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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영화

2021년 내가 본 최고의 긴장감, 영화 '퍼니게임 1997년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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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1일 이후 오늘(2021.12.04.)까지 내 일기장에 기록해 온 '2021. 내가 본 영화 목록'을 펼쳐본다. 300작품을 넘어섰다. 직딩이니 여름 긴 휴가와 겨울 긴 휴가를 뺀 평일에는 그리 많은 여유 시간을 마련할 수 없다. 두 방학을 모두 집콕했다. 이런 내가 고맙다. 영화. 영화 감독들, 배우들 그리고 수많은 영화계 종사자들이 참 고맙다. 그들이 있어 영화가 있고 영화가 있어 나는 산다. 산다, 산다, 산다. 

 

오늘, 올들어 내가 본 영화 중 최고의 영화를 만났다. 왜 이제야 보게 된 것일까. 

 

Funny Games, 1997

 

오스트리아

미카엘 하네케 감독

수잔느 로터, 울리히 뮤흐, 아르노 프리스치

 

 

최고의 긴장감으로 영화를 시청하였다. 올 후반기에는 살 떨리며 살고 있는 매일을 견뎌내기 위해 줄곧 19금 사이코 영화를 보고 있는데 이 영화는 단 한 순간도 내게 가벼운 호흡을 허락하지 않았다. 요즘 계속해서 보고 있는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영화 중 이 영화는 또 최고다. 오늘 부로 미카엘 하네케 감독은 '내 생의 사람' 목록에 등단하셨다. 감사드린다. 

 

부부와 외아들 세 사람 한 가족이 휴가를 떠나는 길. 남편과 아들은 게오르크라는 동명의 이름을 지녔다. 아내 안나. 그렇다 치고. 부부가 함께듣는 음악이 지금 생각해보니 영화의 끝까지 그 흐름을 데리고 간다. 여러 종류의 비명들이 혼재된 음악. 무슨 음악일까. 블랙 록음악이랄지 쇳소리 요란하게 깨지고 부딪히는 메탈을 자주 듣는데 영화 속 여러 음악들은 처음 듣는 것들이다. 알아봐야지. 

 

금수저 가족의 여름 휴가는 바다(호수?)에 띄울 보트를 차에 매달아 간다. 별장에 다다를 즈음 이미 도착하여 휴가를 즐기는 한 가족의 별장에 소리쳐 고한다. 보트 띄우기를 도와달라고. 아하, 나는 눈치채지 못했네. 이런~ 이 글을 쓰면서야 읽혀지네. 이 가족의 '안녕'을 띄우는 소리며 상대 가족의 딸을 어서 보고싶다는 아들을 보면 매 해 여름 휴가때마다 만나는 가족일 텐데, 주인장 남자의 반응이 영 어색했구나. 어색해야 옳았다. 아하~

아름다운 별장에 도착했다. 아내는 준비해 온 음식물을 챙기느라 바쁘고 아이는 2층 제 방에 제 짐들을 챙긴다. 곧 이어 오는 길에 이야기를 나눴던 집의 남자가 한 총각과 함께 등장한다. 남자가 말한다.

"내 동업자의 아들입니다."

그래, 이 때도 남자는 참 어색했네.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평소 이렇지 않았다는 것을. 하긴 누가 눈치채랴. 게오르크네도 마찬가지였다. 피터와 폴로부터 조종당하고 있었다.

 

 

게오르크 부자가 보트를 바다에 내놓으며 이것 저것 살피고 있을 때 식당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가 온다. 친구. 오늘 갈 수도 있다고. 아내는 오게 되면 전화를 주라고 한다. 이 때 누군가 현관 문을 두들겨서 나가보니 뚱보 총각 폴이란다. 당신네를 잘 아는 이웃의 부탁으로 왔노라고. 조금 모자란 듯싶은가 하면 순진한 듯싶기도 하고 엉뚱한 듯싶기도 한 총각! 달걀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며 좀 얻어오라고 했단다. 아내는 달걀 넷을 총각 손에 쥐어준다. 총각은 현관 문으로 나갔으려니 했는데 그만 '왁'하는 소리가 들리고 현관 앞 바닥에는 달걀 넷이 산산히 으깨어져 있다. 괜찮노라고와 죄송하다고 대화가 왔다 갔다 한 후 아내는 또 달걀 넷을 챙기는데 부엌 이곳 저곳을 살피던 뚱보는 '푸수숭'하고 안나의 폰을 물에 잠기게 하고 만다. 아내 안나는 조금씩 화가 치솟는다. 두번째 달걀 넷을 손에 쥐워서 뚱보 총각을 나가게 했다 싶은데 현관 앞에서 요란스레 개의 통곡이 들리고 보트를 옮기는 데에 도움을 주러 왔던 이웃집 아저씨의 동업자 아들이 현관문 안에 폴과 함께 들어서 있다. 피터.

