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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영화

7인의 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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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명의 포로 2021

 

 

넷플릭스 홈에서 끌어온 대표 사진

 

 

 

청소년 시청 불가 | 1시간 34분 | 드라마 장르

영화 특징: 불길한, 어두운

 

감독 알레샨드리 모라투

출연 크리스치앙 말례이루스, 호드리구 산토루, 브루누 호샤, 비토르 줄리앙, 루카스 오랑미앙, 세실리아 오멩 지 멜루, 지르시 토마스, 안드레 아부장하, 키쿠 마르키스, 마야라 바치스타, 마우리시우 지 바후스, 호자니 파울루 등

 

 

베니스영화제에서 상영 후 극찬을 받았다고 한다. '소리소 디베르소(사실 이 상의 가치를 아직 찾아보지는 못했다. 어쨌든~)'상을 받은 알레샨드리 모라투 연출의 드라마 장르 영화라는데 감독의 이름도 낯설다. 어느 감독인들 낯설지 않은 일이 드문 기억의 시대를 살지만 유독 낯설다. 감독의 활동도 더 찾아볼 필요가 있겠다.

 

오순도순 온 가족이 서로에게 정을 퍼부으면서 살아가는, 홀어머니와 누이가 있는 브라질의 어느 시골 마을에 오늘내일 어디론가 떠날 날을 기다리면서 가슴 부풀어 있는 청년이 있다. 소문으로만 들어온 자본의 현장에 입실할 것이 결정되어 있다. 늘 따뜻하게 자신을 보살펴주는 가족이라는 테두리 속에 자기가 할 수 있는 뜨거운 노동의 대가로 온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마냥 기쁘다.

 

정해진 것은 그 어느 것도 없다. 일자리는 어느 곳인지, 어떤 내용의 일자리인지. 숙식은 어떻게 해결되는지, 임금은 또 어찌 되는지. 어쨌든 시골에 있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자리를 얻게 된 청년. 그는 마침내 자기가 할 수 있는 참 사람값에 가슴 부풀어 있다.

 

약속된 날, 청년은 혼자가 아니었다. 청년을 포함하여 일곱! 일자리를 소개한, 일자리 매매 중신의 차에 오른다. 청년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궁금하다. 일의 종류, 잠자리, 근로 시간, 누구와 함께 살게 되는지 등등. 마냥 부풀어 있는 시골 청년들에게 운전자는 답이 전혀 없다. 있다 한들 그림자일 뿐. 그는 그저 운전만 할 뿐이다. 그는 청년의 먼 친척뻘 되는 총각이었다.

 

먼 길을 가고 또 간 끝 그곳. 어느 조그마한 공장에 운전자는 천연덕스럽게 청년 일곱을 인도한다. 운전자는 당연한 일을 실행했을 뿐인데 왜 저럴까 싶은 눈빛을 청년들에게 던지고는 왔던 길로 달아나듯 날아간다. 공장에는 심부름 담당일 듯싶은 덕대 좋은 머슴 남자 하나와 그곳 주인장일 것 같은 힘센 사내가 상주하고 있다.

 

일곱은 무작정 공장의 어느 한쪽 구석 침실로 숙소를 배치받고 몸이 묶인다. 인신매매의 굴레가 씌워진다. 각종 균의 버무림으로 물컹한 공간, 형체도 불분명한 침구가 배치된 침실은 인정 한 가닥 찾을 수 없는, 불순을 상징하는 농도의 두툼한 무채색을 띠고 있다. 철근을 해체하여 철강으로 변신시키는 공장. 덫이다. 인신매매의 덫에 걸렸다.

 

무리 중 운전자와 안면이 있는 사람은 청년이었다. 자기들을 공동매매의 방법으로 넘기고 간 사내는 주인공의 친척. 지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청년은 일곱을 대표한다. 청년은 대학 입학을 꿈꾸던 중이었던가. 입학 자격증을 지녔던가. 청년은, 청년의 동료들과 함께 발버둥을 친다. 청년 ‘마테우스’는 선봉에 선다. 저항의 선봉, 탈출을 위한 선봉. 그러다가 마침내 그가 선 자리는 공장주가 세운 공장주의 후계자 자리이기도 했다.

 

도덕적인 흐름을 타야 하는가. 권력을 누릴 수 있는 자리를 택할 것인가. 영화는 묘한 마무리를 구획하는데 그럴싸한 결론을 바로 읽기에는 무리이다. 사람이 자리를 택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천변만화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 도덕은 안고 가면서 저항을 동시에 주물럭거리는 것은 가능할까. 권력의 검은 밧줄을 타고 건너다가 돌연 동료들의 꿈을 끌어줄 수 있는 새 힘으로 변신하여 우뚝 설 수 있기가 가능할까. 결국 인간이어서 권력의 구렁텅이에 제 몸 맡기고서 회오리를 틀어 온갖 재주를 부리는 화신이 되고 말 것인가.

 

사람이 사는 사회, 참 모질다. 징그럽기도 하고 지저분하다. 짐승보다 못한 놈이라는 생욕 같은 속담을 수없이 내뱉어도 부족한 삶의 방법이 또한 인간의 삶이다. 이럴 수는 없다는 지극히 인륜 사모의 근원을 흐르는 힘이 여전히 존재하리라는 희망을 품고 산다고 하자. 지금쯤 인간은 경계를 확실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나름의 억지도 선명하고 금 그어놓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제안하고 싶다. 살아나기 위한 그 어떠한 방법도 가치를 우선 생각하면서 내몰리기에 적응하라고. 상대는 철저하게 준비하였을 것이 눈에 훤하므로 무릇 현실 속 자신의 상태를 자각하지 말라고 주문하는 것도 심히 지저분하다. 각각의 호흡에 가림막 장치가 우선 필요하다. 중간으로 흐르는 경계선의 너비를 조금 더 넓히고 생각해 볼 일이기는 하다. 살아와 보니 말이다. 과연 청년 ‘마테우스’는 도덕의 길을 가게 될는지.

 

극악무도한 동물들, 곧 인간이다. 영원히 죽어버리기를. 나는 세상을 갓 내다본 순수 소녀의 눈으로 이 영화를 봤다. 내내 짓밟은 채 날 선 칼을 곳곳에 꽂고 싶었다. 인신매매의 현장을 제법 적나라하게 포착한 영화이다.

불행히도 여전히 이런 세상을 숨 쉬고 있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잘 안다. 영화이므로. 한 바탕 걸러낸 흔적이 가득 들어찬 영화이므로 여기에서는 충분히 부풀린 모습들이 있다. 덜 적나라하게 말이다. 경계선이 없는 인간지사.

 

함민복의 시가 생각난다.

'모든 경계선에는 꽃이 핀다.'

결코 꽃이 필 수 없는, 

꽃은커녕 가늘 줄기 꽂기도 할 수 없는,

경계선을 우뚝 잘라서 파묻고 새 세상을 

거창하게 세운 이들의 모순으로 꽉 들어찬 영화이다. 끔찍하게 삶의 장소로 기어오르는 악귀 같은 인간들에게 저주를 퍼붓고 싶다. 부디, 그냥 자거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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