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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창작

옷을 벗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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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벗자

 

일터 화단에 있더라, 동백!

 

이쯤 되면 훨훨

벗어던질 때가 되었다

옷을 벗자

한 겹 두 겹

겹겹으로 내 몸뚱이를 감싸고 있는 포장은

순리에 얽어매어 세월에 구속된 나를

맹목의 권력 의자에서 야멸차게 내던졌다

틈을 꽉 매운 박피들이

학학대며 숨구멍을 뚫어 내

뼛속 피부를 윽박지르고

도무지 견딜 수 없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자

내 소리마저 땅속 미궁으로 들이붓는 근본의 힘

그 본체가 무엇이었을까

허울이었다

벗겨지는 것은 허울이 아니었으나 쌓인 것은

허상이었다

두께를 벗기자

무게를 빼내자

부피를 푹 가라앉히자

진짜로 봄이 내게 올까

동백이 만개한 것은 이미 오래된 것 아닌가

동백이 꽃으로 내게 온 것은

사실 옛날 옛적 일이다

늙은 할머니가

늦은 손주를 낳다가 숨이 멈춘 며느리의 호흡을 으깨고 말았다

한겨울에서 몇 걸음을 건너왔다

어서 옷을 벗자

추위에 혀가 잘린 꽃배암이

자줏빛 탈을 벗어 던지고

태양 앞에 누운 대낮이 내려왔다

아직 겨울 동백이었다

시의 궤도 이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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