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예술/영화

비키퍼 - 너 나 할 것 없이 생은 참 쓸쓸하다 :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

반응형

 

 

 

 

 

비키퍼 - 너 나 할 것 없이 생은 참 쓸쓸하다 :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

 

 

 

꿀벌 치기 -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의 [침묵 시리즈 3부작] 중 한 편이다. 먹먹하다. 마음 한 구석 아리고 구슬프다. 어느 누구 한 사람 어떤 유의 것이든지 쓸쓸함과 함께 세상을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 자기 삶을 행복의 바구니에 가득 담아두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런 이유, 저런 이유로 세상사 참 섧고 아픈 것이 사실이다. 영화를 시작할 때 감독의 이름도 읽지 않고 시청했다. 남자 주인공 역의 마스텔로 마스트로야니를 보고서도 감독과 연결하지 못했다. '비키퍼(Beekeeper)'는 양봉가를 뜻한다.

 

 

테오 앙겔로풀로스. <안개 속의 풍경>, <영원과 하루>로 나는 적어도 일주일씩 내 안에 꽉 찬 탐욕을 나무라고 달래느라고 음울했다. 내 죄가 너무 컸던지 감독이 너무 영화를 잘 만들었던지 둘 중 하나다. 그는 그의 영화를 보는 이들을 신문한다. 그의 영화와의 만남으로 나는 늘 울고 서럽고 고단하고 우울해지고 고뇌의 통로를 만들어야 했고 마침내 며칠 골골 아파야만 했다. 

 

 

 

영화 <비키퍼>도 그랬다. 

"아무것도 아니오. 그저 지나갈 뿐~"

끝내 스스로 죽음을 택한 주인공 '스피로'가 한 말이다. 평소 내가 생각하고 뇌까리고 진중하게 혹은 연습 삼아 그리고 농담처럼 가볍게 함께 하는 유의 내용을 담은 두 문장이다. 이 문장의 조합은 곧 다음의 문장 모음과 뜻이 일맥상통하리라. "그러려니 해, 세상은 그렇고 그래. 생은 단지 그저 그럴 뿐이야."

 

 

 

 

백리향인가 -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그에게는 청춘 시절 참사랑이 있었다. CC였다. '안나'였다. 그도 사랑하는 여자였다. 너도 사랑하는 여자였다. 안나는 학우들 누구나 다 사랑했다. 그중 스피로와 생을 함께 하게 되었다. 현실과 결혼은 다르다. 참말이고 정말이다. 선생님이었던 스피로에 발맞춰 자식 교육에 돌입했을까. 유별난 안나의 아들 욕심이었을까. 안나는 줄곧 아들 교육으로 스피로와 떨어져서 지낸다. 자식으로는 스피로와 같이 지낸 듯싶은 딸이 하나 더 있다. 

 

딸의 결혼식 날이 영화의 첫 장이다. 손님들만 즐겁다. 딸 결혼을 위해 잠시 집에 들른 아내와 아들은 초대된 손처럼 스피로를 대한다. 스피로는 신부의 아버지일 뿐 집주인이 되지 못한다. 가장이 되지 못한다. 부부는 대화가 없다. 아들도 아버지를 남 보듯 한다. 교육. 그것의 무서운 힘이다. 

 

 

스피로는 교사일을 그만두게 된다. 가업을 이어나간다. '꿀벌 치기', 양봉업자이다. 물론 홀로 세상을 떠도는 방식으로 택한 것이다. 운명이라고 여긴 일이었을 수도 있다. 아내와 아들은 아테네로 떠나고 스피로는 꿀벌통을 실은 트럭을 타고 또 하나의 생을 시작한다. 그 길에 젊은 여자가 탑승한다. 

 

 

아무 곳에도 갈 곳이 없는 소녀. 그녀는 히치하이커이다. 그보다는 첫 등장 장면으로 구분하자면 가출 소녀이다. 같은 유의, 한 소년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한 소녀이기도 하다. 가진 것도 없다. 언젠가 자기 앞에 등장할 것이라 기대되는 큰 무대를 위한 의상으로 흰색 구두와 민소매 흰색 드레스를 가방에 준비하여 떠돌고 있다. 

 

 

처음은 어떻게 하다 보니 동행하게 된 안쓰러운 소녀였다. 저기까지만. 아니 저어기까지 만이다. 아, 아직 너는 네 길 위에 오르지 못했구나. 그렇담 이다음 목적지까지이다. 꼭, 꼭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헤어지는 것이다. 알겠어요. 그래요. 저기까지만요. 아니, 한 블록만 더요. 아 아니, 또 한 곳만 더 옆에 있게 해 주세요. 아저씨처럼 제게 친절하게 대해준 사람은 없었어요.

