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비극이란 여전히 청춘이어서라네.’
-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중에서
이 문장에 빗댈 수 있을까. 평소 하고 싶었던 일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쉽사리 되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내 젊을 적 소망을 단 한 가지도 버리지 않은 채 부여잡고 있다.
여러 달 그리던 그림이 멈춘 채 있다. 나는 매일 ’오늘은 꼭 다시 붙들어 그림을 그리자‘고 하는데 되질 않는다.
’시간이 없다.‘
라는 것은 분명 변명이다. 나는 또 이 문장을 붙들고서 하루를 접는다.
다음 날 새벽 일기장에는 분명히 이 문장이 적힐 것이다. 뻔뻔하게, 매번, 매일. 단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이 나는 다시 적을 것이다.
’오늘은 꼭 그림을 다시 시작하자.‘
’화가들이 나를 보면 얼마나 우스울까.‘
라는 생각의 위치에 서자 문득 며칠 전 읽었던 오스카 와일드의 문장이 떠올랐다. 이것이 바로 ’비극‘이구나. 여전히 청춘인 것처럼 사는 내 알량한 일상.
정리할 줄도 모르고 접을 줄도 모르고 급기야 시작하기에는 늦어버린 때. 나는 이미 ’그때‘에 도착해 있는 것이 아닐까. 돌이킬 수 없는 시기. 나이는 ’순간‘의 속도로 깊어지는데 영영 이 버릇을 고치지 못할까 봐 걱정이다.
아니다 싶은 것은 어서 접어야 하는데 꼬리라도 붙잡고 있으면 어찌 몸통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는 것. 발버둥을 치는 것도 아닌 채, 바둥바둥 온몸 움직여서 해내려 하지도 않은 채로 뻑뻑 기는 듯싶어하는 나의 행태.
부끄러워야겠지. 아, 오늘은 오스카 와일드의 문장을 빌어 반성하고, 일단 혓바늘이며 목의 통증이며 두통을 잠재워야 한다. 어서 자자. 저녁밥을 일부러 내 어릴 적 우리 집 상일꾼이 먹던 고봉 가까이 떠서 먹었다. 우선 잠을 충분히 자자. 어서~
사실, 오늘의 문장, 오스카 와일드의 문장, ‘노년의 비극이란 여전히 청춘이어서라네.’가 현재 내 상황에 과연 맞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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