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천재>( - KBS joy)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친하지 않다. 몸 늘어뜨린 채 누워 마음 편하게 시청할 시간이 없다. 더군다나 몇 해 전부터 어쩌다가 채널을 돌리면 먹고 놀고 등 몇 유행과 시류에 따른 중복 프로그램으로 보는 사람을 질리게 한다. 어쩌다가 가끔 피곤해진 뇌를 쉬게 하기 위해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면 징그럽기까지 한, 그렇고 그런, 똑같은 얼굴에 엇비슷한 내용이 줄줄 나온다. 정말이지 소위 언론이라는 곳인데 어떻게 이런 희한한 세상에 도래했나 싶을 정도라고 감히 말하고 싶은 방송사도 있다. 내 판단이 너무 했나? 그저 내 주관적인 판단이므로 이를 나무라려고 하지 말라. 솔직한 심정이다. 마치 인간 돼지들이 되어 박박 박박 바닥을 기고 있는 느낌이다(애먼 돼지들이 무슨 죄가 있냐고 덤벼들까 미안하다). 허허롭게, 헛되이 부른 배를 숨기려고 호사스러운 차림새를 꾸리고 방송이라는 우스꽝스러운 단지를 만들어 마구 굴리고 있다고 생각된다. 대체 뭘 하나 싶어 나는 거의 텔레비전 방송을 무시한다. 물론 뜻밖의 소재로 방송 시각을 기다리게 하는 프로그램도 몇 있다. jtbc의 <팬텀 싱어>, <슈퍼밴드>, <풍류 대장>, ebs의 각종 다큐멘터리, 가끔 내 좋아하는 가수가 출연할 때 보곤 하는 mbc의 <불후의 명곡> 정도이다.
9월부터 시작된 프로그램이다. 오랜만에 언론의 위치에서 방송다운 방송을 한다 싶은 프로그램을 만났다. <내일은 천재>이다. 'KBS joy'라는 채널에서 방송한다. 고백하건대 'KBS joy'라는 채널이 있다는 것을 오늘 알았다. 이런 프로그램은 많이 좀 봐야 한다 싶어 검색하다 보니 이런 채널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너 번 시청했다. 아마 몇 주 전 어느 주말이었을 게다. 글이라고 쓰느라 주말도 바쁘다. 곧 멈출지도 모를 '하루 한 편 아침 일기 쓰기' 등의 글쓰기 습관 들이기를 진행하느라 토요일과 일요일도 널찍하지 못하다. 글이며 그림 그리기며 이런저런 가정사까지 하다 보면 몸도 마음도 피곤하여 마냥 쉬고 싶은 것이 주말이라는 때이다(가정 주부라는 일, 정말이지 보통 일이 아니더라. 나는 같이 사는 남자가 요리를 도맡아 하여 충분히 일을 덜 하는 편인데도 하루가 금방 가더라). 가볍게 몸에 밴 긴장을 덜어내고 싶을 때 텔레비전 채널을 움직이곤 한다. 어쩌다 한 번씩 말이다.
대부분의 텔레비전 채널 돌리기는 '괜한 일'로 끝나는데 어느 주말, 어느 날엔가, 내가 좋아하는 전문 강사 선생님이 나왔길래 채널을 고정하여 시청하게 되었다. '나 혼자 산다'의 김광규가 보여 의아해하면서도 흥미를 돋궜다. 전현무도 반가웠다. 중고등학교에서 공부하게 되는 교과 과목을 공부한다. 학원가 1타 강사가 강의한다. 세 명의 스포츠인, 한 명의 연예인이 출연하고 전현무가 진행자가 되어 운영된다.
출연진을 검색해보니 전 야구 선수 김태균과 영화배우 김광규가 올드 맨(?) 편으로 나오고 스키 선수 곽윤기와 아이돌 가수 이장준이 젊은 맨(?) 쪽으로 나온다. 미안하지만 이장준도 처음 보는 얼굴이다(미안해요, 이장준. 참 잘 생겼네요. 뜬금없이 답하는 내용들도 은근히 알찹니다. 선배들과 나누는 대화나 하는 행동으로 추측하건대 당신은 참 아름다운 소년입니다). 이름하여 '브레인 가이드 전현무와 예체능인 4인이 천재를 꿈꾸는 두뇌 계발 버라이어티'란다. 잘 어울리는 부제이다.
