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라이프/하루 공개

어찌하나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반응형

 

 

 

 

어찌하나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비둘기. 우리 집, 에어컨 실외기를 두는 장소에 다시 한번 알을 놓아두고 갔다. 오, 이를 어쩌나. 어찌해야 하는가.

 

 

비둘기 가족의 기생(?)이 시작되었다. '기생'이라 한다. '기생'이라고 몰아붙이고 싶다. 욕먹을 각오를 하고 이렇게 쓴다. 또다시 우리 집 베란다 실외기를 두는 곳에 비둘기네가 살림을 차렸다. 번식을 위한 임시 살림이다. 그들의 여정을 우리 집에 다시 차렸다. 이삼 년은 되었을까. 녀석들이 우리 집에 정착하지 못한 햇수가. 아니 무던히도 다시 시작하려던 살림을 내가 수시 점검하여 자리 차지하지 못하게 한 햇수가.

 

녀석들은 한번 시작하면 징글징글하게 덤볐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시도했다. 무작정 덤볐다. 내 조바심이 순간 한 눈빛 더뎌졌다 싶으면 바로 자리를 잡았다. 알까지 낳은 것이 세 번이었다. 그중 첫 번째에는 알을 품었다가 부화시켜 새끼 두 마리를 만들었다. 훨훨 날을 때까지 내가 지켜줬다. 진정 내가 말이다. 

 

생각지도 못했다. 대여섯 해 전, 아니 칠팔 년은 되었을까. 베란다 에어컨 실외기를 두는 공간. 그 공간에 이상한 기미가 보였다. 나는 그 공간에 쨍쨍한 햇볕이 있어야 제대로 살아내는 장미를 키운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검붉은 색의 흑장미를 키운다. 몇 년 전 어느 날, 아마 제법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겨울이었을까. 아니다 장대비가 내리던 날이 떠오르는 것이 여름이었을 거야. 아니다. 녀석들 중 수컷이 울긋불긋 낙엽 조각들을 날려서 처자와 자기 새끼의 집을 꾸몄으니 가을일 수도 있겠다. 

 

나의 게으름은 화분 가득 찬 베란다 내다보기를 날을 정하여 실시한다. 화분에 물을 주는, 일주일에 한 번, 혹은 10일에 한번, 혹은 3주일에 한번. 나는 그런 주기로 베란다를 내다본다. 여유롭게 베란다의 화분들을 늘 쓰다듬고 있을 만큼 느긋한 생활을 하지 못하는 신세이다. 당시, 어느 날 베란다를 내다보니 그곳, 에어컨 실외기의 공간 한쪽 깊숙이 '꿈틀꿈틀'이라는 의태어가 떠오르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좋지 않은 시력에 자세히 들여다보니 동그라미 둘이 보였다. 내가 지니고 있는 눈동자 만으로는 분별이 불가능해서 베란다 불을 켰을 것이다.

 

거기 흰색 알 둘이 놓여 있었다. 셋이었던가. 아무튼 그 알들이 지닌 백색은 말 그대로 오직, 백색이었다. 표백제를 한껏 발라 온전한 '하양'만 두둑하게 추려내어 발라놓은 듯한, 순수 백색의 향연. 눈이 부셨다. 신라, 박혁거세를 잉태했을 정도의 신비가 울울 울울 그곳에 태동하고 있었다. 역사의 시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탄생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평생 화분 가꾸기에 지저분할 정도의 관심을 쏟고 사는 나인데, 나의 베란다에, 내게,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그대로 뒀다. 이는 어쩌면, 한편 애간장이며 심장을 힘내게 하는 에너지의 보고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완성된 그들의 새 생명을 보면 나의 생이 새로운 출발선 위에 다시 서서 뜀박질을 할 수도 있는 어떤 계기가 마련되지 않을까 싶었다. 시골, 농사꾼의 딸이지만 자식들을 오직 '공부'로 길러내겠다는 각오로 사시는 부모님을 만나 나는 농사꾼의 구체적인 삶을 모른다. 농사꾼이 벌이는 땅과의 씨름을 경험한 적이 없다. 심지어 농사꾼들이 일하는 모습을 자세하게 바라볼 시간조차 여의치 않은 삶을 살았다. 무작정 공부라야 했다. 그러므로 자연 속에서 어떤 동물의 생이 시작되는 장면이 지극히 인위적인 우리 집에서 완성될 것이라는 기대는 모든 일을 신의 경지로 느껴지게 할 만큼 충격적이었다. 나는 기꺼이 탄생신의 보조요원이 되기로 했다.

 

비둘기의 알을 거실에 들였던 날, 내내 아파트 에어컨 실외기 구역에 앉아있던 비둘기 부부. 사진으로 보니 처음에 왔던 부부는 아닌 듯도 싶다.

 

녀석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조심조심 훔쳐보기를 즐겼다. 옹기종기, 백색 깃발과 진회색 깃발의 비둘기 부부가 모여 앉아 바깥을 향해 눈을 주고 있는 모습은 그들이 곧 출산할 아기의 모습을 그리고 있지 않나 싶었다. 태어날 자기네의 2세를 기다리는 성스로운 행사에 나를 초대한 것이 기꺼워 가끔 숨죽일 정도의 조바심이 일기까지 했다. 고마웠다. 어쩌자고 냉해를 온몸에 품고 사는 나를 택해서 왔을까. 내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나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나도 그들과 함께 아기 기러기를 키웠다. 곧 나타날 자기네의 분신을 기다리는 녀석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숨죽여 기다리기를 꽤 했던 듯싶다.