 

그래, 가족같은 개가 있지. 부부 곁, 아이 곁을 요란스레 이동하면서 개가 사람을 챙기는 것은 개가 영화 초반 중요한 씬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리. 사람보다 나은 짐승. 개는 이웃집 아저씨와 동업자 총각이 처음 들어섰을 때부터 통곡을 했었다. 하여 미리 찍힌 것이다.  

 

개는 통곡을 하고 두 총각은 현관문 안에서 개를 탓하자 아내는 짜증스럽다. 나가라, 드디어 안나는 두 총각들에게 어서 나가라고 화를 낸다. 아하, 아내의 짜증 전에 아내가 개를 달래던 때 몸집 날카로운 총각은 집 안 곳곳에 눈길을 던지더니 골프채를 하나 잡고 골프를 좀 쳐보겠노라고 한다. 값나가는 골프채를 어떻게 다른지를 보겠노라고. 골프채를 든 총각이 나가고 곧 개의 통곡이 멈춘다. 이 영리하고 사람 볼 줄 알고 인간보다 더 나은 개. 피터는 골프채로 개의 육신을 바사삭 으깨버렸다. 그래서 '짐승보다 못한 인간'이라는 속담이 만들어진 것.

 

개의 통곡이 멈춘 것을 확인한 두 게오르크는 '이상하다'를 표하며 보트에서 별장으로 돌아온다.

개는 보이지 않고 두 총각과 얼굴 가득 짜증으로 뒤범벅이 된 아내가 있다. 아내는 이 두 총각을 어서 내보내달라고 어른 게오르크에게 주문하는데 날카로운 총각 피터가 남편에게 화를 낸다. 우리들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달걀이 필요할 뿐이다. 열두 개 한 세트에서 여덟을 깨고 말았는데 남은 넷이 있으니 어서 달라고 어거지를  쓴다. 남편 게오르크가 외친다. 어서 나가라고. 살쾡이 총각이 왜 화를 내냐며 게오르크에게 덤빈다. 게오르크의 속을 쑤신다. 참다 못한 게오르쿠가 살쾡이 피터의 뺨을 친다. 그리고~

 

살쾡이 총각과 뚱보 총각의 퍼니 게임이 시작된다. 내일 오전 9시까지 이 가족을 죽인다는 게임이다. 

 

남편 게오르크의 다리를 골프채로 쳐서 주저앉힌다. 

"오늘 밤 이 셋을 과연 살아 있을까요?"

살쾡이 총각이 화면 가득 제 얼굴을 들이밀고 내게 물었다. 와우, 끔찍했다. 

부상자 게오르크 치고 박기, 아내 옷 벗기기 등의 성폭력, 부모가 당하는 모습에 견딜 수 없어 이리 저리 움직이는 아들 게오르크 갖고 놀기 등 치밀하면서도 최고의 교활함을 내보이는 살쾡이 총각의 퍼니 게임은 그야말로 기이하고 기괴하다.

숨 죽이면서 보게 된다. 아하, 나는 그만 눈물까지 흘렸으니, 왜?

진정 무서운 것은 사람이다, 사람이다, 사람이다. 

날렵함 몸놀림으로 이웃집까지 도망쳐 도움을 청하려 한 아이 게오르크는 친구 씨씨의 죽음만 확인한 채 살쾡이에게 붙잡혀 오고 결국 뚱보의 총알에 죽는다. 

