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식/어쨌든 공부

커피와 간헐적 단식

반응형

 

 

 

커피와 간헐적 단식

 

내가 마시는 커피는 이렇게 거창한 절차를 밟지 않지만.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16:8이 맞나? 간헐적 단식을 말한다. 내가 이를 하고 있다. 16:8로도 하고 18:6으로도 한다. 두 달에 한번 정도 갖는 일터 회식에서 소주잔이라도 감싸고 흐느적거리는 날에는 12:6이 되는 수도 있지만 대부분 18:6이 나의 간헐적 단식에는 주요 리듬이다. 뭐 뚜렷한 목적의식으로 출발한 것은 아니다. 내 몸뚱이는 타고나기를 비만과는 거리가 멀어서 굳이 집중해서 단식 등의 식사 방법 조절에 정성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 소화기 계통이 원활한 활동을 못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약 처방이나 어떤 치료를 해야 한다는 의사의 진료 결과를 통보받지 않았으므로 단식이니 간헐적 단식에 이렇게 매달릴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왜 해? 그래, 나는 왜 간헐적 단식에 매달리는가. 공복의 느낌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아침, 새날에 대한 내 몸의 반응으로 첫눈을 떴을 때 온몸이 하늘로 붕 뜰 수 있다고 생각될 만큼 가벼워진 몸 상태. 즉 쑥 들어간 배를 뇌세포가 감지하고 판단했을 때의 기분. 나는 그 기분을 무척 좋아한다. 낡은 내 육신을 아직 이팔청춘이라고 오판을 할 정도로 그 순간의 내 몸, 텅 빈 내 내장들의 상태가 참 든든하다. 아직 쓸 만하다는 분석까지 해낸다.

 

자, 문제는 따로 있다. 간헐적 단식의 여파로 아침이면 마시는 커피 식음을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주말이면 나는 왜 같이 사는 이로부터 간헐적 단식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질타를 받아야 하는가. 아침 식사까지 같이 하고 싶어 하는 남자가 말한다.

"간헐적 단식을 하지 않으면 아침 식사를 간단히 하고 커피도 마음 편하게 마실 수 있을 텐데....... 더군다나 단식에는 물 외에는 입에 넣지 않아야 한다는데."

그끄제 일요일에도 그랬다. 자기 식사를 멋지게 챙겨하면서 하는 말씀이 내가 간헐적 단식을 하는 이유는 세상의 흐름, 그 대세에 억지 춘향 격으로 맞춰 사는 자존심 부재의 인간이지 않은가 하는 의미가 은연 중에 담긴 말. 그제, 어제 아침에도 틀림없이 이런 내용을 내게 던지는 남자에게 내가 주문했다. 그래, 간헐적 단식을 하면서 아침이면, 공복 시에 마시는 가루 커피는 과연 얼마나 큰 방해물인가를 조사해서 알려달라.

 

이것저것 앎에 지극 정성인 남자가 오전을 넘기지 않고 답을 해 왔다. 어느 플랫폼을 통한 검색이렸다. 그가 조사한 내용의 질문은 이런 종류의 문장이리라.

"간헐적 단식을 하는데 커피를 끊을 수가 없네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단식은 시작한 지 채 2년이 되지 않았는데 출근 후 아침 공복에 섭취하는 커피는 무려 몇십 년일 것입니다. 이를 어찌해야 할까요?"

플랫폼에 물은 것이 위와 같은 질문이면 바로 이런 문장으로 답이 시작될 것이다.

"굳이 커피를 마셔야 할까요? 그럼 왜 단식을 시작했나요?"
질문의 답은 결국 커피는 좋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겠지.

간헐적 단식은 식사 시간이 아닌 시간에는 위장활동을 줄이자는 것일 거다. 그렇다면 물 이외에 커피를 포함한 여러 액체는 섭취하지 않아야 한다. 에너지로 활동하는 성분을 함유한 물질은 취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도 나는 커피를 기어코 마신다. 오늘 아침도 그랬다. 방금 마지막 한 모금을 식도에 통과시켰다.

 

혀가 맛을 감지하는 것에 대해 공부한 것이 초등학교였을 거다. 둥글 길쭉하게 혀의 모양을 그려 앞과 뒤, 오른쪽과 왼쪽, 그리고 중앙을 넉넉하게 표시하여 각 부분에 혀가 주로 느끼는 맛을 기록했다. 혀끝 부분은 단맛, 오른 왼쪽은, 신맛, 저 뒤는 쓴맛, 가운데는 짠맛. 우리가 흔히 느끼는 매운맛은 맛이 아니라 단지 통증에 불과하다며 이것은 시험에 꼭 나올 것이라는 예고하시면서 별표를 하게 했던 담임 선생님의 모습도 떠오른다.

 

최근 교과서의 내용이 바뀌었다고 들었다. 혀는 굳이 이곳저곳, 가로와 세로의 획을 그어 맛을 깨닫다는 내용은 잘못되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단다(이것도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진즉 이를 깨달았다. 진즉 나의 혀가 말했다.

"세상에나, 어찌 내 한 몸을 동시에 통과하는 음식의 맛을 이쪽저쪽 구분해서 느껴요? 말이 되나요? 온몸을 적시는데 어느 한쪽만 떡하니 내 구역이니 남의 구역이 감지할 맛은 느끼지 말자. 그게 말이 되나요?"

내 혀는 이미 깨달았다. 온몸으로 커피의 맛을 즐긴다. 커피가 혀의 표면 쑥 더듬어 통과할 때면 나의 혀는 이 맛이며 저 맛이며 구분하지 않는다. 무작정 좋다. 씁쓸, 고소에 더해진 고상한 맛.


남자의 답은 이랬다. 어느 플랫폼에 있는 답의 의미를 큰따옴표로 안고 적었다.

"출근시간에 필수였다면 아메리카노와 믹스커피 등 커피도 골고루 드시고 싶으시겠네요. 정답은 식사가 허락된 시간에만 섭취하시고 아닌 시간에는 물 외 여타 음료를 섭취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공복을 유지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는 덧붙였다.
"다만 도저히 못 참겠으면 블랙커피 한 컵(240ml)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도 싶습니다. 이는 단식에 크게 해가 되지는 않다고 합니다. 어떤 재료도 추가하지 않은 블랙커피(아메리카노)는 괜찮다고도 합니다. 이를 유지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하여 당신은 금식시간에 공복을 유지하도록 최선을 다하되 아메리카노 같은 블랙커피 한잔 정도는 취하십시오. 칼로리가 거의 없고 금식의 균형을 깨뜨릴 가능성은 낮다고 하니까요. 결론은, 블랙커피 한 컵 정도는 괜찮다~입니다. 물론 이것도 과다 섭취는 안 됩니다요."

이제 나는 별 두려움 없이, 유쾌 상쾌 발랄 모드로 확, 좋은 기운을 얻고 아침을 시작할 수 있겠다. 한편 커피는 염증 감소 및 뇌 기능 개선을 포함한 간헐적 단식의 이점을 향상할 수 있다는 설도 있지 않은가. 사실 가만 돌아보면 뭐, 커피가 뭐길래 이리 죽자 사자 매달리는지도 황당무계한 일이지만. 어쨌든 고양이가 반찬 맛을 알면 도적질도 불사한다더니 나는 어쩌면 커피물에 빠져 죽는 일도 사양하지 않을 것인가.

"그런 질긴 근성을 공부에 발휘해 봐라."

낡아가는 내가 이미 늙은 나에게 던지는 또 한 마디 문장이다. 어쨌든 아침 커피는 사람에게 살 맛이 나게 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