암페타민에 의존하는 자기 파괴의 삶을 살아가면서 삶과 죽음 사이를 왕래한다. 황소같은 몸을 길러 36시간 바이크 타기를 하는가 하면 밤새 연료 탱크를 채워 달리곤 한다. 지구 표면에 선을 새기는 행성 전체가 자신의 밑에 회전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을 정도이다. 흔치 않은 유형의 인간, 올리버. 그는 기억에 남는, 병세가 악화된 여성을 돌보기도 하는데 어느 날에 그 환자를 바이크에 태워 밖으로 나가기도 한다. 신선한 의술이면서 그 다운 행동이었으나 자기 파괴적이면서 조심스럽고 한편 신사다운가 하면 섬세하고 열정적이기도 하고 호기심을 앞세운 관찰의 생활이 보였다. 말하자면 사실 아웃사이더였다. 당시 사회에서는. 

 

그는 결국 뉴욕으로 옮긴다. 아인슈타인 의과대학의 과학 연구원 자리. 신경화학 분야의 연구를 맡아 열심히 지렁이를 연구했으나 바이크 달리기 도중 복사본을 만들어두지 않았던 연구 보고서 원문을 모두 날린다. 해고되었으며 지렁이는 재앙이었다. 그는 환자나 돌보자고 한다. 마약과 암페타인의 의존하면서. 

 

1965년 새해 전야 거울을 통해 본 자신의 얼굴에 경악한다. 도움이 필요함을 느끼고 누군가의 개입이 자신의 생에 있어야 함을 깨닫는다. 정신분석학 전문의의 도움으로 그는 마약을 끊기로 다짐한다. 영원히 끊어보기로. 

 

베스 에이브러험 병원에 근무를 하면서 그는 만성환자 돌보기를 시작하고 두통 클리닉을 운영한다. 그는 만성환자들의 깊이와 그 각각의 이상함을 관찰하고 치료한다. 그는 환자들에게 감동을 줄 정도로 열심히 진료하고 치료한다. 에드워드 라이빙 박사의 책 '편두통'을 읽으면서. 그는 마치 라이빙인 것처럼 마약의 상태로 집중 독서를 한다. 그리고 암페타민으로 천국이 열린 듯 자신의 진료 사례인 올리버 색스 작 '편두통'을 발간한다. 그의 인생 전환점을 마련한 책이었다. 

 

베스 에이브러험 병원에서의 만성 환자 돌보기는 80여 명의 특별환자들이었다. 기면성 뇌염 등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었다. 파킨슨 병 등을 앓고 있었으며 3,40년을 온전한 마음과 성격인 채 질병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증상등이 제각각이었다. 신경계의 복잡함과 위대함을 그는 발견했다. 도파민 부족을 확인했으며 '엘 - 도파민'을 만들어 환자들에게 사용한다. 엄청남 성공이었다. 경이로운 시작이었다. 미칠 듯한 기쁨이었다. 환자들은 걸었으며 춤을 치는 등 극적 효과를 보여줬다. 모든 환자에게 '엘 - 도파'를 투여했다. 말을 시작한 어느 환자는 '내가 말을 하고 있네.'로 처음 말을 하였으며 그들은 폭발적인 삶을 고백했다. 

 

그러나 약이었다. 부작용이 발현되었다. 예민도가 높아졌다. 투약 때마다 다른 방향이 나타났다. 양을 조절했으나 효과가 없었다. 적정량이라는 것이 불가능했다. 역시 우리 몸의 신경계가 지닌 복잡함을 확인하였을 뿐 올리버는 달리 할 방법이 없었다. 다만 천부적으로 글쓰기 재능을 타고난 올리버는 녹음기와 카메라를 준비하고 기록하기 시작했다. 지금 보는 것을 나중에 보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는 각 환자들을 관찰하고 찍어서 생물학적 통찰력이 필요한 개인 일대기를 쓰게 되었다. 각 개인의 교차점이자 올리버의 교차점이 되는 순간들이기도 했다. 로즈를 비롯한 대부분은 10일 정도에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끝나지 않은 신경계의 복잡함이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올리버는 기록을 하면서 환자가 자신의 삶의 주체가 되게끔 함께 시간 보내기를 시도하고 이야기 만들어 내기를 하기로 했다. 환자 자신의 일대기를 기록한 것이다. 올리버는 사람들에게 이야기 감각을 전하였다. 1972년 그는 환자의 깨어남과 고통, 경험의 소중함과 깊이를 글로 쓰기로 하고 런던으로 돌아온다. 어머니는 자신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아들 올리버의 글을 비판하였다. 그것은 책 '깨어남'의 소중한 도움이었다. 창작의 길에 본격적으로 입성하는 소중하고 특별한 시도였다. 그는 다시 9월 뉴욕의 병원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곧 이스라엘을 방문했던 길에 심장마비로 죽은 어머니의 소직을 접하고 상실의 아픔을 책 '깨어남'에서 '어머니께 헌사함'을 표하여 달랠 수 있었다. 책은 당시 의료계에서는 돌팔매질을 당하였다. 의심과 과장, 억지 꾸밈이라며 의료계는 그의 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무시당한 셈이다. 

