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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진 짐에 얹어진 짐을 들고
짐진 생을 살지 말자고
어제까지 남 두서 배는 다짐했다
오늘 내가 짊어져야 할 짐이 있었다
짐은
두고 가면 자칫 수치스러워질 수 있는
내 등 뒤 도깨비 바늘이 되어 깡춤으로 치솟을 수 있는
남의 입살에 콕콕 찍힐 게 당연한
내 생이 그만 적나라하게 까발려질 수 있는
준 것 없이 미운 이가 될 수도 있는
차곡차곡 쌓이면
마침내 내 영혼을 깡그리 짓밟을 수 있는
내게 진정 짐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참담함을 짐으로 싣고 가는 짐진 퇴근길
길은 내 발걸음이 앞으로 나아갈수록 피노키오의 코처럼
길어졌고
남은 시간은 덩어리로 굳어져서
나의 손발까지 고정시킬까 봐
차라리 횡단보도 중간에 서게 되지 않을까 싶어
바쁘게 걸었다
오랜만에 내리는 봄비가 감질거렸고
나는 내가 지고 있는 짐 부릴 곳을 찾을 수 없어
우산 속에 얼굴을 가리고
부리나케 하루의 끝을 어루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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