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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어차피 이루어질 수 없는 목표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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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이루어질 수 없는 목표이리라.

- 빨래 뒷수습으로 오전을 다 보냈다.

 

오늘 우리 집 빨래는 엉망이었다 -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누구, 삶의 목표가 없으랴. 나도 있다. 수많은 목표 중 딱 하나만 추려야 한다면? 비밀! 비밀이다. 나는 나의 비밀, 나의 최상의 목표 하나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며 산다. 어제 생각이었다. 잠들기 전 생각이었다. 너무 들떠 누구, 나를 볼까 봐서 겁이 날 정도로 나는 나 혼자서 설레발을 치면서 이불 속으로 숨어들었다. 고요히 내가 외친 구호가 다음이다.

'그래, 이루어질 수 없는 목표야.'

 

오늘 아침 눈을 뜨니 다시 생각난다. 생각의 틀을 벗어나서 발버둥을 쳤던 수많은 시간과 그 시간 속 내 모습이 함께 지나갔다. 결국 다시 붙잡기로 했다. 하매나 되겠지 하면 어느 날 문득 이뤄졌다고 할 수 있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조물주, 창조주라면 한낱 인간 한 사람에 불과할지언정, 내 생, 그 처량했던 생의 단편들을 어찌 모른 채 할 수 있으랴. 될 거야. 언젠가는 이루어질 수 있을 거야.

 

느닷없이 데리고 온 옛날 옛적 내 꿈 하나. 내 꿈을 이루기 위한 작은 일 하나라도 해야지 생각했는데 긴 시간 나와 함께 있을 시간도 없었다. 일이 터졌다. 붙잡고 있을 새도 없이 오전 내내 내 실수로 인해 일어난 일을 뒷수습하느라 바빴다. 일상복으로 활용하는 운동복 주머니에 화장지를 넣은 채 세탁기에 넣었나 보다. 내 생활 습관을 아무리 돌아봐도 그런 일을 하는 내가 아니다. 한데 안감이 기모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나는 여전히 기모를입고 있다. 내게는 아직 진짜 봄이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화장지 조각들이 내 운동복 바지에 묻어있는 것을 보니 내가 문제시되는 일을 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내 평소 습관으로는 전혀 아닌가 말이다. 더불어 내가 세탁기를 작동했더라면 이 빨래, 저 빨래 분류를 했을 것이 분명하다. 한데 하필 이번 빨래는 남자가 처리했다. 이것저것 몽땅 집어넣어 세탁기를 돌렸다는 것이다.

 

그가 그랬다.

"내 옷에는 거의 안 묻어 있잖아. 자기 바지를 봐. 그럼 누가 저지른 일이겠음?"

언제부터인가 이일 저일 간섭하면서 살림살이를 해대는 남자가 자신감 있게 말했다.

"나는 이 평생 화장지를 옷 주머니에 넣어본 적이 없음. 나는 티슈를 사용하잖아. 화장지를 좋아하지 않걸랑. 당신은 비염이다 뭐다 해서 화장지를 엄청 사용하잖아."

누구 잘못인가에 대해 둘이서 한참 대화가 오갔다. 그가 이겼다. 거릉거릉, 으르렁 비슷한 의성어를 분출하면서 소리 내어 니 탓이라고 외친 사람은 나였는데 내가 졌다. 결국 이 일을 해결하러 나서야 했고 해결한 사람은 나였기 때문이다.

 

서너 시간은 걸렸다. 이 빨래, 저 빨래에 묻은 화장지의 흔적들이 갈기갈기 찢긴 채 각 섬유 위에 철썩 달라붙어 있었다. 빨래가 되어 이미 건조된 것들을 붙잡고 테이프로 떼어내기를 작업했다. 주말의 끝, 일요일 오전으로 내려앉은 시간을 몽땅 날렸다. 허허롭다. 이번 주말에는 적어도 책 두 권을 읽겠노라고 대여해 온 것이 무의미해졌다. 결국 '무의미'를 짊어지고 나는 내일로 나아간다. 내일은 좀 의미 있는 하루였으면.

 

자, 남은 오후를 또 살아보자. 오늘 아침, 새날을 시작하면서 안고 있었던 내 꿈은 이미 내 오른쪽 팔에 매달린 채 흐느적거리고 있다. 어서 끌어안고 내 꿈, 내 목표 달성을 위한 어떤 일을 해 보자. 어차피 이루어질 수 없는 목표였으리라고 버리기에는 내 생이 너무 안타깝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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