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하루이기를!
기상 알람 소리를 확인하지 못했다. 새벽 네 시에 다녀온 화장실이 이유였을 거다. '18(16) 시간 간헐적 단식'을 시작한 이후 생긴 생체 리듬이다. 뜻밖의 시간에 깨어나서 화장실을 다녀오는 것. 저녁 식사 때 너무 많은 음식을 섭취한다. 수분 함량이 많은 것이 대부분이다. 우유도 마시고 요플레가 더해지는 저녁 식습관. 수정이 쉽지 않다. 간헐적 단식을 계속하는 한 말이다.
불어 가는 나이 때문이라고들 하기도 한다. 나이 들면 배뇨기관의 힘이 약해져서 수시로 화장실을 드나들게 된단다. 정말 그런가 싶어 나의 하루를 돌아보면 결코 그런 이유는 아닌 듯싶다. 아침부터 나는 줄곧 수분을 섭취한다. 낮 동안에는 나의 평소 배뇨 습관 그대로이다. 어떤 변화가 생겼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신체 리듬이 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만 내게 최근 들어 생긴 '수면 시간 중 화장실 다녀오기'는 분명 저녁 식습관이 문제이다. 나이 탓은 결코 아니다. 지금은 말이다.
느닷없이 이 아침에 무슨 배뇨 습관이냐. 지금, 오늘 아침 이곳 블로그에 쓰고자 하는 글감을 블로그 댓글에서 취했다. 오늘같은 날, 즉 공휴일이나 국경일 등 쉬는 날 아침이면 나는 몸을 일으켜 세워 아침 일기를 쓰기 위해 컴퓨터 책상 앞에 선다. 이어 블로그에 들어와서 댓글 몇을 읽곤 한다. 평일에는 도무지 시간 여유가 없다. 늘 드나들어주시는 블로그 친구들의 소식을 체크할 수 없다는 미안함이 크다. 하여 휴일에는 단 몇 댓글이라도 읽고 님들의 블로그도 최대한 방문하고자 노력한다.
오늘 읽은 댓글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마음 심란했던 날의 이야기가 그날 아침 내 일기의 내용이었나 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가 차라리 행복한 하루인지도 몰라요.'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니다. 이런 내용의 문장이었다. 나의 정신이 그 문장을 확 빨아들였다. 위로가 되는 문장이다. 지난 금요일도 심란했다. 하룻밤 자고 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지만 어제 오후에는 사람이 징그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하여 위 문장은 참 고맙다.
모레부터 시작되는 주에 또 하나의 일터 거대 프로젝트가 실시된다. 이놈의 내 일터 일은 당사자들은 별생각 없이 일을 치르려 하고 옆에서 바라보면서 체크해 주는 정도로 있어야 할 내가 냅다 뛰어다녀야만 한다. 이상한 일터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어서 줄곧 해 온 일이지만 생각할수록 기가 막힌 인생사이다. 이 프로젝트를 최대한 긍정의 관점에서 우수했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말하자면 나는 또 위선의 일과를 며칠 치러야 한다. 동안 해 온 위선의 것들을 끌어모아 집약의 최극단을 보여줘야 한다는 거다.
행사 자체가 쓰레기라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일이 그렇지 아니한 것이 있느냐고 누구 내게 반문해온다면 덧붙여서 내 주장을 설파할 정도의 일은 아니라는 거다. 위 댓글에서 읽은 고마운 문장은 휴일이 아니라 주 중에 필요한 문장이리라. 부디 아무 일이 없는 매일이기를 일터에서 주문해야 하리라. 고요한 하루를 보내는 것이 최선의 바람이다.
다음 주 수요일에 치러지는, 일의 완성을 위해 내가 보내게 될 월요일과 화요일 수요일은 특히 더 그렇다. 제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딱 계획된 대로 치를 수 있었으면. 예상한 테두리 안에서만 일이 진행될 수 있었으면. 부디 더는 나아가지 않았으면. 하여 목요일 아침 일기에는 이런 문장이 쓰였으면.
'다행이다. 시나리오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딱 그만큼은 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 오늘은 아무 일이 일어날 예정이다. 드디어, 파마를 하러 간다. 겨울 네 계절을 견딜 수 있는 헤어를 만들기 위해 미장원으로 출동한다. 아마 십 개월은 된 듯싶다. 이전 파마일 이후 오늘까지. 미장원에서 견뎌내야 할 두세 시간이 두렵다. 왜 이렇게도 미장원을 가는 것이 싫은가.
무려 세 시간을 미장원에 있어야 했다. 파마는 그런대로 만족스러웠다.
불후의 명곡에서 '마이클 리'의 노래를 들을 수 있어 기뻤다. 내일 아침에는 컴퓨터 앞에 서자마자 그의 노래 '겟세마네'를 들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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