 

40회의 생일. 그는 연못을 수영하다가 뜻밖에 어린 미소의 젊은 청년을 만나고 달콤한 정사를 나눈다. 그 이후 그는 일체 정사하지 않는다. 이후 35년 간을 독신으로 산다. 당시 사회에서 게이의사는 의사 자격을 박탈당할 때이다. 

 

새로운 병원에 근무하게 된 올리버는 그곳에서 자폐아와 조현병을 지닌 환자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곳에서는 체벌과 상벌로 교정을 시도하고 있었다. '강 행동 교정 철학'이라는 전제 하에 환자 격리, 배식 중단 등의 방법이었다. 죽음 같은 적막이 흐르는 병원에서 그는 병원장에게 저항을 하고 '다시는 이 병원에 오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비판의 책을 쓰기로 한다. 

 

노르웨이, 1974년. 올리버는 자폭 수준의 사고를 당한다. 혼자의 길에서 황소와 마주치고 달리다가 벼랑으로 떨어진다. 괴기하게 꺽인 다리를 한 참 후에야 벼랑 위쪽 끝에 매달린 두 사람의 청년에 의해 구조된다. 기온은 계속 하강 중이었고 8시간이 지난 다음이었다. 찢어진 사두근 치료를 위해 영국으로 들어오고 수술 수 2주간 그는 아픈 다리에서 감각을 느낄 수 없었다. 낯선 다리 감각으로 당황하고 혼란에 빠져있던 중 그는 이 사고의 경험을 글로 쓰기로 한다. 그는 평소 수없이 많은 단어들을 써 왔으며 글이 막히는 것은 '믿음'의 문제라는 필기관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이 책을 다시 또 의료계에서 팽 당한다. 학술지 모든 곳에서 거부 당한다. 스는 수영을 하면서도 생각나면 초고를 고쳐썼다. 어느 날 우연히 이 글을 보겐 된 한 사람이 '욕조에 떨어뜨린 것 같은 , 30년 들어 처음으로 손글씨로 글을 써 보낸 원고'라며 한 여류 편집인을 소개해 준다. 그녀는 그가 삶을 마칠 때까지 함께 했으리라. 

 

"비판적이지만 비난하지 말 것."

"개방적일 것."

"그리고 계속할 것.'

을 내세워 그녀, 글쓰기 치료사는 올리버 곁에서 올리버의 남은 평생을 함께 한다. 케이트. 그녀는 이후 올리버의 살아 생전 올리버의 모든 일을 맡아 조력한다. 올리버의 글쓰기는 케이트 덕분에 가능했다. 욜란다라는 조력자와 함께 올리버를 표한 말은 그는 순진무구하며 외모를 전혀 신경쓰지 않으며 한편 다루기 힘든 사람이기도 하다 했다.

 

올리버는 다큐를 찍던 어느 날 젤리를 먹으면서 고백한다. 제 생각을 말할 용기가 아직 나지 않지만, 방광을 비워야 할 때 수반되는 현상으로, 성기를 진정시키려 할 때 나는 오렌지 젤리에 내 성기를 넣는다. 그렇게 올리버는 극단적이기도 했다. 뭇 어른들 중 가장 아이 같은 올리버인가 하면 죽을 때까지 그럴 올리버이기도 했다. 

 

뚜렛증후군을 갖고 있기도 한 것 같은 올리버. 자신을 다양한 사람들(환자들)과 동일시하면서, 자신을 환자로 상상하면서 병력을 중시하고 환자의 병력이 냉대받지 않게 하고 질적으로 훌륭한 사례가 되도록 자기 치료 사례를 글쓰기로 묘사했다. 관찰하고 동정하면서 환자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환자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 세부사항을 관찰하여 적고. 그는 연대 순으로 환자들을 꾸준히 기록하였다. 인지 불능 장애인, 자신의 학생을 시각적으로 구분하지 못하는 교사 등. 

