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궁창
- 낡은 언어 1
그곳으로부터 몇 걸음을 남기고
두 손 코 틀어막고 움찔움찔
엄마 나는 이곳 냄새 징그러워 온몸으로 부산떨면
사람들 살아낸 흔적이 모이는 곳이란다
이 세상 저 세상 목숨 부대낌의 저장이란다
걱정마라
어느 골 넘지 못할 곳이 어디 있겠니
언제는 저 아래 반그늘
노란 꽃 붉은 꽃도 피더라
어떤 날은 깊숙한 그곳에 고추잠자리 날아들어 한참 쉬어도 가고
또 어떤 날은 아랫돔 사는
우리 마을 큰 일꾼 후리아재 마누라
그 멋쟁이 미인 여자
자기 남편 광산 가서
죽은 것 어서 잊어버리고 싶었는지
번쩍번쩍 실크 벨벳 광나는 옷 차려입고
조심조심
쓰고 있던 양산 세워 제 몸 의지하고 건너더라
뒤에 걷던 동산할매 그러셨지
꽃같은 양산 끝 더러운 물 묻어서 어찌할거나
괜찮아요 이곳 물은
우리 서방 장화 신고 철퍽철퍽 건너던 길
세상 덮을 만큼 힘 좋던 그 양반
이곳 지날 때면 말했지요
사람 사는 냄새 다 모여있네
나 살고 있다는 생각 바짝 들게 하는 냄새네
온갖 것 모두 집합했으니
구성진 소리라도 한 가락 더하면
이 얼마나 오질까나
쑥대머리 귀신 형용이라
이쁜 내 마누라
부끄럽다고
내 얼굴 제대로 못 보는
내 이쁜 새 각시
이곳 지날 때에야
내 등에 매달려 얼른
건너가자 조를 때면
내 남자의 힘이 장사네
내 귀 간지럽힐 때면
이 세상 사람 중 젤 복 받은 남자
내 마누라 한 몸 되어
업고 뛰고 건널 수 있는 곳
이곳만 지나면
우리 마누라 업을 생각에
내 얼굴 방실방실
마누라야 내 마누라야
어서 가자 어서 건너자 하던
우리 서방은 내 서방님은
시궁창 건널 제 내게 입힐 고까옷 사러
하늘로 갔을까 바다로 갔을까
2023년 3월 4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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