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테리어스 스킨
그렉 아라키 감독, 청소년 관람불가
별 다섯 중 넷 하고 4분의 1
흔적도 없이 사라진 5시간. ‘브라이언’은 붉은 코피와 함께 눈을 뜨지만 일종의 기억상실 속에 가벼운 아비로부터 아직 어린 생을 철퇴당한다. 혼자서 기억을 되찾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는 브라이언. 그러나 갈수록 선명해지는 의문의 잔상들로 괴롭고 뜻밖에 외계인 운운하는 사람들로 인해 자신의 병든 고름덩이를 터뜨릴 수 있는 곳을 찾는다. 그리하여 마침내 찾은 기억 속의 '닐'.
브라이언은 ‘닐’의 동행을 기억 속에서 건져내고 5시간 동안 자기 상태에 대한 기억 찾기에 돌입한다.
다른 한 축으로 날 것의 생을 진행하는 슬픈 아이는 '닐'이다. 악마가 뿌린 감촉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검붉은 피의 꽃을 가슴에 꽂고 사는 닐. 자포자기의 수렁은 참담함의 밑바닥이 될 수 없다. 끊임없이 '니 탓'이라는 무게를 씌워 밟혀대는 세태 속에서 그는 마침내 버텨내는 삶을 살아내기 위해 허우적댄다. 어떻게든 살아보겠노라고.
그러므로 브라이언과 닐은 외계의 세계가 아니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이성의 돌깨기를 각자의 위치에서 진행한다.
순간으로 영원을 쭈물떡해버린 악귀 어른은 왜 숨겨버린 것일까.
그렉 아라키 감독은 자기 전매특허인 다채로운 비주얼과 이색적인 미쟝센으로 어둠 속의 빛을 뽑아낸다. 어떠한 언어로도 다 표현될 수 없는 슬픈 어린이들의 세상을 다독거리기 위해 악귀를 등장시키는 일이 2차, 3차 가해가 된다는 것을 느낀 것이 아닐까.
어릴 적 겪은 충격적인 사건 이후 그날의 기억을 잊지 못한 채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닐’ 역을 맡은 조셉 고든 레빗. 촬영 전부터 영화의 배경이 된 캔자스를 찾아가 원작자 스콧 하임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닐’이 되기 위한 노력을 쌓아갔다는데. 현대의 조셉 고든 레빗의 연기 인생에 단단한 바탕이 되어 준 영화.
한 인간의 짐승적 액션 프레임으로 인해 구축된 두 세계의 불안, 두 개의 공포, 두 개의 분노는 결국 거대한 혐오를 낳았다.
인간들은 왜 이같은 혐오의 씨앗들을 제거하는 데에 게으른가.
어느 개같은 어른에 의해 어릴 적 생긴 성적 트라우마를 하늘이 내린 벌로 인지한 채 살아내는 두 인생.
어느 개같은 어른은 사실 미친 엄마로 인해 시작되었다.
이를 어쩌나, 어미를 난도질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성적 트라우마'라는 치유 불가능의 병명을 오롯이 새겨준 어른들은 왜 그러고도 그냥 저냥 살아가게 내버려둬야 하는 것인지.
퓰리쳐상을 수상한 최초의 평론가 故 로저 에버트는 <미스테리어스 스킨>에 대해 “가장 괴롭고 이상한 동시에 가장 감동적인 영화”라고 호평한 바 있다는데.
'스테리어스 스킨'은 충격적인 사건을 함께 겪은 두 소년이 간직한 서로 다른 비밀이 다시 하나의 진실이 되는 가슴 아픈 이야기다. 기억하려 할수록, 또는 지우려 할수록, 더욱 또렷해지는 그들의 상처는 우리에게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와 긴 여운의 잔향을 남긴다. - IGN, FILMMAKERS MAGAZINE에서
같은 곳에서 입은 상처를 서로 다를 방향으로 치달으며 어떻게든 감내래보려는 두 젊은이들의 엔딩이 참 슬프다. 마침내 서로를 만나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아 들춰보면서 서로에게 의지해야만 함을 깨닫게 된 두 사내. 서로의 어깨에 남은 생을 버티면서 일어서기를.
‘닐’과 ‘브라이언’이여, 다시 살기를, 부디 다시 살기를.
천재 감독 자비에 돌란 역시 “영화 사상 가장 슬픈 결말의 영화”라고 전하며 <미스테리어스 스킨>에 대한 특별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단다. 자비에 돌란의 영화 역시 일맥상통하다.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나고 자랐고 뉴욕에서 살았기에 영화를 위해, 영화의 무대가 되는 캔자스 로렌스를 살아본 조셉 고든은 캔자스를 이렇게 말한다. '듣는 음악이든, 먹는 음식이든 사람들은 모든 것에 열려 있다. 그러나 그 여행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소설을 쓴 스콧 하임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그로부터 탄생했고 그는 참 훌륭한 사람이다. 그에게서 나온 것을 잘 표현하고 싶다는 강한 영감을 줬다'.
원작 소설의 튼튼함에서 훌륭한 영화는 출발한다는 것.
캔자스에 가서 스콧 하임과 시간을 보내고 음악을 듣는 것이 중요했고 그렉 아라키 감독은 너무 많이 생각하거나 분석하지 않고 배우의 첫 본능에 맡기는 편이라는데`
‘닐’과 ‘브라이언’의 서로 다른 시점을 탐구하는 이야기의 방식에서 그렉 아라키 감독은 항상 대칭을 신경썼다고.모든 것이 중심에서 만나고 양쪽이 균일할 것. 샷의 미학적 구조뿐만 아니라 두 스토리라인을 왔다 갔다 하는 서술적 구성. 그 틈새에서 비슷하게도 각각의 인물이 등장하는 장면들의 등장.
음악과 색을 잘 아는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감히 말하기를 꺼려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으며, 조셉 고든은 바로 그 점이 끌렸단다.
너무나 슬픔의 아픔이 당당하여 그 끝이 아리도록 아픈 영화.
조셉 고든 래빗을 보면 가끔 이소룡이 떠오른다.
우리여, 부디 아무나한데 지 생은 지들 알아서들 살아라 하는 데에 그치지 말자. 감히 아직 순결한 생을 파괴한 괴물들을 어서 붙잡아 화장하자, 그들의 디엔에이일랑 어서 파내어 낱낱이 쪼개어 바람 속으로 흘려버리자. 그들은 산산히 으깨어져야 한다.
웬디 역의 미셸 트라첸버그와 에릭 역의 제프리 리콘의 연기도 참 이쁘고 곱다.
꽤 여러 날을 나도 아파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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