 

의사 올리버의 삶을 돌아보면 그는 의료의 핵심 가치를 높였다. 의사를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치료하는 사람이게 했다.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엿으며 환자인 '나'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각 자아 경험을 연구하엿다. 특정한, 두통, 편두통, 기억 없는 삶의 그들이 그 안에서 실제 경험하는 것을 무엇일지 연구하였다. 다른 사람들보다 세상을 더 세심하게 보려 하였다. 그는 수화에도 관심이 많았다. 사람들이 있는 세계로 가고자 하였으며 환자의 경험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다양한 신경학적 차이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야스퍼스 증후군에도 많은 노력을 투자하였다. 

 

그의 생각에는 '지적 스펙트럼이 없는 사람은 없다.'였다. 자폐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게 하였으며 의사와 직접 교감을 통해 파킨슨 병에 걸린 환자의 내면 풍경을 그림으로 그리도록 유도하였다. 투렛증후군은 '과잉'에 기인한 것이며 장애가 있는 사람은 거울보기를 두려워한다는 것을 밝혀내기도 했다. 그는 본인의 환자를 인간답게 하는 능력을 키우고자 노력하였으며 세상을 다르게 보는 능력을 보고자 하였다. 이야기하는 능력을 환자들이 키우도록 하여 상실감보다 경험과 충만함을 갖게 하였으며 특성있는 환자를 기민하고 날카롭게 관찰하면서 그의 경험을 보고자 하였다. 

 

그는 한때 '작가냐, 과학자냐, 의사이냐'의 물음 앞에 놓였다. 환자를 자신의 글쓰기 재료로 이용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과연 당신의 이론은 무엇이냐?'는 부정적인 질문에 '나는 관찰자일 뿐 이론은 없다.'로 일관하면서 영화 '깨어남'으로 자신의 생각을 보여줬다. '관찰'만으로도 충분히 과학임을 주장하고 증명하였다. 정신의 천문학, 신경학의 허블우주망원경임을 보여주었다. 

 

그는 의식의 문제, 즉 뇌와 정신의 관계를 연구한 사람이다. 의식=경험, 몸 안의 무언가가 그것을 느껴야 '나'가 된다. 뇌와 경험의 관계에서 놀라운 발견을 한 것이다. 올리버는 놀라움의 감각들을 산다. 기억을 복원, 수정, 각색, 즉흥, 창의성, 개성, 자아로 연결시킨다. 여러 프레임이 스트로브로 연결되는 영화적 시각을 우리 뇌에서 발견한 것이다. 개별적 정지 상황을 움직임으로 인식하는 뇌. 시간과 지각, 시간과 의식, 시간과 기억, 시간과 음악, 시간과 움직임, 하여 그는 그의 고향은 그의 집은 뉴욕도 런던도 아닌 '정신병원'이라고 하였다. 글을 쓰면 자신의 신경이 새로운 영역, 불멸의 영역을 형성시킨다고 했다. 

 

그의 글은 유려하며 조심스러운 존중의 과정이라고 다큐는 말한다. 

 

그리고 그는 70대 후반에 동반자를 만난다. 빌리. 그 둘은 주로 식물원에서 데이트를 즐긴다. 노년기의 선물. 올리버는 고사리류의 생존을 좋아한단다. 엄청나고 감동적인 생존. 그는 죽기 4년 전에 만난 동반자로 엄청난 안도감을 찾았으며 생의 균형을 찾았단다. 

 

말기암 진단 후 남은 몇 개월의 삶을 앞두고 그는 남은 나날을 생산적으로 살겠다 한다. 일하고 놀고, 사랑하고. 의식이 있고 감정이 완전해 무너지지 않은 한. 

 

"나는 아직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나는 지각 있는 존재로 살았다."

 

죽는 방법에 대해서도 마스터 클래스였다 한다. 

 

"사람들은 죽을 때 채울 수 없는 구멍을 남긴다."

본인만이 채울 수 있는 구멍. 본인만의 것. 죽음과 삶. 

 

" 사랑했으며 사랑받았으며 읽고 여행하고 생각하고 썼고 편안했다."

 

 

그의 책들을 찾아 다시 읽어볼 참이다. 멋진 하루를 보냈다. 올리버 색스에게 감사함을 전하면서. 그가 있는 하늘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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