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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영화

델리카트슨 사람들 - 결국 인생은 부메랑이더라.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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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카트슨 사람들 Delicatessen

- 결국 인생은 '부메랑'이더라. 그리고 '예술'의 힘, '어린이'의 힘이더라.

 

대표 포스터 - 영화 홈에서 가져옴

 

 

Delicatessen. 1991. 10점 만점에 10점.

코미디, 공포, 판타지, SF

프랑스 98분 1992. 05. 30.

청소년 관람불가

 

피에르 주네 감독

마르크 카로파스칼 베네제크(탈출시도자), 도미니크 삐농(뤼종), 마리로어 더그나크(줄리) 등 출연

 

스으윽스으윽 스으윽, 사 아악, 사 아악, 쓱 쓱, 사악사악. 푸줏간 사내가 정육점의 칼을 갈고 있다. 도톰한 얼굴이며 불뚝 솟은 배를 지닌 풍채, 눈 똥그랗게 뜨곤 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저승사자이다. 가게 앞에 서는 차는 쓰레기 더미를 큰 뭉텅이 가득 담은 통을 내려 놓는다. 그 안에 종이 쓰레기들을 머리에 인 사람이 숨어있다. 푸줏간 사내가 방금 갈았던 칼을 통 속 사람을 향해 내리친다. 틀림없이 수직으로 꽂혔다.

 

이 사람의 머리 위에 푸줏간의 칼이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 영화 홈에서 가져옴

 

* 고기를 먹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인간 사회, 델리카트슨(Delicatessen)이라는 마을이 있다네. 푸줏간과 푸줏간 사내의 집,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이 이 영화 무대의 전부라네. 어느 부부에게는 늘 뜨개질하는 장모가 있으며 어린 두 아들이 함께 산다네. 푸줏간 사내의 정부가 방 한 칸을 차지하고 있고, 어느 두 형제가 한 칸 방을 차지하여 열심히 무엇인가를 만들고 있고......, 등등등. 아하, 두 형제 중 형은 어느 여자를 사랑하고 있고, 또 한 여자를 사랑하는, 탈출을 꿈꾸는 남자가 있고. 그리고 어느 방 한 칸에는 푸줏간 사내의 딸 '줄리'가 희미한 근시의 두 눈을 달고 첼로를 켜면서 살고 있다네. '줄리'는 '돈'만 세고 있는 아비가 싫다네.

 

푸줏간 안. 이 건물에 사는 사람들이 고기를 사러 왔네. 그 고기는 어떤 고기일까. 그리고 줄을 서 있는 이 사람들은 어떤 운명을 예정하고 살고 있을까. 저 뒤 여자는 푸줏간 주인의 정부이므로 오늘 사 갈 고기도 외상이며 예정된 운명 앞에 조바심을 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럼 짐작이 가는가? 저 신문지에 싼 고기들. 

 

과연 저 신문지 안에 들어있는 고기는 어떤 것일까 - 영화 홈에서 가져옴

 

* 서커스 단원이었던 '뤼종', 델리카트슨 마을에 입실하였다. 일자리를 찾으러 왔다네, '뤼종' 그를 실어다 준 택시 기사는 돈 대신 그의 구두를 원한다네. 왜? 구두. 씹는 재미가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구두는 무엇의 대용으로 쓰일 수 있을까? 

 

무슨 일인지 '뤼종'에게 일자리를 주겠다면서 받아들이는 푸줏간 주인. 그는 '뤼종'의 신체 발달 상황을 체크 하더니 못마땅해한다. 자, 아래 사진 속 그의 얼굴을 보라. 푸줏간 사내에게 '뤼종'의 몸뚱이가 맘에 들겠는가? 어쨌든 두 구두짝을 뺏긴 '뤼종', 한때 유명 서커스단의 일원으로 화려한 삶을 보냈던 '뤼종', 델리카트슨 마을의 푸줏간 주인의 건물에 건물 수리 기사로 취직되어 방 한 칸을 부여받았다.

 

'뤼종' - 그는 서커스 단원이었다 - 영화 홈에서 가져옴

 

 

* 지하 세계 인간들의 힘을 보라. 지상 세계만 세계가 아니다. 그래, 어느 날 문득 당신들의 일상을 침범하여 늘 의기양양한 '머피의 법칙'을 보라. 왜 '샐리의 법칙'은 '머피의 법칙'에 밀리는 것일까. 생각할 틈도 없이 지하 세계 일원들이 자기들만의 꿈의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 보이지 않는 세계며 숨겨진 힘의 무게가 더 실하다는 것은 세상을 살아본 이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다. 그들은 육상의 푸줏간 주인이 운용하고 있는 법칙을 준수하며 자기들만의 세계를 움직이고 있다. 그 무서운 힘은 결국 푸줏간 건물주의 건물에 사는 모든 이들을 지배한다. 왜? 푸줏간 주인이 파는 먹이를 먹었잖아? 이런 경우를 위해서 '공범'이라는 낱말이 있는 거야. 그렇지, 그렇지? 이에 동의하면 자기 머리 정수리 한번 꾹 누르기다.

