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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내 삶을 뒤흔든 책과 문장 그리고 언어

오래된 빛 - 전수찬

오래된 빛 - 전수찬

 

- 아래 책 표지 사진은 인터넷 서점 '예스 24'에서 가져옴

오래된 빛

 

 

- 읽으려던 책이 아니었다.

- 대여해 온 남자가 심부름을 잘못했나 생각했는데 내가 잘못 주문했다. 다른 작가가 쓴 '오래된 빛'을 읽으려던 참이었다.

- 그래도 읽었다.

- 적은 쪽수, 가볍게 읽었다. 이렇게 읽는 것도 괜찮구나 싶다.

 


 

"남자는 이겨야 돼. 그러면 뭐든 할 수 있어. 알았어?"

"예."

일종의 학교 폭력이겠다. 위 문장의 '남자'에 해당되는 사내아이는 의독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자신의 언행으로 친구를 사망에 이르게 한다. 위 문장은 가해 학생 아버지의 사고방식이 녹아난 것이다.

 

어머니는 가마솥에 뱀장어를 집어넣을 때마다 끔찍한 짓을 저지르는 사람처럼 얼굴을 찌푸리곤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방식을 싫어했다. 아버지가 뱀장어를 사 오면, 어머니는 그 검고 묵직한 비닐봉지를 혐오스럽게 바라보았다.

"사람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 문제란 걸 아버지는 아마 평생 모를 거다."

언젠가 어머니는 가마솥뚜껑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다 그렇게 말했다.

창호를 알게 된 것은 그 무렵이었다.

가해 학생 어머니가 내놓은 말이다. 사건의 바닥으로 내려가면 가해 학생 아버지의 인생관에 다다른다. 자식 잡아먹고 마누라 드러눕게 하는, 야멸차고 무식한 삶의 방법이다.

 

 

아침부터, 오래전 아내를 싣고 달리던 구급차 안에서 들었던 사이렌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기환의 차를 지난 뒤로 청사에 닿을 때까지 가슴속에서 목소리가 아우성치듯 들끓고 일어났다. 목소리는 화를 내며 소리쳤다. 목소리는 불행할 권리에 대해 소리쳤다. 행복이 무엇인가. 짐승이 먹이를 찾아다니듯 평생 그렇게 사람들이 좇아 어슬렁거리는 행복이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너는 불행했다. 너는 불행한 자신을 직시했다. 그렇게 소리쳐라. 너는 불행했다고. 행복을 바라지 않았다고. 그것이야말로 네 삶의 자부심이었다고.

피해 학생의 아버지가 내뱉는, 세상을 향한 하소연이다. 구구절절 발버둥이다. '대체 산다는 것이 무엇이란 말이오.'

 

 

구급차는 밤거리를 내달렸다. 아내는 곁에 누워 조용히 숨을 쉬었다. 밤거리의 사람들은 자신의 불행을 예감한 것처럼 두려운 얼굴로 구급차를 바라보곤 했다. 구급차는 밤거리를 지나 더 어두운 곳으로 달렸다. 그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않았다. 그 사람들은 미처 불행이 닿지 않은 사람들일 뿐이었다. 불행을 저주하지 않았다.

어쩌면 각각이 지닌 불행의 현장 혹은 불행의 조짐, 불행의 씨앗을 늘 감지하고 살기에 사람들은 자기 안의 세상에 두 눈 부리박고 사는 것일 게다. 결국 각자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각자!

 

학폭의 결과 가해자나 피해자는 결국 모두 짓밟힌다. 피해자는 가해자에 의해 가해자는 세상과 제 스스로 진 빚을 갚느라고.

 

 

- 작가의 글 중 

어릴 때부터 나는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태어났으니 그 순간부터 결국 끝을 향해 가고 있다는 모순을 무슨 수로 해명하랴. 그리하여 삶을 아름답고 고매한 것으로 치장하는 것 역시 억지스럽고 자기 방어적이라고 여겼다. 

 

우리 삶이 또는 인류가 나아가는 방향이 결국 사랑이라 하더라도, 나는 우리 삶의 궁극적인 속성이 비극임을 감출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삶을 이루고 있는 불행과 비극을 다른 무엇으로 치장할 수 있으랴. 우리는 그런 삶을 살고 있고, 그래도 우~

작가는 너무 빨리 자기 생각을 뭉뚱그려 내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을 글의 서두 부분에서부터 느꼈다. 주제를 한 줄 문장으로 드러내고서 글을 써 내려간다는 느낌. 독자들에 좀 더 가슴 두근거리면서 읽어내는 시간을 앗아가 버린 느낌. 감히 말씀드리자면~,

 

어쨌든 '학교 폭력'을 저지르는 자는 폭싹 망해야 한다. 조심스럽지만 학폭 가해자의 뒤에는 (?)가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