 

 

인지상정이라는 낱말이 필요한 단계에 이르면 사람은 멀리 있는 사람보다는 곁에 있는 사람과 온갖 정이 싹트게 된다. 스킨십의 매력이다. 그렇게 소녀에 대한 정이 치솟는다. 심지어 이 알량한 히치하이커는 한 청년을 숙소에 데려와 스피로의 침대 곁에서 온 세상이 들썩일 만큼 침대를 쿵쿵거리며 섹스 난장을 치렀는데도 말이다. 

 

 

스피로는 소녀와의 정을 생각하게 되자 그녀를 떼놓고 아내 안나를 찾는다. '당신을 데리러 왔어.' 그녀는 대화 자체를 짓무른다. 대꾸하지 않는다. '수프를 끓이던 중이었어요.' 다시 말한다. '당신과 함께 가겠소.' 그녀는 응답 대신 운다. 그녀는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무엇이 그녀에게 스피로와의 대화를 닫게 했을까. 나는 충분히 짐작이 된다. 말하지 않으련다. 이 세상을 살아낸, 살아가고 있는, 살아갈, 모든 부부는, 모든 아내는 그리고 모든 남편은 짐작하리라.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 보다 더 큰 불행이다. 짐작 후 말로 풀어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될 때, 그래서 더 안쓰러웠다. 안나와 스피로. 부부 모두 참 가여운 생이었다. 곧 아들이 온다고 말하는 안나. 스피로는 그녀를 떠나온다. 스피로는 안나를 사랑했다.

 

 

스피로는 히치하이커를 찾아 나선다. 그녀는 어느 맥줏집에서 자기 또래 젊은이들 틈에 섞여 헤픈(? 젊은이들이여, 용서하라!) 젊음을 나누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행동한다면 그녀는 틀림없이 스피로의 트럭을 보고 달려와야 할 텐데 그리하지 않는다. 스피로는 가게 창을 트럭으로 뚫고 그녀를 포획하여(너무 거친가?) 트럭에 오르게 한다. 히치하이커도 쾌히 차에 오른다. 도시를 떠나 스피로의 품에 안긴다. '아저씨처럼 내게 친절한 사람은 없었어요.'

 

 

동행. 늙은 몸의 남자와 젊은 여자의 진정한 사랑이 시작된다. 어찌 되었든 사랑이다. 사랑에 구실을 붙일 필요가 없다. 사랑은 사랑일 뿐이다. 여러 양봉의 길을 함께 한다. 둘의 사랑은 이미 오래전에 시작되었고 진행되고 있었다. 미뤄뒀을 뿐이었다. 

 

 

사이사이 스피로가 찾는 옛 시절은 영화의 또 다른 한 축이다. 안나와의 사랑만 옛 시절의 일이 아니었다. 아주 짧고 굵게 지나가는 장면이 강하게 이 영화 속 감독의 의도를 들려준다. 혁명을 이끌었던 친구들을 만나 나누는 이야기들로 스피로의 생을 들려준다. 사업가로 성공한 친구, 병들어 병원 침대에 있는 친구, 교사로 성공한 스피로. 술을 들고 바다를 찾은 세 친구들의 대화는 이렇다.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역사의 뒤 꽁무니를 쫓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사랑을 좇던 친구들이었다. 진정한, 참삶을 추구하던 열정이었다. 정열이었다. 뜨거운 생이었다.

 

 

스피로와 안나는 이런 결혼을 했겠지. 히치하이커 젊은 소녀도 이런 생을 꿈꾸지 않았을까

 

 

젊은 소녀와의 사랑 여정 중 스피로는 고향도 찾는다. 황폐화가 된 집에 들러 어릴 적 내다보던 풍경을 다시 그려본다. 지나간 과거는 늘 그렇다. 쓸쓸하고 아득하다. 그리고 막막하다. 그 끝에 스피로는 어릴 적 친구를 찾는다. 휘황했던 극장을 운영했던 집안의 친구이다. 그곳도 이미 멸했다. 스러진 지 오래된 극장 앞 무대에서 스피로와 젊은 소녀의 사랑이 완성된다. 완성이라. 완성이라 해두자. 그녀는 알몸의 온몸을 스피로 앞에 내놓는다. 뜨거운 사랑을 했겠지.

 

노신과 청춘의 사랑. 그 뒤끝이 또 다르다. 낡은 몸의 스피로는 다 쓰러져가는 관객석 의자에 앉아 뭔가 골똘한 생각에 젖어 있다. 낡은 의자와 스러져가는 나이의 육신이 동병상련을 나눈다. 청춘이 외쳤으리라. '우울, 음울 따위 던져버리고 우리 세상 속으로 나가요.' 그녀가 그렇게 소리치고 무대에 오른다. 준비해 다니는 흰 구두와 흰색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대중 속으로 진출한다. 그러나 한 잔 술을 마시려다 말고 그녀가 떠난다. '보내줘요.', '나는 아무런 추억도 없어요.' 그녀가 뒤쫓아온 스피로에게 짙은 애무의 손길과 입술 키스를 남기고 떠나면서 한 말이다.