 

 

연일 신문에 보도된 지하세계의 사람들 - 영화 홈에서 가져옴

 

 

* 시종일관 영화는 '소리' 나아가 '음악', 그리고 가끔 '춤'이 함께한다. 이것들이 힘을 모으면 어떻게 되지? 영화를 보라. 온통 암흑 전야의 색깔로 도배한 이 영화를 그래도 살짝, 몸에 끼어있는 긴장을 풀게 하는 것은 예술이었어. 다행히 자기 아비를 닮지 않은 푸줏간 딸의 첼로 연주며 서커스 단원이었던 '뤼종'이 연주하는, '톱'을 재활용한 악기의 연주, 두 청춘 남녀가 연주하는 악기의 어우러짐이 있어 관객의 심장 조임을 조금은 느슨하게 풀어낸다. 심지어 침대 수리를 청한 여인네와 '뤼종'의 동행으로 만들어지는 몸 움직임의 반복에도 소리가 숨어있고 푸줏간 사내가 정부와 벌이는 원색 적나라한 섹스로 인한 낡은 침대 스프링이 움직이는 소리도 이 영화의 '조화'를 떠올리게 한다. 감독, 보통 사람이 아니더라. 블랙 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주는 사람이다. 

 

 

두 사람의 몸 움직임이 만들어 낸 묘한 조화로 영화가 따뜻해지다 - 영화 홈에서 가져옴

 

 

'춤'도 한몫한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 푸줏간의 공포를 이 앙당 물고서 살아내는 푸줏간 주인의 건물 속 인간들은 모두, 그래도 가끔, 현재를 아우를 수 있는 마음의 춤을 췄을 것이다. 물론 '사랑'이 바탕이 된 몸의 융합이다. 불륜이든 정사이든, 씨오리도 없는 섹스이든, 어쨌든 그들은 그 끝에 가끔 서로의 몸을 부여잡고 흔든다. 삶의 리듬이다. 죽음으로 가는 길에도 얼마든지 사랑이 있어 순간 행복을 누릴 수 있더라. 아는가, 어쩌다가 만들어낸 한 꼭지 사랑이 죽음으로 가는 자에게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순간일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 사람은 과연 행복한 삶을 살아낸 것인가. 해석은 각자 하기로 하고. 

 

 

* 인간사에 가장 무서운 것은 자기 자신이다. 인간사, 결국 부메랑이더라. 푸줏간 사내, 그에게 딸이 사랑하는 남자로 '뤼종'이 마음에 들겠는가. 그는 '뤼종'을 다음 타자로 선정하여 밤 행사를 준비 중이다. 밤 행사? 아니, 지금 여기에서 이를 물으면 아니 되옵니다. 진즉에, 위 글로 짐작하지 않으셨는지요. 사잣밥인 줄 알면서도 우선 먹어야 산다. 내가 내일 옆사람 식탁 위에 오를지언정 우선 먹어야 숨을 쉴 것 같은 상황이다. 이렇고 그런 밤 행사를 짐작하겠는가. '뤼종'은 그렇게 예정된 사람이었다. 푸줏간 주인의 돈은 다음 문제이다. 예정된 밤 행사를 조르는 이들이 푸줏간 건물 속에 사는 사람들이다. 

 

푸줏간 주인이 앞장서고 건물에 사는 이들이 힘을 모은다. '뤼종'의 운명을 재단하기 위해서. 다행이다. '뤼종'에게는 푸줏간 주인의 딸 '줄리'가 있다. 이러저러해서 '뤼종'의 공연 장면이 텔레비전 화면을 채우던 날, 줄리의 아비는 옥상에 설치되어 있는 텔레비전 안테나를 흔들면서 '뤼종'의 옥상 위 출현을 기다린다. 하여 줄리와 '뤼종'이 어느 방에 갇히게 되고 '뤼종'의 생각으로 밤 행사를 기다리는 이들에게 물벼락을 내린다. 그 끝에도 질기게 살아난 푸줏간 주인의 이마에는 무엇이 꽂힌다? 아래 사진을 참고하라. 

 

 

인간사 부메랑이더라 - 영화 홈에서 가져옴

 

 

*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은 떠났다. 지하 세계 인간들을 어찌 되었냐고? 이승이나 저승이라 육상이나, 지하나, 공중이나 바다나, 모두 다 인간계이다. 살 가치가 있는 사람들은 살아난다. 아, 어쩌다가 한두 명, 꼭 살아야 할 사람들이 목숨 다한 때도 있다. 그리하여 인간의 행위에는 '눈물 흘리기'라는 것이 있고 인간의 정성에는 '슬픔과 분노'라는 것이 있는 법. 인간. 살아나야 할 인간이기에 마침내 살아나면 그들 앞에는 곧 파라다이스로 가는 길이 펼쳐지더라. 물론 파라다이스는 가꾸기 나름! 줄리여, '뤼종'이여, 그리고 두 꼬마여. 탄탄대로를 잘 다지기를. 

 

살아야 할 사람이기에 살아난 사람들이여, 부디 파라다이스를 잘 가꾸길 - 영화 홈에서 가져옴

 

* 엔딩, 출연진들의 사진을 이름과 함께 각각, 시간을 할애하여 보여주는 장면이 참 다정하게 느껴지더라. 

 

 

 

 

영화 대표 포스터 - 영화 홈에서 가져옴

 

 
 

* 오랜만에 프랑스 영화의 진국을 흡입하였다. 왜 이 영화를 여태껏 못 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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