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류성 식도염 : 찬 음식은 금물!
소화기 질병 발병 이후 거의 행하지 않던 오후 간식을 먹었다. 탱글탱글 알차게 영근, 내가 좋아하는 진보랏빛 거봉 포도였다. 얼마나 좋아하는 포도인가. 며칠 혼자 출타했다가 집에 돌아오면 남자는 자기 없는 사이 무엇을 먹었는지 점검한다. 부지런히 먹어야 살 것이 아니냐는 것이 지론이다. 짐을 내리자마자 냉장고 살피기를 했다. 대뜸 하는 말이 이랬다.
"포도 좋아한다면서 아직 포도를 다 먹지 않았네."
그래, 퍼뜩 생각났다. 잊었다. 잊고 있었다. 오늘 새벽, 심심해서 견딜 수가 없다고 한양으로 떠나버린 손위 언니 때문에 오늘 하루가 영 어설펐다. 함께 놀아주지 않은 나를 반성하느라 묘한 기분으로 하루를 보냈다. 유튜브 한 곳에 빠져서 실실거리느라 하루를 탕진했다. 내가 좋아할 것 같은 사람이 진행하는 유튜브였는데 탕진이래서야 되겠는가마는.
'포도가 있었구나.'
"줘. 지금 먹을 거야, 포도."
"어서 먹어. 발효되었겠다."
늘 먹으라는 소리를 반복하여 내놓느라 바쁜 남자는 살짝 비아냥 섞어 포도를 내주었다. 마파람에 게눈감추듯, 그렇게 게걸스럽게 먹었다. 커다란 알사탕처럼 커다란 크기의 포도 삼십 여 알을 가래(흙을 파헤친 후 가득 떠서 던지는 농사의 도구)로 가득 퍼서 쑥 쓸어 담듯 큰 숟가락 대여섯 번으로 게걸스럽게 먹었다. 허둥지둥 맛도 제대로 음미하지 않은 채 마구 먹었다.
'아, 너무 빨리 먹었구나.'
'이렇게나 찬 음식을 마구마구 먹었구나.'
걸신들린 듯 마구 퍼먹었다.
찬 음식을 어쩌라고 이리 먹나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온몸에 통증이 시작되었다. 등판 가득 찬 기운이 가득 차더니 양쪽 두 팔을 거쳐 손가락 마디마디로 점차 내려왔다. 복부를 거쳐 허리와 하체로 차디찬 기운이 전염병 퍼지듯이 뒤덮는다. 온몸으로 냉기가 퍼진다. 한 뼘 한 뼘 냉기가 몸 곳곳으로 세밀하게 찾아들어 확산된다. 그리고는 온몸의 바탕이랄 수 있는 뼈 속 깊이, 저 아래 심지까지 짓누른다. 뼈를 할퀸다. 아, 그 얼음덩어리들을 사골 국물 떠먹듯이 먹었으니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나는 바보다. 제발 찬 음식을 그만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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