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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벗자
이쯤 되면 훨훨
벗어던질 때가 되었다
옷을 벗자
한 겹 두 겹
겹겹으로 내 몸뚱이를 감싸고 있는 포장은
순리에 얽어매어 세월에 구속된 나를
맹목의 권력 의자에서 야멸차게 내던졌다
틈을 꽉 매운 박피들이
학학대며 숨구멍을 뚫어 내
뼛속 피부를 윽박지르고
도무지 견딜 수 없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자
내 소리마저 땅속 미궁으로 들이붓는 근본의 힘
그 본체가 무엇이었을까
허울이었다
벗겨지는 것은 허울이 아니었으나 쌓인 것은
허상이었다
두께를 벗기자
무게를 빼내자
부피를 푹 가라앉히자
진짜로 봄이 내게 올까
동백이 만개한 것은 이미 오래된 것 아닌가
동백이 꽃으로 내게 온 것은
사실 옛날 옛적 일이다
늙은 할머니가
늦은 손주를 낳다가 숨이 멈춘 며느리의 호흡을 으깨고 말았다
한겨울에서 몇 걸음을 건너왔다
어서 옷을 벗자
추위에 혀가 잘린 꽃배암이
자줏빛 탈을 벗어 던지고
태양 앞에 누운 대낮이 내려왔다
아직 겨울 동백이었다
시의 궤도 이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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