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백 퍼센트까지 할인되는 가격으로 사는 연습을 하자.
지난해 정년퇴직을 하신 선배님의 전화.
"야. 연금 있잖아. 그것 말야. 근무할 때의 월급에 비해 5분의 1밖에 나오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이것저것 배우고 싶은 것은 많은데 걱정이다야."
"엥? 저, 연금만 믿고 사는데 문제네요."
"아냐, 나도 그 생각이었거든. 나야말로 친정 오빠며 동생 어찌 살게 하느라고 모아놓은 돈이 없잖아. 근데 연금만으로 살기에는 너무 빡세다야. 연금도 없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죄송한 말씀이지만 말이다."
속된 말로 현타가 왔다. '현타'란 '현실을 자각하게 되는 타임'의 축소어이다. 무한 상상, 뫼비우스의 띠를 끝없이 떠도는 망상 속에 살다가 어떤 사건이나 상황이 계기가 되어 자기 현실을 깨닫는다는 것이다.
선배는 그야말로 현인이다. 어느 곳에서나 언행이 일치하는 여자이다. 몸 씀과 마음 씀이 한 가지인 사람. 요즘 보기 드물게 참 사람다운 사람. 그녀는 늘 '헌신'하면서 산다. 하여 자기 자신을 위한 금전 놀음을 거의 하지 않는다. 이 평생 옷을 사러 몇 번이나 옷가게를 갔을까. 그녀가 거창하게 말쑥한 차림으로 성장한 것을 본 적이 없다. 옷이 날개라는 관용구와는 영 거리가 먼 여자였다. '천의무봉'은 남의 나라 언어였다. 몇 년 혹은 몇십 년은 되었을 법한 옷차림에 화장기가 전혀 없는 얼굴이 그녀의 상징이었다.
그녀라면, 연금만으로도 넘쳐 흐르는 생의 말년을 풍성하게 보내려니 싶었는데 뜻밖의 하소연이었다. 그녀는 기본은 튼튼하게 갖추어 사는 여자인데 말이다. 걱정이 되었다. 내 생활은 그녀에 비해 소비성 경향이 엄청나게 높은 편이다. 선을 빡빡 그어가면서 읽는 독서 습관으로 내 책이 될 수 있는 도서 구매가 필요하다. 내 손가락과 손바닥을 움직이고 몇 걸음이나마 내 몸을 움직여서 도구를 조절하는 상황이 필요한 것을 즐기는 내 알량한 습관은 여전히 몇 음악을 CD를 구입하여 음악을 듣는다. 아, 그림. 대체 그림을 뭐하러 사는지 모르겠다는 남자와 사는 나는 염치 불구하고 나는 이날 이때껏 99. 9%는 5만원이 넘는 옷을 사 입어본 적이 없이 근검 절약해서 구매하노니 내게 불만을 토로하지 말라고 하면서 구매하는 그림. 단위가 크다. 이 세 습관은 아마 죽을 때까지 벗어날 수 없으며 결코 버리고 싶지도 않다.
그렇다면 퇴직 후에 어떻게 산다? 방법을 모색해봐야겠다. 그래, 눈 나빠져서 도무지 독서를 할 수 없게 되면 도서 구매는 자연스레 멈춰지리라. 몸 갸우뚱한 채 굳이 몸 움직여서 CD 기계를 조작하여 음악을 듣는 고급스러운 일 또한 힘들어지지 않을까. 즉 마음 뿐 몸이 힘들면 스스로 멈추리라. 그림 구매? 이것은 아들의 힘을 좀 빌어? 아, 아니다. 나의 삶의 철칙은 절대로 아들에게 금전적인, 물질적인 도움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 그러므로 그림은 도서 구매를 멈춘 돈으로, 그리고 CD 값을 더해서 해결하기로.
살자. 남은 나날들, 매일 처음 시작하는 것처럼 그렇게 열심히 살기다. 열심히. 그래, 이제 내가 새삼 새롭게 구매해야 할 물건들은 없다. 먹는 것과 거주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 말고는 없다.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 열심히 운동을 하면서 아무 것도 사지 않고 사는, 일백 퍼센트로 할인되는 세상을 살기로 한다. 우선 건강해야겠지. 나라 밖 장기간의 여행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습관이다. 자, 출발! 하는 거야. 아직 늦지 않았어. 다행이다. 쇼핑을 즐겨 하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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