 

 

 

꿀벌 치기, 양봉업이라는 것이 생의 순환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수벌들이 여왕벌에게 쏟은 귀한 사랑에서 잉태된 어린 벌들이 온 가족들의 정 속에서 성장한다. 달콤한 꿀을 취한다. 잉태를 싣고 산으로 들로 양봉업자들은 달린다. 먹게 하고 마시게 하고 빨게 하고 맺게 한다. 맺힌 정의 모음을 다시 싣고 출발지로 돌아온다. 양봉업자들은 매해 그렇게 인생, 생의 카테고리를 반복한다. 

 

 

히스, 오렌지, 클로버, 백리향. 스피로의 벌꿀 치기 생에 그가 벌들을 위해 찾아드는 곳에 피어있는 꽃들이 더 많은 역할을 좀 해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꽃들은 스피로의 입에서 몇 줄 흘러나오는 것으로 끝난다. 안타깝다. 내가 키우고 있는 백리향과 같은 종류의 백리향일까. 스피로도 나처럼 백리향 무더기 속에 코를 묻고 향에 흠뻑 취했다면 또 다른 생의 버팀목을 얻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인생을 포기하고 식생과 함께하는 삶.

 

 

스피로는 처음처럼 혼자가 되어 꿀벌 치기의 여정을 진행한다. 그리고 어느 날 그는 흰색 꽃들 만발한 들판에서 꿀벌통을 뒤집는다. 세상을 향하여 내던진 그의 눈빛이 무엇인가를 말하고 난 후였다. 뒤집힌 꿀벌 통에서 벌들이 뛰쳐나온다. 흰색 꽃들이 꿀을 만들어 그들을 유혹했다면 스피로는 다정다감한 사람 냄새로 꿀벌들을 불러들였으리라. 꿀벌들은 주인을 공격한다. 스피로가 손가락으로 세상을 향한 메시지를 내던진다. 롱테일로 진행되는 마지막 장면을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은 인간이 아니다. '세상을 살아낼 꿈도, 희망도 없어요. 그녀도 아들도 딸도, 그리고 마침내 다시 사랑이라 여겼던, 한 젊은 여자도 떠났어요. 내가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요. 세상이여, 안녕."

 

 

 

비 상업주의. 자본과는 거리가 먼 영화. 진정한 예술영화이다. 부디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영화를 존경하는 여러 감독이 등장하길 간절히 바란다. 많이 울고 많이 우울해지고 많이 슬퍼하고, 많이 아파하고 며칠 자기반성으로 쓰러져 누운 후 핼쑥해진 상태로 세상에 다시 들어서는 것도 괜찮다. 연례행사, 월례행사, 혹은 매일 고뇌와 반성의 나날을 보내도 좋다. 최근작으로는 이런 영화들을 볼 수 없어 너무 안타깝다.

 

 

참 히치하이커와 스피로의 사랑 장면 중 꼭 그림으로 그리고 싶은 한 장면도 만났다. 한 마디로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인체의 신비를 느끼게 하는 장면이었다. 꼭 그려 이곳에 올리리라. 스피로 역의 마르첼로 마스트로야니와 히치하이커 역의 젊은 소녀(여자라고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소녀로 칭하기로 한다.) 역 나디아 모로우지에게도 감사한다. 아름다운 연기였다. 마스트로야니는 <헨리 4세>와 <달콤한 인생>, <해바라기> 등에서도 무척 인상 깊은 연기였다.

 


 

 

로만 폴란스키의 '왓?'을, 무려 삼일을 밤마다 조금씩 시청하였다. 뭐지, 뭔가, 뭘 말하려는가. 시답지 않은 영화 같기도 하고. 그냥 멈춰도 될 영화 같았으나 그만 보려고 하면 다시 또 나를 붙들었던 영화. '비키퍼' 전에

끝까지 봤다. 내 영화 보기 습관이 다했다. 궁금하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어떤 생각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을까. 그와 인터뷰를 좀 진행해보고 싶다. 말도 많고 한편 안타까운 생의 그를 위로하면서 이 영화의 속내를 좀 이야기 나누고 싶다. 

반응형

'문화·예술 >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쉬 탱크  (19) 2022.12.04
영화 <아이, 애나> - 다시 행복해질 수 있기를!  (29) 2022.11.27
스펜서 SPENCER  (38) 2022.07.17
사랑 후의 두 여자  (9) 2022.07.17
행복의 속도  (8) 2022.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