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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영화

1941 희생 : 아픈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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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 희생 : 아픈 기억(2008) SPRING 1941

 - 두 번째 시청이다. 폴란드 영화이다. 

 

대표 포스터 - http://www.cine21.com/movie/info/?movie_id=43526에서 가져옴

 

이스라엘, 폴란드

드라마

올리 바르바시 감독

조셉 파인즈, 네브 매킨토시 등 출연

 

세계 2차 대전 시기 폴란드에 사는 어느 유태인 가정의 생존기.

 

전쟁이 발발하고 폴란드까지 스며든 유태인 없애기(원초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왜? 당시 상황이 그러했으니까)의 계획은 한 가족을 사지로 몰아간다. 가족은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죽음의 사선 앞에서 몇 단계를 거쳐 평소 지인이라고 여겼던 가정으로 스며든다. 믿음으로. 

 

단단한 신뢰였다. 심상찮게 진행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사람살이의 근본을 벗어난 장에 뛰어들어야 했다. 위장. 유태인 가족의 가장 '아서'는 평범한 의사. 그가 피한 곳은 의사 생활 중 만난 에밀리아. 그 여자네로 숨어들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남녀 관계라서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말이다. 가족의 생존을 위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서는 가족을 숨겨준 에밀리아와 사랑의 상차림을 구조화해야 했다. 받아들여야만 했다. 하나 남은 딸의 실어증이 치료될 날을 기다리면서. 어서 전쟁이 끝나기를 바라면서. 아내 클라라는 도피 중 대문을 넘다가 떨어져서 죽은 작은딸을 가슴에 묻고 남은 한 명의 딸을 지키기 위해 남편의 위장 사랑을 눈 감는다.

 

영락없는 부부이다. -  씨네 21에서 가져옴

사랑에 위장이라는 것이 진정 존재할까? 존재한다. 당연하다. 아서도 그럴까 봐서 조마조마했다. 에밀리아가 문제였다. 다락방에 갇힌 상태로 사는 클라라는 남편 아서와 집주인 에밀리아의 사랑을 내려다본다. 에밀리아에게서 자라고 있는 굳건한 사랑을 확인한다. 그녀는 견딜 수 없다. 전쟁 속 위선과 진심의 사랑터를 넘나들면서도 아서는 다락의 여자를 잊지 않는다. 참사랑. 그런 척하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에밀리아는, 참사랑을 싹 틔운 에밀리아는 자기 사랑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그런데 현실 그 너머 이상으로 미리 나아가 아서를 자기 사랑으로 고정시키려는 에밀리아에게 그녀를 미리 거쳐간 남자들이 있었다. 전쟁 중이었다. 스쳐 지나간 남자들이 아서를 가만두지 않는다. 불안이 감돌고 극으로 치닫던 전쟁은 마침내 아

서의 가족을 거리로 나가게 한다. 사실은 에밀리아를 피한 아서의 계획이기도 했으리라. 전쟁 상황이 아서네를 내쫓았다고 해도 옳다.

 

에밀리아와 클라라 - 씨네 21에서 가져옴

 

에밀리아의 배도 불렀다. 진심 배가 불렀던가. 갑자기 헛갈린다. 어쨌든 딸을 안고 거리에 나서야 했던 유태인 가족, 아서와 클라라 그리고 클라라의 딸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전쟁은 인생 최대 극저점으로 박박 긴다. 아서와 클라라, 에밀리아의 각자 입장이 서로 얽히면서 단순히 클라라의 참패로 끝날 것 같던 순간 아서가 가족에게 돌아왔는데. 개인에서 집단의식으로 옮겨졌던 심리의 전환은 결국 사회 구성원인 개인의 심리 얽힘으로 길을 바꾸면서 각 인생 미궁의 순환로로 들어선다. 이어 겪게 되는 이지러짐과 완곡과 도드라짐과 절망과 참담함과 애절함의 인간 본성을 다각적으로 파고드는 소용돌이는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는가.

 

살아남은 클라라가 첼로 명인 연주자가 되어 옛 흔적을 찾는다. 여자 둘이 재회한다. 클라라와 에밀리아. 각자 안고 있는 슬픔이 절절하다. 살다가 죽은 이의 슬픔은 땅에 묻힌 채로 지하를 호흡한다. 누가 죄인인가. 누구의 희생인가. 우여곡절, 신뢰 그리고 불신의 아귀다툼 속 결론을 제3 자가 해석한다. 마음 아프지만 어쩔 수 없다. 누가 알랴.

 

누가 희생한 것일까 - 씨네 21에서 가져옴

 

영화가 정리되면서 클라라의 딸이 엄마를 향해 말한다. 아서는 전쟁  끝무렵, 유태인 학살이 짐승 수준으로 치달을 때 딸을 보호하면서 죽어갔다.

"에밀리아도 나름대로 자신을 희생한 거야"

 

'나름대로'라는 낱말이 지닌 폭넓은 범위의 관용.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억지. 아내와 딸을 살리고픈 마음에 에밀리아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아서. 아서의 가족을 숨겨 줌으로 인해 목숨을 담보당한 '에밀리아'가 마치 수고비 조로 받아내고 싶은 상황은 참사랑이 되게 했다. ​눈앞에서 그들의 부적절한 관계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클라라'는 결국 아서가 돌아왔으므로 희생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인물일까.

 

'희생'은 누가 저지른 죄악의 가격일까. 

 

 

첫 번째 시청을 마치면서 리뷰를 남겼던가? 흐릿하다. 어쨌든 두 번째 시청이니 두 번째 리뷰를 써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어 글을 쓴다. 제목 그대로다. '아픈 기억'이다.

 

에밀리아도 나름대로 자신은 희생한 거야.

 

 

전쟁 중이라도 사람은 살아야 한다. 전쟁 후에도 사람은 살아야 한다. 사람은 결국 살아야 한다. 그러나 살 사람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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