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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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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간하다.

 

 

간장으로 검색하여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며칠 전 홍어탕을 끓이면서 언니와 탕에 간을 맞추는 것으로 실랑이를 벌였다. 건강에 급히 관심을 쏟고 사는 나는 조심조심, 만사가 조심조심, 요리할 때면 간을 맞추는 것에 신경이 곤두서는데. 방풍나물 씻기에 정신없이 움직이던 언니가 팔팔 끓여지는 홍어탕 냄새를 맡고 들어와 그런다. 한 숟가락 맛을 본 후다.

"소금 간 했어? 간을 잘 맞췄니? 음식이라는 것이, 그래도 간이 맞아야 입맛을 사로잡을 것인데, 이리 밍밍해서 뭔 맛으로 먹는다냐."

"걱정하지 마, 의사 선생님이 그러는데 음식에 간 하나도 하지 않고 먹어야 그 음식 고유의 맛을 즐길 수 있대. 간 하지 말고 먹어봐. 맛있어."

 

한 끼만 먹을 양을 넘어서서 나 혼자 먹는다면 대여섯 끼는 될 것이고 두세 명이 먹는대도 세 끼니는 온전히 될 것 같은 홍어탕을 두고 언니가 고집했다. 종손 며느리 노릇을 당당하게 해낸 우리 언니. 음식을 할 때면 통 크기가 보통의 수준을 넘어선다. 결국 내가 한 발 물러서서 된장 한 수저, 국 간장 1수저를 넣으면서, 그야말로 간에 기별만 가게, 간사한 혓바닥에 한 숟갈을 앉히면 틀림없이 뭔가 퍼부었다는 것을 세 치 혀가 느낄 수는 있게 하자는 최종 판결하여 계속 끓여 먹기로 했다. 이번에는 내가 한 마디 덧붙였다.

"입맛도 타성 때문이야. 사람 사는 것이 정답 같은 것이 없는 것이여. 무엇이 옳고 그르다는 기준을 인간들이 만들어서 고집하고 가르치고 멍청하게 받아들여서, 이것이 옳네, 저것은 글러 라고 하는 것 뿐이라고. 입맛도 그래. 짠맛으로 연약한 내장에 내리퍼부으면 뭐가 좋겠어?"

 

 

된장으로 검색하여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통통 자란 홍어 한 마리에 된장, 간장 한 수저의 간을 더한들, 간에 기별이라도 가겠는가. 언니와 나는 2차 조정에 들어가야 했고 티격태격하다가 각각 한 수저씩만 더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언니가 은근히 아쉬워하는 목소리에 한숨 한 수저를 담아 기어코 한 마디를 또 더했다.

"아이, 참, 그래도 탕이라는 것이 간간해야 탕의 진국을 맛보는 것이어야. 이리 싱거워서 어찌 맛이 있을까나. 돈이 얼만디"

"걱정하지 마, 내가 직접 경험을 했다니까. 내가 최근 이삼 년을, 내내, 거의 모든 음식을, 저염식으로 먹어서 혈압이 정상을 유지한다고 했잖아. 내가 좋아하는 그 의사 선생님 말씀처럼 간을 하지 않은 음식이 진짜 음식이더라니까. 정 싱거우면 간장 종지에 간장 한 국자 따라놓고 섞어서 먹어. 싱거우면 장 좀 더 치고, 짜면 물 더 치면 된댔잖아. 내 옆 사람의 명언이야."

 

"아이구야, 너는 옆 사람도 있어서 좋겄다. 그래도 탕이라는 것이 간간해야 해야. 음식을 으짜든지 맛있게 해야지. 홍어탕이 자주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심심해서 뭔 맛으로 먹는다냐~"

아, 차마 매몰차게, 자기 주장을 펼치지 못한 채 종결어미가 없는 불구의 문장으로 마무리하는 언니의 말에서 나는 사실 홍어탕 맛보다는 '간간하다'는 그 낱말에 꽂혀 그만 정신이 뿅 가버렸다.

 

 

된장으로 검색하여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음식을 만들 때마다, 간을 맞추면서 말씀하시던, 우리 엄마의 말과 그에 따른 언어적 요소를 온몸으로 함께하셨던 우리 엄마의 '간간하다'가 꼭 오늘 언니가 하는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글쎄, 언니, 초저녁이면 함박꽃 꽃 잎사귀 활짝 펼치듯, 입 크게 벌린 채 하품하는 모습이 꼭 우리 엄마다. 두 여자는 낮 동안 충성을 다하여 몸을 바친 순수 노동이 불러내는 초저녁잠이다. 나 살아생전, 단 한 번도 초저녁잠을 달콤하게 자본 적이 없음을 생각할 때 나의 불면은 노동의 숭고함을 다하지 못함에 원인이 있으리라. 잠자는 습관까지 엄마를 딱 닮은 언니는 하는 말도, 발언 후 내게 오는 어감도, 그에 따른 표정이며 행동도, 그대로 엄마이다. 