학교 교과 공부와는 영 멀어진 나이이고 보니 오래전 남의 일이 된 정규 교과 학습 내용이 떠올라 반가웠다. 새록새록 옛날에 공부했던 내용을 다시 확인하고 돌이켜보는 재미가 대단했다. 나의 학창 시절은 글을 읽고 쓰는 데에는 적당히 적성이 맞았으나 풀고 계산하는 문제에는 매우 약했다. 고3 담임 선생님은 내게 수학을 평타만 쳐도 스카이를 갈 수 있다고 다그쳤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서 만난 문제들은 어느 교과를 막론하고 재미있다. 심지어 수학까지도 고운 학문이다. 수학과 어우러져 역시 어려워했던 과학과도 참 재미있다. 심지어, 지금 이 나이의 내 생활에 분명히 어떤 관여가 될 수 있다는 생각까지 든다.
일반인도 공부 좀 한다 싶은 사람들이 열심히 했을 내용을 들고 전문 강사들은 강의한다. 우리네, 대한민국의 예체능인이 얼마나 고달픈가. 그들은 특별 프로그램으로 학교 생활을 했다. 지금이야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여 준비한다고 하면서 외국어 몇 등 엄청난 공부를 시킨다고 들었다. 연예인 쪽은 아예 선발 시에 학교 공부도 우수아일 때 뽑힐 확률이 높다고 들었다. 하지만 예전에는 참 안타까웠다. 출연진 네 명은 운동만 하고 연예인 생활만 한 사람들이다 싶다. 그런 단계에서 성장한 경우라고 여겨진다. 우리네 교육은 그런 내용을 예능인들에게는 가르치지 않았다. 무작정 운동하게 하고 무작정 노래 부르게 했다. 스파르타 식 운동을 시켰고 도제식이라는 전통을 매달아 죽자 살자 연기에 몰입하게 했다. 생각하는 여유를 주지 않은 채 성장하게 했다.
중간 정도의 성적을 지녔다면, 누구나 다 알만한 내용이라고 하면, 내 눈높이가 너무 높은 것인가? 출연진들에게는 엄청난 수준의 내용들이다. 1타 강사는 1타 강사이다. 개념 정리 수준에서 끝나지 않는다. 강사들은 그들이 생전 처음 들을 개념을 무작정 주입하지 않는다. 요즘 대세인 먹는 방송, 쭉쭉 빵빵으로 흐르는 장난질로 끝나지 않는다. 네 예능인은 정말로 모를, 틀림없이 처음 들을 내용들을 급하지 않게, 느릿느릿, 침착하게 학습 내용을 풀어놓는다. 막연한 추론으로 내놓은 답들을 소홀히 넘기지 않는다. 네 출연자가 하나씩 둘씩 찬찬히 생각하여 이해하고 사고하고 자기 것으로 담아낼 수 있도록 수업을 이끌어간다. 네 출연진이 직간접으로 경험하게 한다. 그들의 생활 속으로 고리를 걸어 쉽게 쉽게 설명해간다. 혹은 실험으로 보여주고 직접 체험하게 한다. 일상의 경험에서 개념을 뽑아낸다. 마침내 네 예체능인이 이해하고 판단한다. 마침내 네 출연자를 수업 활동의 주인공이 되게 한다.
예체능인들, 그중 특히 체육계 쪽의 사람은 참 순수하다는 생각을 선수들의 언행을 만날 때마다 하곤 했다. 그들은 인문학이고 이과 쪽이고 모두 모른다. 정말 모른다. 그런 그들에게 강사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삶의 재미를 얻게 한다. 재미있게 문제를 풀어가면서 배움 후 얻게 되는 뿌듯함을 만끽하게 한다. 전현무는 친절한 혹은 유쾌 상쾌한 내비게이터가 되어 네 사람과 강사 사이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매인이 된다.
검색 결과 시청률이 1%의 2분의 1도 되질 못한다. 의아하다. 정말 필요한 프로그램이 이런 프로그램이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다. 고작 영점 몇 퍼센트에 머물러 있다. 괴상한 자본주의의 대중성과 상업성을 호흡하고 있는 이 사회에서 이 정도의 시청률로는 지속될 리 없다. 매우 안타깝다. 널리 알리고 싶다. 오래도록 진행되었으면 좋겠다. 중앙방송의 정규 프로그램으로 앉혀도 참 괜찮을 프로그램이다. 전현무도 참 진행을 잘한다. 늘 공부하면서 산다는 그의 이력을 언젠가 본 적이 있다. 공부하는 이는 다르다.
아하, 정식 프로그램 방영 시각은 매주 목요일 오후 10시란다. 나도 이제야 알았다. 딱딱하지 않다. 기상천외한 답으로 웃음을 주는 출연진들의 순수성은 전 세대를 아우르는 재미를 함께하게 한다. 가볍게 나아가 참 친절하게 풀어헤치는 방식의 강사님들 강의, 진행자 전현무의 부드러운 중간지대 역할까지 참 좋은 프로그램이라 여겨진다. 공부라는 것, 참 쉬운 듯싶은데 가장 어렵다며 맘 먹기 나름이라고 늘 말씀하시던 우리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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