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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영화

세 가지 색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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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색 블루

프랑스 , 폴란드 , 스위스  드라마 100, 1994 .04.23 개봉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

 

줄리엣 비노쉬(줄리), 베누아 레전트(올리비에), 플로렌스 퍼넬(샌드린)

 

영화 속 한 장면을 스크린 샷으로 가져옴 : 블루 - 유럽의 하늘이다.

 

유명 작곡가인 남편과 딸이 떠났다. 가족여행 중이었다.

죽음의 신은 콕 찝어 아내만 살려뒀다. 어쩌자고?

 

영화 속 한 장면을 스크린 샷으로 가져옴

모든 것을 정리하고 집을 떠나 새 살림을 시작하지만 층수만 다를 뿐 사람들은 여전히 살고 있었다. 

 

영화 속 한 장면을 스크린 샷으로 가져옴

바라보는 풍경 속에 아이와 등 구부정한 노인과 내가 함께 존재한다. 이를 어찌하랴!

 

영화 속 한 장면을 스크린 샷으로 가져옴 : 죽음의 현장에서 발견했다는 자기 목에 걸려 있던 십자가~ 십자가일 뿐, 나는 '나'에 불과하다.

 

 

십자가는 장식일 뿐이다. 삶은 십자가 아래 매달린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은 아니더라. 

 

영화 속 한 장면을 스크린 샷으로 가져옴

죽음의 현장에서 남편이 했다는 말! 

그는 항상 재밌는 부분을 반복해서 말하곤 했죠. 

음악을 만나면 잊은 남편을 더 말끔하게 지울 수 있을까 - 영화 속 한 장면을 스크린 샷으로 가져옴
영화 속 한 장면을 스크린 샷으로 가져옴

어느 곳에서도 어떤 방법으로도 내팽개칠 수 없는 '기억'이라는 존재

남편과 딸 대신 쥐 한 가족이 나와 동거를 하게 되고

영화 속 한 장면을 스크린 샷으로 가져옴

설탕에 스민 커피처럼

남편과 아이에 대한 기억을 버리면

나의 다른 한 쪽이 세상 속으로 나아가 

세상 속에 자연스레 스밀 수 있을까. 

 

 

 

남편의 유작을 정리하고 있는 한 사람을 만난다.

그는 살아생전 남편의 연인이었다는 한 여자를 말한다.

 

그녀는 임신 중이었다.

 

남편의 모든 것을 정리해서 남편의 연인이 잉태한 새 생명에게 보낸다.

 

그렇게해서라도 남편과의 삶이 정리될 수 있다면,

 

기억은 절대 푸른 빛이 아니다.

 

어떤 빛도 찾을 수 없는 암흑천지이다, 때로, 아니 늘!

 

인간의 숙명은 어쩌면 '기억'으로 인해 가닥이 잡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서슬푸른 푸른 빛을 내내 떠올리면서 영화를 봤다.

 

줄리엣 비노쉬처럼 늙고 싶다.

 

나는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줄곧 내 늙음과 죽음을 떠올렸다.

 

언젠가부터 '나의 삶의 목표'는 '간단한 죽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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