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금파금
단호박은 단맛에 호박 그대로이다.
밤호박은 단호박보다는 조금 덜한 단맛인 듯하지만, 밤처럼 알차게 속이 차 있다. 알맹이 속 밤의 기운을 더해 밀도를 높인 호박이 되었다. 호박에 밤의 성질이 더해진 것이다.
단호박은 대체로 물컹 달큼한 상태랄 수 있다. 밤호박은 그 단맛이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은근한 달콤함이다. 사람의 혀에 그윽하게 자기 기운을 남겨 미각세포를 유혹한다. 단호박의 가벼운 단맛보다 더 길게 혀의 표면에 달달한 기운으로 남아있다. 설탕이 혀에 내리퍼붓는 직설적인 단 기운이 아니라 혀 끝으로 마지막 자국까지 핧아먹고 싶은 꿀맛의 은은함이랄까.
여기 어울리는 낱말이 '파금파금'이다. 파금파금은 곧 설탕 맛이 아닌 꿀의 맛이다. 이빨의 힘에 와르르 무너지는 씹힘이 아니라 은근히 침의 도움을 기다리는 팍팍함이랄까. 그러면서도 사람의 혀, 미각과 촉각을 내버려두지 않는 정스러움을 지니고 있는 감각의 언어. 밤호박이 '파금파금'이라는 언어의 리듬 위에 적당한 단맛을 곱게 싸안아 얹힌 입맛을 초래한다.
파금파금. 바야흐로 '밤호박'의 계절이 왔다. 주문한 밤호박이 왔다.
'파금파금'은 '고구마'를 먹으면서도 체감할 수 있다. 물고구마 말고 무슨 고구마더라. 파금파금한 고구마. 물기를 조금 짜낸 상태를 숙명으로 지닌, 그런 고구마.
어쨌든 이제, 도무지 혹서에 적응이 되지 않은 내 몸뚱이를 조금 덜 움직이게 하는 요리 방법을 지닌 밤호박이 왔다. 수분이 덜한 듯, 아니, 입 안에 쑤셔 넣으면 수분이 조금 아쉬운 듯싶으나 적당한 듯도 싶은 밤호박. 폭 좁은 식도로 오가는 밤호박의 강한 기운 앞에 고요히 식탐을 다스려야 할 계절이다. 내 입은 천천히 운동을 하게 될 것이다. 지나치지 않은 리듬 운동을 할 것이다.
밤호박. '파금파금'이라는 언어를 떠올리게 하는 음식. 고아한 묵상의 어감을 몽땅 품게 하는 고운 우리 언어. 형태~. '파금파금'을 껴안아 올 여름은 덜 팍팍하게 살아볼 요량이다.
내실을 다진 대기의 기운이 깃든 밤호박으로 나는 이 여름의 여러 날을 살아나갈 것이다. 우리 오빠. 이 세상에서 가장 착한 남자인 우리 오빠가 키워 보낸 밤호박. 오빠가 이 여름 나를 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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