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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영화 '헤어질 결심'의 '안개'를 연속 재생으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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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헤어질 결심'의 ost '안개'를 연속 재생으로 들었다.

 

 

가을이 익어가고 있었다.

 

 

본격적인 아침 시작 전에 유튜브에 들어왔다. '안개'에 머물러 있었다. 송창식 선생님과 정훈희 선생님이 부르는 '안개'이다. 영화 '헤어질 결심'의 ost로 실린 그대로의 '안개'였다. 어느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 두 분이 나오셨나 보다. 미리 좀 알았더라면 두 분의 멋진 케미를 본 방송으로 미리, 그리고 매일, 보고 들으면서 행복해했을 텐데, 아쉽다.  

 

연속 재생을 눌러 열 번 넘게 들었다. 손님치레가 아니었다면 종일 들었을 것이다. 노래 시작 부분에서 '와우~' 하고 외치는 들러리 목소리의 리액션이 없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반복해 들으면서 젊은 진행자들의 요란스러운 우쭈쭈쭈까지 용서가 되었다. 물론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은 당연히 해야 한다.

 

밤을 나가다.

 

 

프로그램 pd에게 말하고 싶다. 진정 자기 프로그램 홍보를 위한다면 두 분의 소리 아닌 소리는 좀 제거했으면 좋겠다고. 송창식 님과 정훈희 님의 목소리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하는 것이 진정한 용기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 며칠 전 발견했던 것이라 오늘쯤은 진행자들의 요란한 들쑤심이 사라진 파일을 올렸으려니(이미 그런 주문의 댓글이 있었으므로) 기대했건만 발견하지 못했다. 

 

"그날 니가 왔을 때 내가 '안개' 가사 잊어먹었었다." "그랬나?" "음." "으흐흐흐흐흐흐흐." "박찬욱 감독이랑 같이 왔을 때. 그래 가지고 너 여기 앉아있는데 내가 물어봤잖아. 그다음 뭐지" "그다음에?"

수더분한 가운데 무던한 여유가 깊은 음색의 목소리가 반가웠다. 송창식 선생님이 정훈희 님에게 던지자 정훈희 님이 친오빠에게 답하는 식의 친근한 어조로 응한다. 생생한 현실감을 맛볼 수 있다. 두 분 사이 가까운 정도를 익히 파악할 수 있다. 묵은 정이 농익어 있다. 아무런 꾸밈없이 오빠의 하소연에 재미있다는 듯 반응하는 여동생이다. 정훈희 선생님의 쉰 듯 불투명한 분위기가 소리에 솔직하게 묻어있다. 허물없다. 익숙하다. 두 분 연륜 속에 쌓인 친밀함이 가득하다. 무르익은 정이 그윽하다. 시청자들이 함께 할 수 있다. 송창식 님과 정훈희 님의 솔직 담백한 대화 내용도 노래다.

 

밤을 숨 쉬다.

 

 

나 홀로 걸어가는~. 정훈희의 시작에 진행자들의 리액션이 덤벼든다. 싫다. 안개만이 자욱한 이 거리. 그 언젠가~. 송창식의 시작에 침범한 진행자들 리액션은 더 싫다. 그러나 몇 번 들으니 리액션들마저 두 분의 소리가 삭혀주신다. 1절이 끝나면 송창식의 간주가 흐른다. 무작정 흩어지려는 안개의 향방에 한계선을 그어준다. 나지막한 가락으로 안개를 이끈다. 영상 속, 노래 부르는 정훈희 왼쪽 귀 위 뺨으로 머리카락 몇이 젖어들어와 누워 있다. 그것도 언뜻 눈에 띄는 매력이다. 어울리는 리듬이다. 눈을 떠라. 안갯속에. 이제 뒤돌아볼 일만 남은 이들의 겸손을 읽는다. 응고된 세월 속에 짙은 액체로 숨어있는 과거를 가볍게 두드려 누르는 혈액의 순환이 차분하다. 남은 생을 연습하려 애써 부드러운 호흡을 융통한다. 가쁜 굴곡들의 리듬마저 조용하고 편안하다. 그러나 그 너머 남은 여분의 질곡이 안쓰럽다.  

 

그 사람은 어디에 갔을까. 안갯속에 눈을 떠라, 눈물을 감추어라. 감추어야 할 눈물을 삼키려 들자 새 눈물이 내 육신 어느 곳에서 잉태된다. 다 자라기도 전에 솟구친다. 마구 솟구친다. 이 아침 내가 혼자라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 대수롭지 않은 나이 일상이 사랑스러워진다. 참 사람으로 살려고 하는 사람의 영혼을 달래준다. 미물의 얼룩덜룩한 속내를 쓰다듬는다. 내 생의 융합에서 잉태되었을, 주 성분조차 제대로 알 수 없는 짙은 삶을 담은 투명 액체가 소중하다. 

 

산을 오르다. 유목적적이었지만.

 

 

영화 '헤어질 결심'의 '안개'를 종일 듣는 이 기분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  먼 먼 곳 누구에겐가 메시지를 보내고 싶다. 내 글귀를 파묻지 않고 고운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내 기억 속에서 찾아보고 싶다. 지금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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