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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상한 봄
물 한 컵을 받았다.
문득 온전히 와 있지 못한 봄의 밤을 걷는데
지난해 겨울 내 식판 앞에 놓이던
한 컵의 물을 떠올린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면서
내게 건네던 손길
무의식의 귀갓길에
너를 떠올리는 것은
내가 다 주지 못한
정이 참 설었기 때문이다
미쁜 정성을 기대했으리라
충분히 알고 있는데도
어살 궂어야 했던
나의 믿음이 너무 미안해서이다
안녕
부디 안녕하기를
나보다 더 긴 생을
제발 안녕하면서 살아내기를
아직 봄이 앙상하다
이제야 네가 건넨 한 컵의 물을 떠올리는 것은
일부러 묻혀 두었다가 꺼내면
나의 번뇌가 더더욱 무거워지기를
내가 사죄해야 할 덩이가 훨씬 단단해지기를
부디 나의 죄를 용서받을 수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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