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라 뛴 하루였다.
'죽어라 뛴 하루'는 는 관용 표현이다. 점심시간을 제외하고는 자리에 앉은 적이 없다. 단 한 순간도. 수요일 큰 행사가 있어 바빴다. 정신없이 움직였다. 이른 시각 출근하여 지난 금요일부터 임시 체제로 들어간 일정을 다시 정리하였다. 오늘 예정한 일을 모두 해야 할 텐데 다 할 수 있을까 염려가 컸다.
일터의 일과 시작 시각. 9시. 최대한 깊은 호흡으로 시작하자고 다짐하였다. 차분하게 고요하게 일을 진행할 것. 인내, 인내, 인내를 수십 번 마음속으로 외치면서 나를 달랬다. 참자, 참자, 참자. 잘 참았다.
아침에 계획한 일을 모두 해냈다.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에 그쳤지만 다행이다. 기본을 갖출 수 있다. 퇴근하면서 또 다른 방향에서 나를 다스렸다.
'욕심을 부리지 말자. 현재 상태 그대로 보여주자.'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할 수 있는 내용, 준비한 것을 최대한 알차게 하자고 방향을 선회하였다. 일종의 내려 놓기이다. 더 해낼 것을 꿈꾸는 것은 허황한 욕심이다. 일그러진 탐욕이다.탐욕이 화를 부른다.
오늘과 내일은 잘 참고, 건강도 잘 챙기고(아차 하면 아파 버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사실은 지난주 금요일부터 해야 했다. 컨디션이 영 아니다. 이 말을 들은 내 안의 내가 나에게 말하더라. 어지간히 해.) 무난하게 일을 치르자. 제발 마음 편하게 살자. 더하려고 하지 말자.
일주일만 더 늦게 추위가 시작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굉장히 좋아하는 롱코트를 입고 행사를 치르려니 했는데 천이 얇아 모레는 코트를 바꿔 입어야 할 판이다. 몸이 편해야 마음도 편할 텐데. 어지간하면 속옷을 든든하게 차려입고 롱코트 1번을 그대로 입으려니 생각했는데 퇴근길에 생각이 바뀌었다. 춥더라. 롱코트 2를 입어야겠다. 내일부터는 가을비 끝, 더 강한 추위가 내려앉으리라.
하기는 ‘가을비는 내복 한 벌’이랬다. 가을비가 내리고 나면 갑자기 기온이 확 떨어진다. 체감온도는 더욱 낮게 느껴진다. 실제로 제법 거칠게 온몸에 와 닿는 쌀쌀함이 겨울 내복을 생각하게 한다고들 말을 한다. 그저 가을이려니 하고 평소 착용하던 의상으로 집 밖 걸음했다가 내복 한 벌 껴입을 것을 하고 후회한다는 것이다. 몸 사려야지 젊은이가 아니지 않은가.
이른 새벽 출근길에 뵌, 이 비에 아람이 벌어져 땅에 떨어진 밤송이를 뒤적이던 등 구부정한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내친 김에 떡을 해먹을 수 있도록 가을걷이가 끝난 다음 비가 내렸더라면 '가을비 떡비'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올해는 가을 추수가 조금 늦은 듯싶다고 남자가 말했던 것이 생각난다. 지금쯤 벼는 모두 거둬들여햐 할 때인데 말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가을이다. '천고마비'라는 사자성어도 생각나고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문장도 떠오른다. 그래, 올 가을에는 책도 좀 열심히 읽어야겠다. 가을이다. 아, 가을이다. 나운영 시, 나운영 곡의 노래 '아, 가을인가'를 듣고 씻자. 베이스 연광철의 노래가 오늘 밤에는 어울리겠다.
아 가을인가, 아 가을인가.
아아아, 가을인가 봐.
둥근 달이 고요히 창을 비추면
살며시 가을이 찾아오나 봐.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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