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전야.
- 오지고 오지고 또 오지다.
전야라. 전. 야. 아름다운 말이다. 사랑스러운 낱말이다. 소중한 낱말이며 사람 뿌듯하게 만드는 단어이다. 나는 '전야'를 사랑한다. 이 낱말을 사랑하며 이 낱말이 지닌 의미를 무척 사랑한다.
'전야'의 사랑은 여행에서 시작되었다. 길을 떠나면서 시작되었다. 사람 사는 곳 빤한 길을 떠나는데 막상 가면 그렇고 그렇다는 것을 빤히 하는데. 가는 그곳 나의 현실이 아니기에 과잉 포장되어 순간 나를 현란하게 이끈다는 것을 모두 아는데.
그곳 내 여행지에 사는 이들의 현실은 나의 서식지 현실과 방방함을 잘 아는데. 너무 잘 아는 나는 그럴싸한 여행지를 가더라도 별반 흥이 별로 일지 않더라니. 하여.
내게 여행은 당일 혹은 다니는 길보다도 아직 떠나지 않은 시각, 전야가 더 좋더라. 여행 전야.
그리하여 나의 여행은 여행 전야를 즐기는 것으로 고착되었다. 전야. 그날 밤 아직 잠에 들지 못한 채 기다림으로 지새우는 밤을 사랑하게 되더라. 여행 전야.
하여 오늘, 이 긴 연휴의 전야. 비록 권력의 그늘에 의해 만들어진 연휴이지만 어쨌든 그 권력에 소속된지라 엄명 내려진 세월을 살아야 하는 나는, 오늘, 긴 연휴 전야를 즐겨야 할 일. 즐기면 될 일.
즐기자, 그래 즐기자 하고 진행하려다 보니 일절 흥이 나지 않아 주류를 반입했으니 그것은 막걸리라. 왜? 그나마 두통을 수반하지 않은 주류가 막걸리라는 것을 지난해에 깨달았는지 올봄에 깨달았는지. 분간이 되지 않은 상태이고 보니 지금 나는 이미 막걸리 한 병의 2분의 1을 마셨구나. 그래 마셨다.
적당히 내 속에 축적되어 있는 분을 방치할 수 있어 좋다. 막. 걸. 리.
그럭저럭 내, 이토록, 지지부진한 삶은 잠시 잠깐 저 밑바닥에 가라앉힐 수 있어 다행이다. 막. 걸. 리.
오늘 하루쯤, 이딴 시간쯤 적당히 흐느적거려도 괜찮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느니 이것 또한 천만하지 않을 수 있다. 막. 걸. 리.
그래, 막걸리는 진한 농을 안고서 먹물 산천을 휘항하게 한 줄 펼칠 수 있는 힘을 내게 준다. 이런 날은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나는 이미 이성까지 젖어버린 상태. 막걸리의 액체 속에 내 온몸을 적셔버린 상태. 막걸리 한 병의 2분의 1의 힘이 참 대단하다.
자, 이제, 오늘 앞으로 주욱 늘어서있는 연휴를 즐기기 위한 첫 단추로 오늘 밤 나는 영화를 보고 '나혼산'을 좀 눈치 봐가면서 보도록 하고(내 취향에 맞는 사람일 때만 시청하기로 하고), 그리고 꼭 책을 좀 읽고 자리라, 꼭! 오늘 읽기 시작한 책은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이다. 그리 어렵지 않게 읽어질 것 같다. 이번 연휴에는
1. 꼭, 책 세 권은 읽는다.
2. 영화를 매일 두 편씩은 본다.
3. 블로그 글은 늘 해오듯이 그렇게 매일 한 편씩 올린다.
4. 연필 드로잉을 꼭 두 작품은 해낸다.
5. 듣고 있는 강의 한 품을 완강한다. 그리고 또 한 강을 반은 듣는다.
6. 유튜브 강의를 하루 두 편 이상씩 듣는다.
7. 그리고 잘 잔다.
아하, 아날로그 일기 쓰기는 꼭 하고 말이다.
와우! 뿌듯하다. 벌써 행복하다. 아름다운 금요일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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