 

언니와 홍어탕 음식 간 맞추기에 대해 열혈 지정을 풀어내며 다툼 직전까지 몰아가면서 나는 나의 뇌세포를 싱그럽게 자극하는 '간간하다' 때문에 마냥 기쁨이었다. 언니의 입에서 '간간하다'는 낱말이 내뱉어지자마자, 나는 딱 찍어두었다. 잊히지 않도록, 강력하게.

'그래, 글감이다. 바로 이것이다. 블로그에 '간간하다'에 관한 글을 쓸 거다. 재미있을 거야.'

 

 

홍어탕으로 검색하여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자, '간간하다'를 쓴다. 사전에 등재된 '간간하다'의 의미는 세밀하게 분간하여 파악하면 무려 열 이상이다. 엇비슷하여 이 뜻이 저 뜻 같고 저 뜻이 저 아래 적혀진 의미와도 연결된 듯싶으나 어쨌든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간간'을 표기하는 한자어가 여럿이라는 것이다. 아래에 정리한다. 

 

간간하다

간간하다 1

1. 형용사 마음이 간질간질하게 재미있다. 흥미롭다. 

2. 아슬아슬하게 위태롭다.

- 며칠 전 낳은 강아지가 어미 품을 파고드는 모습이 참 간간하다.

 

간간하다 2

1. 형용사 입맛 당기게 약간 짠 듯하다.

2. 짜다.

3. 짭조름하다, 짭짜름하다.

- 어제 매운탕에 소금 한 숟갈을 듬뿍 넣어 끓였더니 동생은 간간하다고 물을 부어 한소끔 다시 끓여서 먹었다.

 

간간(衎衎)하다 3

1. 형용사 마음이 기쁘고 즐겁다.

2. 형용사 강하고 재빠르다.

- 동생은 신나는 일이 있었다며 간간하게 웃었다.

 

간간(侃侃)하다 4

1. 형용사 성품이나 행실 따위가 꼿꼿하고 굳세다.

2. 강직하다.

- 그는 하는 말과 행동은 참 간간하다.

 

간간(懇懇)하다 5

1. 형용사 매우 간절하다.

2. 간절하다 긴하다 절실하다.

- 제발 나의 소원을 들어달라고 다시 한번 간간하였다. 

 

간간( 懇諫)하다 6 

1. 윗사람에게 잘못을 고치도록 간절하게 말하다.

- 철수는 부장에게 계획서를 고쳐야 한다고 간간하였다.

 

위 의미 중 나와 언니, 우리가 재빠르게 홍어탕에 간 맞추기를 하면서 으르렁거렸던 것은 어느 것에 해당하는지를 단박에 알 수 있으리라. 위 '간간하다 2'의 의미에 해당한다. '입맛 당기게 약간 짠 듯하다. 짜다. 짭조름하다, 짭짜름하다.' 우리 음식 중 '탕'과 연결되는 의미이니 약간 짠 듯해야 탕답다고 한다. 우리는 그렇게 배우고 자라고 입을 훈련하고 감각을 키워왔다. 

 

솥단지로 검색하여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식구가 많아 큰 솥단지 가득, 매 끼니 국을 끓여내야 했던 우리 엄마. 늘 매운 연기를 마시면서 부엌 바깥 너른 곳에 앉힌 솥단지에 국을 끓이시면서, 큰 국자를 들고 음식과 씨름하시던 우리 엄마. 

"간간하니, 거, 맛 참 좋다. 한 끼니 실하게 모두 먹겄다. 잘 되았다."

를 외치면서 마냥 뿌듯해하시던 우리 엄마. 이때 '간간하니'는 두 번째의 '간'에 잔잔한 리듬과 거의 변화가 없는 가락을 얹어, 첫 번째의 '간'과 같은 높이의 음을 3초 정도 지그시 늘여서 소리를 내셨다. 올겨울, 봄에 다 와 가도록, 잠깐, 언니와 생활하면서, 혼자일 때는 거의 생각 밖이었던 엄마의 모습을 제법 진지하게, 불효녀인 내게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는 효녀가 되는 기회가 마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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