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마음껏 먹던 시절이 그립다.
교과서에 고구마, 감자 등을 구황작물이라고 했는데, 이건 이해가 쉬웠더랬지. 굶주려서 붓고 얼굴이 누렇게 된다고. 이건 병명으로 부황(浮黃 뜰 부, 누를 황)이라 그런다. 예전엔 부황기 있는 사람이 많았지. 이 설명에 대한 정확한 표현은 구황 작물 [救荒作物 : 구원할 구, 거칠/흉년 황)이 맞다. 흉년 따위로 기근이 심할 때 주식을 대신해서 먹을 수 있는 농작물을 말한다.
고구마, 감자뿐만이 아니고 조(서숙=전라도 사투리), 뚱딴지(돼지감자), 메밀, 칡, 송기(소나무 속껍질) 도토리 등, 참 많다.
참 '서숙'은 사투리이다. 표준말은 서속 <기장黍, 조 粟>이다. 소나무 속껍질도 어렸을 때 소 풀 먹이러 다니면서 간식으로 많이 먹었다고 들었다. 그 외 여러 구황작물이 요즘은 건강식이다. 인기가 좋다.
오늘 이 글은 고구마 때문에 쓴다. 대농이었던 우리 집은 겨울이면 일꾼들이 살던 건물 한 동에 고구마가 가득 들어찼다. 입은 그 수가 엄청나 쌀의 대체 주식으로 고구마를 택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고구마가 얼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 건물에는 뜨끈뜨끈 큰 불을 지폈던 것도 떠오른다. 그 방에 들면 한 겨울에도 어찌나 따뜻한지 나오고 싶지 않았다. 옆으로 딸려있는 일꾼들의 방에서 나는 냄새가 그곳까지 넘쳐나서 견디기 힘들었는데 요즘 고구마를 보면 그 시절, 그 냄새들, 소의 여물이 끓여지면서 나던 냄새까지 포함하여 각종 가축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냄새까지도 그립다, 그립고 그립다.
고구마. 내장들이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것을 제대로 깨달았던 날, 그날 먹은 것 중에 고구마가 있었다. 제법 먹었다. '제법'이라니. 동안 나는 어떤 음식이던지 꼭 '제법'을 능가하는 양을 먹었다. 당연지사라 여겼다. 사람이, 먹자고 사는 것인데, 아, 그것은 아니고 제대로 살려면 제대로 먹어야 되는 것이 아닌가를 정답으로 여기면서 살아가는데 이것이 무슨 일인가.
병증 발현의 그날, 자칫 '원흉'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에 '고구마'라니. 설마 하는 심정으로 다음 날들도 살았다. 내 어릴 적부터 얼마나 많은 고구마를 먹어왔을 텐데 고구마가 내게 질병을 불러일으키는 원흉이다? 그것은 고구마에 대한 배신이다. 아닐 것이다 싶었다. 그래서 또 먹었다. 예전보다 조금 양을 낮춘 정도의 고구마였다. 한데 첫 질병 발생의 날 비슷한 증상이 또 일었다.
설마 하니 하고는 환우 카페를 열어 살폈더니 고구마가 정말로 좋지 못하단다. 아, 이를 어쩌나. 결국 고구마가 내 내장들의 원활한 활동에 제약이 되는 음식물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고구마가 먹었다 하면 평소와는 영 다른 증상이 발행했다. 그래, 결국 고구마도 문제구나. 고구마하고 멀어졌다. 이젠 한 조각의 고구마를 먹어도 불안을 바탕으로 하면서 먹는다. 이런 날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식탐의 지나친 고집으로 나는 결국 내 유년기의 음식에게도 안녕을 고하게 되었다. 슬픈 역사가 만들어지고 말았다. 세상에나, 고구마를 멀리해야 한다니. 감자보다 훨씬, 내게 가까운 음식이라는 생각을 어린 시절부터 늘 하곤 했다. 좀 더 탄탄하면서도 강해 보이는 감자는 은근히 이기적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이런, 뭔, 감자가 이기적이라니. 억지스러운 것 같지만 고구마를 보면 참 서민적이라는 생각이다. 이는 아마 어릴 적 너무 가까이 살았던 것이 이유이리라.
참 실한 고구마를 사 왔다면서 맛있게 쪄서 먹으라는 언니의 이야기를 듣고 한편 씁쓸함을 접을 수가 없다. 어쩌다가 이런 상황까지 오고 말았을까. 배가 터지도록, 맨손으로 들기에도 너무 뜨겁던, 우리 엄마 금방 쪄낸 고구마, 그 상태의 고구마를 다시 한번, 마음껏, 배 터지도록 먹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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