 

어느 날 퇴근해 보니 새끼가 나와 있었다. 어미 엉덩이 끝에 미세하게, 보일 듯 말 듯한 줄로 연결된 채 양분을 섭취하고 있었다. 몸 무거운 어미를 위해 외부에서 아비가 나른 음식물은 아마 곤충류였을 것이다. 나중에 보니 그랬다. 오물오물 맛있게도 먹었다. 어미도 함께 바깥나들이를 다녀오면서 아기 비둘기들의 살집이 부풀었다. 가끔 오골골골 부모의 걸음걸이를 흉내내기도 했다.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났을까. 그곳에 나뭇잎들을 옮겨와 산모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고, 알을 낳고 새끼를 낳고 그렇게 역사를 만들던  끝에 급기야 아기들이 걸음걸이를 시작했다.

 

어느 정도 날 수 있을 만큼 자랐을 즈음, 나는 인터넷 플랫폼의 뉴스에서 '조류 독감 블라블라'의 내용을 전해듣고 말았다. 징그럽게 느껴졌다. 나는 새끼들을 어서, 일부러 날 수 있게 조바심을 부렸다. 어서 날아가라고 새끼들의 엉덩이를 두둥거렸다. 그리하여, 말하자면 날려 보냈다. 녀석들은 내가 부리는 억지를 잘 이겨냈다. 날았다. 어서 날아가라고 휙휙 커다란 바람을 일으켜 날게 했다. 분명 새끼가 날 수 있을 때가 되었길래 내보냈다고 억지 주장을 펼칠 것을 각오했을 만큼 나는 덜컥 겁이 났던 것 같다. 조류 독감 유행이라는 말에 그만 무서워졌다. 

 

냄새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이 갑자기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들 나가고 어느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 베란다 실외기 놓는 곳을 치우다가 나는 그만 쓰러질 뻔했다. 냄새의 실체를 확인했다. 비가 들치고 내 몸이 불안전한 구역으로 축축 젖어들자 그들이 남긴 오물들도 나를 덮쳤다. 비둘기 삶에 의한 온갖 것이 뭉쳐진 징그러운 냄새를 쫓기 위해 나는 온몸에 비를 젖으면서 징상스러울 정도의 손놀림과 발놀림의 반복이 필요한 청소를 해야 했다. 아무리 쓸고 닦아내도 냄새는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아직 코로나19 이전, 아, 야생에게 나의 실내를 내준 결과는 보통 일이 아니었다.

 

녀석들은 이후 때만 되었다 싶으면 줄기차게 우리 집의 그곳을 공략했다. 나는 그곳에 별의별 날카로운 것들을 몽땅 소집시켜 모아뒀다. 뒷산에서 가져온 나뭇가지에 옷걸이를 활짝 펼진 철물이며 우산까지. 정말이지 온갖 것을 다 모아 녀석들이 다시는 집을 만들지 못하게 하겠노라고 다짐했다.

 

아, 비둘기는 영리하더라. 처음 날아들었던 부부였다. 매해 오는 녀석들 둘이 줄기차게, 처음부터 여전히 그렇다. 그들 둘이다. 그대로였다. 그들이 작정하고, 번식의 소망을 이뤄내기 위해 들이닥쳐 올 때 나는 그들의 요염한 숨소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비둘기들은 한번 아기를 낳은 장소를 다시 찾아든다더라. 

 

돌아봐도 방법이 없었다. 오면 쫓고 달려들어 자리를 잡으려 들면 휘휘 겁주는 방식으로 내쫓는 방법밖에는 그 어떤 효과적인 것도 없었다. 그 사이 두세 번 나는 녀석들의 침범을 입었으나 결코 자리를 내어주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조류독감이라는 말에 그만 놀랐던 원인도 있지만 그들이 마련한 번식의 자리를 해체시켜 청소를 하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제. 일요일 오후. 요즈음 통 들르지 않는다 싶었던 비둘기네 가족들이 들어오는 듯 나가는 듯 서로를 견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해 정도 거뜬히 무찔렀고 지난해에도 내 집을 깨끗하게 잘 단속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올 겨울에는 지금까지, 제법 느긋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시 발견되었다. 부부의 우리 집 염탐이 시작되었고 마침내 우리 집 베란다에 다시 승선했나 보다. 두 개의 알 중 하나는 으깨어져 있었다. 녀석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리고 또 한 개의 알이 놓여 있었다. 온전한 알이었다. 나는 깨진 한덩이 알을 밖에 내다버리고 온전한 하나.  다른 한 덩이 알을 거실에 들여놓았다. 내일 아침 아파트 정원 구석에 놓아두려 한다. 알의 주인이 찾아냈으면 좋겠다. 부디 그곳에서 알을 품어 자기 닮은 새끼를 다시 만들 수있으면 좋겠다.

 

비둘기의 알. 이를 어떻게 할 거나. 이 비둘기의 알을 대체 어찌해야 할 것인가. 

반응형

'라이프 > 하루 공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느리게 시작한 토요일이다  (14) 2023.03.19
고구마  (22) 2023.03.17
여자는 자기 어머니의 삶을 산다는데~  (26) 2023.03.07
참개구리들이 그리운 시절이다  (24) 2023.03.06
또 삼월, 다시 삼월 첫 출근!  (22) 2023.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