 

꼬마 게오르크의 죽음을 확인하고서 이제 게임을 끝내겠노라고 집을 떠났던 두 악당. 어떻게든 누구에겐가 도움을 청하자고 집을 나서려던 아내가 전화기를 들어 통화를 시도하는데 아, 신호는 가되 통화는 되지 않고. 남편은 드라이기의 도움으로 계속 통화를 시도하고 아내는 유리창을 깨고 대문의 창살을 펜치로 잘라 탈출구를 만들어 도움길의 대장정을 나서는데. 

영화 속 한 컷을 스크린 샷으로 가져옴

 

 

부러질 듯한 다리를 이끌고 아이의 시신을 흰 수건으로 덮어두며 온 몸으로 떨고 있던 어른 게오르크 앞에, 아, 아내는 두 악당 총각들에게 잡혀 입에 한 가득 뭔가를 쑤셔박힌 채 다시 거실로 입성한다. 

 

12시였던가. 감독의 의도가 숨어있는 시각. 청자들이여. 기대하고 있었지? 아내가 중무장한 경찰관들을 끌고 올 것이라고. 청자들의 간절함을 밟으며 감독은 퍼니 게임을 이어간다. 

 

피터는 아내의 나이 서른다섯을 세며 누구를 먼저 죽일 것인가를 게임으로 해결하자 한다. 게임의 한 방법으로 아내에게 기도를 주문하기도 한다. 그것도 하늘을 향해, 무릎을 꿇고 정성을 다해 기도를 올리라 한다. 

 

잠시, 내 바람을 감독이 읽은 듯, 아내는 재빨리 총을 들어 뚱보 총각을 향해 총알을 발사하는데, 감독이 나를 읽었다. "영화를 보고 있는 당신, 이것을 기대하는 거지?"

테잎 되돌리기를 영화 속에서 시도한다. 영화 속 소품 액자를 설치하여 감독은 시청자들, 말하자면 인간들의 심리 그 기본틀에 조소를 표한다. 

 

결국 감독 미카엘 하네케는 인간들, 보통의 인간들이 꿈꾸는 장면을 단 한 장면도 허락해주지 않는다. 반전은 없다. '시청자들이여, 관객들이여. 영화, 감독 맘대로 만드는 것'이라며 시청자들의 상식에 대못을 박는다. 

 

살쾡이와 뚱보는 게오르크네와의 퍼니게임에서 승자가 되고 영화 중간 게오르크네에 보트로 인사를 왔던 또 한 가족에게 퍼니게임을 하러 간다. 연쇄살인 놀이를 또 하러 간다. 

 

휴가를 즐기려고 정기적으로 별장을 찾는 금수저들이여 조심하라. 반전이 없단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이여, 나는 오늘 철저하게 당신에게 패했으나 나는 당신의 영화들에서 일종의 삶의 쾌감을 느낀다. 

참내, 이 패자는 당신 영화를 보고 나면 꼭, 또 '그래, 남은 생 어찌되었든 잘 살아보자.'며 이내 다짐하곤 한다. 왜? 글쎄, 당신의 영화를 보면 늘 그래. 그렇담 당신의 영화에서 인생 철학까지 읽어내는 내가 승자인 것인가?

 

참 배우들의 열연 또한 큰 박수를 보낸다. 특히 아역배우(누구인지 정보를 찾을 수 없다)에게 무한한 박수를!

어쨌든 고마운 당신이여, 미카엘 하네케여!

 

이번 주말은 미카엘 하네케의 영화들로 알찬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행복하다.

 

이 영화 영화전문 비평가의 글은 다음을 열어 읽어보라.

[Opinion] 퍼니게임(1997) [영화] – 아트인사이트 (artinsight.co.kr)

 

 

이 영화는 미카엘 하네케 감독으로 나오미 왓츠를 출연시켜 할리우드식 리에이크 작을 2007년에 만들었다는데, 글쎄 볼가 말까 한다. 예견하건데 오늘 내 가 본 1997년 작이 훨 나을 듯. 이 영화에는 영화 '타인의 삶'으로 나를 붙잡고 있는 울리히 뮤흐가 있지 않은가. 아버지 게오르크 역으로. 뮤흐의 영화도 더 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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