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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비둘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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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야!

비둘기야. 낳은 두 알은  비둘기의 것.

 

 

노래 '비둘기'를 부르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으랴. 내 좋아하는 그룹 '크라잉넛'의 노래 제목 '비둘기'라면 얼마나 좋을까. 아, 아니다. 크라잉넛의 노래가 아니다. 내가 그들의 노래를 부르는 것도 아니다. 아, 비둘기야, 비둘기야. 이를 어쩌란 말이냐.

 

온몸이 축 처진 채 퇴근했다. 오늘도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 일이 한 가지 생겨서 일을 머릿속에 지고서 길을 걸었다. 분명 축이 없는 불안한 걸음걸이였을 거다. 집에 들어와 보니 실내 기운이 이상했다. 아파트 베란다로 나가 보았다. 거실 앞 베란다의 오른쪽 옆, 에어컨 실외기 쪽을 보니, 아, 문제가 터졌다. 4월 초부터 잔뜩 긴장했던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요 며칠 베란다를 내다보는 것에 정성이 없었나 보다. 아뿔사!

 

비둘기 한 쌍이 일을 저질러 놓고 말았다. 분명 알을 놓은 암컷이다 싶은 비둘기가 알 옆에 나앉아 있다. 분명 어미이리라. 수컷은 실외기 밖 공중을 뱅뱅 뱅뱅! 혹 낳아놓은 자식(알) 어찌 될까 봐, 가족을 보호하겠다는 심정으로 하는 일일 거다.

 

퇴근길, 예감이 이상했다.

 

그제 문제가 되어서 내 하룻밤 잠을 설치게 했던 일이 어제 너무 쉽게 해결되었다. 아, 이제 좀 일들이 풀리려나 보다. 즐거움의 표현을 지나치게 한 것일까. 아니다. 사실은 내가 내가 해야 할 일을 똑바로 해내지 못한 탓이었다.

 

한데, 오늘 퇴근 무렵 일터 내 방에 걸려온 전화.

"그것, 제가 제출하고 싶은데요. 내일까지 해야만 하는 것인데요."

 

깜짝 놀라서 뒤적여보니 진즉 알려야 될 것을 내가 깜빡 잊고 있었던 일이었다. 사실은 이미 전달하였고 나는 다른 일들처럼 별생각들이 없나 싶다고 생각하고 있던 것. 문서를 열어서 자세히 읽어보니 이거, 또 다른 이에게도 알려야 할 것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저런 생각 끝에 자기 것을 내기 위해 준비해뒀으므로 자기 알아서 내겠다는 이의 방에 들러 ‘잠깐 멈춰줄 것을, 혹 내일이라도 낼 사람이 있으면 함께 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라는 식의 메모를 책상 위에 남기고 퇴근했다. 예감이 이상하더라는 것이다. 이어 퇴근하는 길이 말이다.

‘일이 왜 이렇게 꼬일까.’

 

'올해 왜 이러지? 다른 한쪽으로는 기운이 참 좋은데 1월 이후, 즉 올해 들어 줄곧 난처한 일이 끊임없이 진행된다는 것. 이것, 정말이지 고사를 좀 지내야 할까 하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퉁퉁 불어 있었다.

 

비둘기의 알 둘을 발견한 순간 내 입이 미리 나섰다.

 

"일터에서 힘들었으니 집에서라도 좀 마음이 편해야 하는데 이게 뭐람?"

 

문을 거칠게 열어 자기가 놓은 알을 지키고 있던 암컷 비둘기를 날려 보냈다. 쉽게 날아가지 않았다. 여러 해째 느끼는 것인데 비둘기의 모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나는 것’들이 아니다. 사람이 지닌, 인간 여성이 지닌 모정 못지않다. 문을 열어 한참 유리창을 두들기고 막대기를 들고 쿵쾅쿵쾅 소리를 내야만 있던 곳에서 벗어난다. 이후 한참 주변을 뱅뱅 돈다. 아마 서너 날은 계속 그럴 거다.

 

알 두 개를 집었다. 플라스틱 화분 널찍하고 편평한 흙바닥 위에 놓여 있었다. 다른 한쪽 화분, 며칠 전 주말에 단속해놓은 구근류 식물은 몇 파먹고 몇 내동댕이쳐 화분을 옆으로 엎어놓은 후였다. 한편 괘씸하기도 하고 한편 안쓰럽기도 하다. 그러나 어찌하랴. 이미 이곳 블로그에 적은 기록이 있다.

‘나는 너희들을 받아들일 수가 없단다.’

아직 어미의 기운을 담고 있는, 따뜻한 기운의 알 둘을 손바닥 안에 넣었다. 바깥을 빙빙 돌던 비둘기 부부의 괴성이 무서울 정도였다. 한참을 맴돌았다.

 

알을 꼭 싸안고 바깥으로 나갔다.

'어디에 둘까.'

사실 몇 해 전 똑같은 일이 있었다. 남자에게 소리소리 질러가면서 아파트 나무 위에 놔두게 했었다. 그 후 며칠 뒤 남자가 확인해 보니 알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을 확인했다. 알을 둘 곳을 살피려 드니 고양이가 보였다.

'아, 고양이가 닿을 수 없는 곳이어야지.'

고양이를 떠올리니 쥐가 생각났다.

'그래, 쥐도 덤빌 수 없는 곳이어야 해.'

그럼 어디에 둬야 할까. 상당 시간을 돌아다녔으나 마땅한 자리가 없었다. 여전히 우리 집, 베란다 밖에서는 비둘기 부부가 소리소리 질러가며 울부짖고 있었다. 거칠게 날개를 파닥이면서 공중을 깨부수고 있었다.

 

고민 끝에 찾아낸 곳이 야자수 나무 위였다. 야자수 나무 저 위, 넓은 잎이 겹쳐진 채 펼쳐지면서 제법 일정한 너비가 형성되는 자리. 그곳을 향해 꼽발을 들어 비둘기알 둘을 올려뒀다.

 

집에 올라와 베란다를 내다보니 서너 번 비둘기 부부가 서성대는 모습이 보였다. 구해다 놓은 긴 막대기를 실외기 곳곳에 더 꽂아서 너비가 만들어지는 공간을 없게 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일까. 이제 비둘기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비명이 들리지 않는다. 지금 시각은 밤 아홉 시를 넘은 시각. 부디 어찌어찌해서 야자수 잎새 위가 비둘기알이 부화하고 비둘기 엄마가 몸을 풀고, 수컷 비둘기가 자기 아이들에게 음식을 가져다줄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일 아침에는 비둘기알이 여전히, 그곳, 야자수 잎 위에 있는지 살핀 후에 출근해야겠다. 야자수 잎들로 인해 만든 공간 위에서 비둘기 가족이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이곳 블로그에 올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나는 한 달 넘게 그들에 대한 일기를 매일 쓸 수 있을 텐데.

 

비둘기알 둘을 들고 어찌할 줄 몰라 힘들어하던 나의 모습 끝에 남자가 말한다.

"비둘기하고 갈매기가 어떻게 다른지 알아?"

"지금 그게 뭔 소용?"

"그게 그렇다고, 사용되는 한자어가 재미있다고."

"그럼 보내줘. 블로그에 올릴 거야."

 

내일은 비둘기알 둘을 내내 생각하면서 남자가 보내올 '갈매기와 비둘기'에 대한 한자어를 이곳 블로그에 좀 올릴 참이다. 요즈음 진짜로, 마음이 참 힘들다. 어쨌든 일터 일이 내일 잘 해결되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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