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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영화

나의 딸 The Daughter - Don't do t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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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딸 The Daughter

-  Don't do that! 어른들이여, 부디, Don't do that!

 

오스트레일리아 청소년 관람 불가

사이몬 스톤 감독

미란다 오토, 제프리 러쉬, 안나 토브, 샘 닐, 폴 슈나이더 등 출연

 

 

19금이라서 택했다. 왜? 이 문제는 다음에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좀 털어놓기로 하고.

 

어느 관점에서 보더라도 강력한 내용의 영화를 보고 싶었다. 영화로 일상의 단조로움 내지는 무미건조한 반복의 타성을 달래고 싶었다. 다행히 평점도 5점 만점에 4점을 넘었다. 보자. '나의 딸'인데 설마 하니 지나친, 곤두박질치는 도덕의 파편이 너풀대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리라 싶었다.

 

대표 포스터 - 영화 홈에서 가져옴

 

내가 좋아하는 영화 <베스트 오퍼>의 제프리 러쉬가 열연한다. 그는 진정한 연기자이다. 징그럽게 늙어가는, 남성 본능의 중심에서 본능을 파렴치하게 폭발하면서 사는 모습. 탐욕 속에 늙어가는 이의 동물성을 적나라게 드러낸다. 만사형통의 포용력을 이미 지녀버린 나는 무표정한 그의 눈매를 지긋이 바라보자. 약자, 여성을 타자화하여 여인네들의 움직임을 짓밟으면서 생을 지탱하는 남자.

 

그. 탐욕의 주인공인 헨리를 바라보건대 이 영화 속 그에게 사랑을 느꼈다는 여자들의 눈이며 생각이 궁금해진다. 진정 사랑이었을까? 미친! 그랬다면 미친 것이다. 대체 무엇 때문에 익혀진 감정일까. 대체 뭔가? 이해타산의 속 빈 계산 안에 인간 속 동물성의 자기 드러내기를 철없이 해댄 것이 아닐까. 우선 단맛을 살게 된다는 섣부른 희망. 그것을 사는 여인네들이 문제인가 아니면 이를 알고 돈과 권력으로 사람을 짓밟는 남성. 누가 문제인가.

 

부정이었을까. 보호 본능을 자극한 것인가. 내가 보는 헨리(제프리 러쉬)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는 날카로운 예술품 감정사로는 적격이지 여성의 사랑을 독차지할 남자로는 영 아니다 싶다. 고품격을 연기하는 다른 작품 속의 그를 너무 잘 알기에 이 영화 속에서 그는 참 어색하고 마침내 징그럽다. 회색으로 꽉 찬 음침한 무대에서 그의 여자들은 셋이다. 셋이나 그를 사랑했다? 행복하겠구나 싶지만 한 여자는 그렇게, 이 여자는 이렇게 그를 떠나고, 그렇고 그렇게 보이는 여자가 마지막 그의 곁을 지킨다.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는 자리에 16년을 먼 곳에서 살고 있던 첫 부인의 아들이 초대된다. '크리스천’(폴 슈나이더). 아비 ‘헨리’(제프리 러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것. 어머니가 죽은 뒤 집을 떠난 지 16년 만에 다시 돌아온 그에게 여동생도 있다나? 여동생이라.

 

크리스천을 반갑게 맞아준 ‘올리버’(이웬 레슬리)는 아내 ‘샬롯’(미란다 오토그리고 딸 ’헤드빅’과 함께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크리스천은 ‘올리버’를 보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처로 인한 악몽에 여전히 갇혀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즉 아버지, 헨리의 첫 부인인 자기 어머니를 떠올린다.

 

‘크리스천’은 아비의 새 결혼식 분위기를 보면서 마냥 결혼식에 도취되어 어머니가 모두에게 잊힌 과거로만 남아 있음을 깨닫는다. 끊었던 술을 다시 마신다.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된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 되고 크리스천의 분노는 극으로 치닫는다.

 

크리스천의 어머니, 헨리의 첫 부인은 자살했다. 왜? 여자 때문에. 이를 알게 된, 16년 만에 아비의 결혼식에 초대된 아들이 어찌 가만히 있을 수가 있겠는가. 그의 어미를 죽게 했다고 여겨지는 이 여자는 친구의 아내가 되어 있고. 이 여자는 임신한 채 한 총각의 아내가 되어 결혼을 하고 딸아이를 하나 낳아 행복하다니. 딸.

 

바보 같은 짓은 어른들이 한다. 어찌 그 세월을 살았을까. 고작 그리 살기 위해서 생을 진행해 온 것일까. 어쩌자고 온전한 어른을 찾기가 이리 힘들까. 징그러운 어른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해댄 생각이다. 사랑이 뭘까, 대체. 왜 자식은 낳을까. 자식을 낳은 어미가 왜 자기 목숨을 팽개칠까 등등 떠오르는 온갖 질문들. 어떤 것이 앞이고 어느 것이 뒤일까. 어떻게 정리할까. 

 

딸을 잉태한 채 결혼한 그녀의 딸을 현 남편은 친딸로 여기고 마냥 행복하다. 그저 바라보건대 행복하면 전부가 된 셈. 상당 수의 인간들이 그렇다. 어떻게든 물질적인 힘과 일상의 여유로움을 금전적으로 누릴 수 있다면 행복하다고 여기는 삶. 나도 혹 상당수의 인간에 속하질 않는지. 가끔씩은 말이다. 혹은 늘 그럴 수도 있다. 짐승의 탈을 쓰고 말이다. 겹겹이 쌓인 응큼한 본능들을 하나씩 끄집어내어 햇볕에 말릴 일이다. 더 일그러지기 전에.

 

그리고 다른 관점에서 영화를 논할 수 있다. 지방의 유일한 공장주이자 자본주이자 금전주이면서 권력주인 헨리. 그가 공장을 문 닫으면서 일변하는 고장의 모습. 폐쇄를 앞둔 잿빛 어두운 배경이 헨리가 벼슬처럼 안고 사는 몇, 사람들의 그늘이 하나둘 도드라지면서 본처의 아들 크리스천을 배알 돋게 하면서 그의 친구 올리버를 뒤틀리게 한다.

 

자본이라는 권력을 진 헨리 같은 종과 끝없이 바닥을 헤매면서 살아내는 크리스천의 친구 올리버로 대표되는 노동자 계급의 충돌을 드러내기도 한다. 유년 시절을 함께보낸 크리스천과 친구 올리버로 인해 크게 벌어진 노동과 자본의 갭이 허무러 질 것도 같았으나 자본에 얹혀사는 크리스천을 더욱 분노하게 만든 아버지의 비밀. 결국 모든 것과 모든 곳이 으깨어진다.

 

시작부터 예견되 파국. 굳이 이런 영화가 아니더라도 스스로 깨우쳐야 할 인간사 기본 법칙을 왜 사람들은 자꾸 외면하는 것일까. 이후 만날 날 선 칼날을 왜 예견하지 못하는 것일까. 크리스천의 분노가 폭발하면서 끔찍한 현실을 맞게 되는데 그의 아비는 왜 이 같은 자기 앞날을 스스로 예상할 수 없었는지. 가끔 내뱉고 싶은 것인데 가장 빤하게 멍청한 생명체는 인간이 아닐까.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았지만 탄탄하게 짜여진 구성이 끝으로 가면서 제법 묵직했다. 각 역할을 열심히 소화해 내는 배우들도 좋았다. 나도 이런 극본을 좀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먼 곳에 있는 희망이겠지만 늘 꿈은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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